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무신론'이라는 유령이.

영국에서 시작된 ‘신(神)을 부정하는 버스 광고’가 유럽 전역으로 번지면서 유럽은 현재 무신론자들과 종교단체들간의 팽팽한 긴장 속에 놓여있다.

프랑스 르몽드지(紙)는 “지난주 영국에서 시작된 무신론 버스 광고가 스페인, 이탈리아로 확산되면서 무신론자와 종교단체 간 ‘종교 전쟁’을 촉발하고 있다”고 지난 1월 15일자로 보도했다.

지난해 연말부터 영국의 무신론자들은 ‘1인당 5파운드’ 모금 운동을 벌여 14만 파운드(약 2억8000만원)의 성금을 모금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부터 버스와 지하철에 “신은 없다. 이제 걱정을 멈추고 인생을 즐겨라(There's probably no God. Now stop worring and enjoy your life.)”라는 광고를 내고 있다.

이 운동이 처음 시작된 영국 잉글랜드 지역에서만 약 800여대의 버스에 이 광고가 게재됐으며, 스코틀랜드 지역에서는 약 1000여대의 버스가 신은 없다는 광고판을 붙인 채 거리를 돌고 있다.

영국에서 신을 부정하는 활동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자 스페인, 이탈리아 등 다른 나라 무신론자 단체들까지 이같은 광고 게재운동을 벌이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무신론자와 ‘자유사상가 연합’이라는 단체가 스페인어로 광고 문안을 번역해 5일부터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시내버스에 광고를 게재했다. 이탈리아 무신론자 단체도 2월부터 “나쁜 소식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좋은 소식은 우리가 신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라는 문구의 광고를 게재할 예정이다.

이같은 유럽의 무신론 열풍을 대서양을 건너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대륙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조짐이다. 현재 미국의 여러 도시들과 캐나다 토론토 등지에서도 신은 없다는 문구를 게재한 버스가 도로위를 달리고 있다.

신을 반대하는 광고가 유럽과 북미대륙으로 확산되자 각국 기독교 단체들도 맞대응에 나서고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기독교 계통 신문은 “신은 존재한다. 예수와 더불어 당신의 인생을 즐겨라”라는 버스 광고를 시작했다. 영국 기독교 단체는 지난 8일 무신론 광고가 광고법 위반행위라며 광고심의기관에 고발장을 접수하기도 했다.

미국과 캐나다의 기독교 목사들도 이 운동의 확산에 대해 우려감을 표현하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캐나다의 헨리 신부는 「선」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광고 문구를 읽을 때 리차드 도킨스 교수같은 무신론자들은 물론 좋아하겠지만 이것을 단순히 대화 수준으로 받아들이기란 힘들다. 이 광고는 매우 공격적이고 악감정으로 가득차 있다고 비판했다. 『만들어진 신』의 작가로 유명한 리차드 도킨스 교수는 영국 무신론협회의 대변인이다.

하지만 이슬람 등 기독교 이외의 종교단체들은 이번 '종교 파동'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인 분위기다. 캘거리 무슬림협회 대표 나가 헤이지는 모든 사람에게는 그들의 관점을 표현할 권리가 있고, 신은 각자의 행위로 우리를 판단할 것이라며 이번 사건에 대해 호감어린 발언을 던졌다.

유럽과 북미대륙에서의 무신론 광고운동은 1000여년간 종교라는 명목 하에 ‘암흑의 시대’를 살아온 이들의 제2의 르네상스로 보인다.

히피들의 불교 열풍, 헐리우드 스타들의 수행 붐에 이어 이제 No God 광고판으로 등장한 서구인들의 다원주의적 종교관이 21세기에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 자못 흥미롭다.

영국 일간지「가디언」에 칼럼을 쓴 코미디 작가 아리안 쉐린은 영국에서 무신론자들이 발언의 자유를 획득한, 그리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은 위대한 날로 기억될 것이라며 우리의 '믿음들'을 평화롭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