익산 미륵사의 창건주는 정말 선화공주가 아닌 것일까. 그렇다면 서동과 선화의 사랑은 모조리 일연 스님의 창작이란 말인가.

최근 익산 미륵사지 서석탑 해체조사 중 발견된 사리봉안문에서 ‘백제 왕후 사택적덕의 딸이 미륵사를 창건했다’는 구절을 두고 학계의 의견이 분분하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선화공주가 미륵사를 창건했다는 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잠정 결론짓고 있는 가운데 학계 일각에서는 ‘백제 왕후가 선화공주가 아니라는 해석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신중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백제 최고최대 사찰인 익산 미륵사지의 일부인 서탑에서 나온 봉안기 기록만으로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 그 배경이다.

가장 큰 논란이 되는 부분은 명문 가운데 '我百濟 王后 佐平 沙乇積德女'라는 구절이다.

신중론을 제기하는 이들은 문화재연구소가 발표한 “왕후인 백제좌평 사택 적덕의 딸”을 “왕후와 백제좌평 사택적덕의 딸”로도 얼마든지 번역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즉 이 부분을 ‘왕후=백제좌평 사택적덕의 딸’로 볼 것인지, 아니면 ‘왕후와 백제좌평 사택적덕의 딸’로 볼 것인지에 대한 보다 깊은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륵사를 창건한 왕후가 선화공주 다음에 왕비가 된 제2의 왕비라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계명대 노중국 교수는 미륵사 중원터에서 기축년(629년) 도장이 찍힌 기와가 출토된 것으로 미뤄 중원이 먼저 만들어지고 동쪽과 서쪽 사찰은 이후에 완성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무왕이 선화공주 외에 다른 왕비를 두었고, 이번에 발굴된 서탑과 서쪽 가람만 사택씨 왕후가 지은 것으로 본다고 말해 선화공주 외에 또다른 왕후의 존재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무왕의 재위 기간이 40년이 넘는 만큼 첫 왕비인 선화공주가 세상을 떠난 후 백제 귀족의 딸을 새 왕비로 들였거나, 혹은 동시에 여러 명의 왕비를 뒀을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사리봉안기를 최초로 번역한 동국대 김상현 교수는 왕후와 사택적덕의 딸을 두 명의 인물로 해석하는 의견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김 교수는 “사륙병려문체로 쓰여진 봉안기의 문장 구조상 백제 왕후와 사택적덕의 딸을 다른 인물로 해석하는 것은 맞지 않는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해석이 나온 배경은 “선화공주에 대한 후대 학자들의 미련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상현 교수는 “삼국유사는 아주 소중한 사료임에 틀림없지만 역사와 전설이 혼재된 사료라는 점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며 “지명 법사가 하룻밤에 못을 메워 절을 세웠다는 이야기 등은 설화적 요소임이 분명한 만큼 설화적 내용을 그대로 좇아가는 오류를 가급적 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제불교사 전공인 한국학중앙연구소 동북아연구소 조경철 연구원 또한 왕후와 사택적덕의 딸을 두 인물로 보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무왕 재위 39년에 지어진 것으로 보아 무왕이 두 번째 왕비를 맞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문장상으로는 볼 때 사택적덕의 딸이 백제 왕비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사택 씨가 미륵사 창건을 비롯한 백제불교 중흥에 큰 기여를 한 사실은 사택지적비 등에서도 드러난다”는 것이다.

조 연구원은 2006년 발표한 박사논문 ‘백제불교사의 전개와 정치변동’ 에서 이미 “미륵사 창건이 백제 귀족 사택 씨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신중론의 또 하나 근거는 무왕조에 포함되어 있는 ‘서동요’에 대한 해석 문제이다.

고려시대 승려인 일연 스님이 취재해 기록한 것이라고 해서 ‘서동요’를 단순히 고려향가로 볼 것인가, 아니면 신라 제26대 진평왕대에 서동이 지었다는 민요형식의 노래로 이두(吏讀)로 표기된 원문, 향찰 등을 볼 때 신라 때부터 내려온 구전민요로 볼 것인가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두나 향찰로 미루어 볼 때 신라 때부터 전승되어왔을 가능성이 큰 서동요에 대한 역사성이나 가치를 결코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사리봉안기를 통해 밝혀진 새로운 사실에 주목해야 하지만 ‘서동요’에 내포된 역사적 메타포까지 모조리 ‘허구’로 단정짓는 것은 더 큰 오류라는 것이 이 주장의 요지다.

신중론을 펴는 이들은 또 사찰의 창건 연기설화에는 반드시 일정한 갖춘 형식이 있게 마련인데, 이번 봉안기 내용으로는 다소 미흡한 부분이 없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미륵사의 창건주체는 왕후라는 점, 그리고 예로부터 사찰은 창건주체와 함께 왕후장상과 관료 등이 두루 함께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고루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3전3탑(三殿三塔) 양식의 미륵사지에서 이번에 사리장엄을 발굴한 곳은 서탑이므로, 발견되지 않았지만 상식적으로 더 중요한 중앙목탑에 봉안했을 더 중요한 봉안기의 기록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서탑으로 봉안기로만 미륵사 창건의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번 익산 미륵사지 서석탑 사리장엄 발굴과 봉안기 해석과 관련해 강순형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장은 “이번 발굴과 관련하여 백제와 깊은 관련이 있는 일본 등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갖고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우리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며, 역사서이기도 한 『삼국유사』의 내용의 진위를 해석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