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찰 법당 내부에 현장법사와 손오공 이야기를 다룬 중국 명나라 때의 소설 ‘서유기(西遊記)’를 응용한 벽화가 발견됐다. 사단법인 성보문화재연구원(원장 범하 스님)은 문화재청 지원으로 ‘한국의 사찰벽화’ 조사작업을 진행하던 중 경남 양산 통도사의 용화전(龍華殿) 벽화에서 서유기 주요장면을 소재로 한 그림을 최근 발견했다고 1월 9일 밝혔다.

이들 벽화는 종래에는 막연히 불교 인연설화를 소재로 한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이번 정밀 조사에서 ‘서유기’를 표현한 것으로 확인됐다. 벽화는 모두 7점으로 ‘서유기’ 100회본 이야기 중 5회에 걸친 내용을 7개 장면으로 나누어 표현했다.

성보문화재연구원은 “각각의 벽화마다 해당 내용을 압축해놓은 제목인 화제(畵題)를 분석해 ‘서유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며 “글씨가 희미해 과거에는 이를 주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연구원 측은 “조선시대 사찰 벽화에는 고사 인물이나 ‘삼국지연의’와 같은 소설류에서 소재를 포착한 것이 가장 흔하다”며 “서유기가 사찰벽화 소재로 나타난 것은 이번 용화전 사례가 처음일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원은 벽화 제작 시기가 용화전에 후불탱이 조성된 1798년(정조 22) 무렵으로 추정했다.

<해설>이 벽화는 성보문화재연구원이 문화재청의 지원으로 사찰벽화의 현황 파악 및 기록을 통해 보존과 복원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사찰건축물 벽화조사를 실시하고 보고서인 '한국의 사찰벽화'(경남 1편)을 발간하면서 세상에 공개됐다. 이번에 발간된 경남 1편은 이는 지난 2006년 [인천광역시 ․ 경기도 ․ 강원도 편]과 2007년 [충청남도 ․ 충청북도 편]에 이어 세 번째 발간되는 것이다.

이번에 발간된 보고서에는 2008년에 조사한 경남지역 12개 건축물에서 조사된 612점의 벽화가 실려 있다. 아울러 보고서에는 개별 벽화에 대한 설명과 사진 및 실측도, 해당건축물과 벽화 배치현황에 관한 텍스트 등을 실어 벽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목조건물을 장엄하는 요소 중 하나인 사찰벽화는 회화와 건축이라는 양식을 복합적으로 가진 문화재다. 이에 성보문화재연구원은 2006년부터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문화재로 지정된 사찰건축물 및 지정되지 않았더라도 주요벽화를 소장한 사찰건축물을 대상으로 ‘사찰건축물 벽화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2008년 조사된 벽화 가운데 주목을 끄는 것은 통도사 영산전의 󰡔석씨원류응화사적󰡕 내용을 도해한 벽화와 󰡔묘법연화경󰡕 ｢견보탑품｣ 내용을 표현한 벽화, 통도사 용화전의 소설 󰡔서유기󰡕 내용을 도상화한 벽화를 들 수 있다. 이들 벽화는 일찍이 알려졌지만 근래까지 󰡔석씨원류응화사적󰡕과의 비교를 통해 정확한 도상파악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서유기󰡕의 내용을 담은 벽화의 경우에는 단순한 인연설화로만 알려져 왔다. 따라서 이번 조사를 통해 이들 벽화의 도상내용과 근거를 밝히고, 원전과의 비교를 통해 본격적으로 분석할 수 있었던 점은 벽화조사의 중요한 수확이라 할 수 있다.

통도사 영산전의 󰡔석씨원류응화사적󰡕 벽화는 현재 48점이 그려져 있는데, 이 가운데 석가모니의 행적을 표현한 것이 26점이고, 전법제자의 행적을 표현한 것이 22점이다. 이 가운데 그간 연구에서 어떠한 도상인지 잘못 파악했거나 확인하지 못 했던 장면들이 이번 조사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즉 북벽의 법충화량, 문제논법, 문제문법, 남벽의 국청삼성과 만리일회가 그 것.

특히 통도사 용화전의 󰡔서유기󰡕 벽화는 7점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총 100회본의 내용 가운데 5회의 내용을 7개의 장면으로 나누어 표현했다. 이러한 사실은 각각의 벽화마다 해당 내용을 알 수 있도록 화제를 기록해 놓은 데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간 이 화제의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막연히 인연설화를 그린 것으로만 인식해왔다. 이번에 밝혀진 내용을 보면 내부 동측면 벽에 그려진 벽화는 서유기 전100회 가운데 94회ㆍ12회ㆍ87회의 내용을 묘사한 것이고, 서측면에 그려진 것은 85회ㆍ12회ㆍ81회의 내용을 묘사한 것임을 확인했다. 특히 이 가운데 12회의 내용이 동ㆍ서 측면 벽 중앙에 세 장면으로 나누어 그려져 있어 그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이 12회의 내용은 현장이 당 태종의 명으로 수륙재를 여는 것을 묘사한 것과 수륙재를 주관할 고승을 선발하는 위징과 소우, 장도원 등을 묘사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찰벽화에는 고사인물이나 󰡔삼국지󰡕와 같은 소설류의 내용을 주제로 한 것이 많이 등장하는 편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 소장되어 있는 󰡔서유기󰡕의 판본 가운데 18세기까지 올라가는 것이 드문데, 이러한 내용을 사찰벽화로 나타낸 것은 용화전이 최초의 경우라 여겨진다.

이 벽화들의 편년은 대략 건물이 중건된 해인 1725년(영조 1)에서 용화전 후불탱이 조성된 1798년(정조 22) 무렵으로 추정되는데, 벽화에 그려진 여래의 표현이 후불탱의 여래와 유사하여 18세기 후반 무렵으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에 확인된 서유기 관련 그림 7편은 현장병성건대회도(玄裝秉誠建大會圖) 도고혼소우정공문도(度孤魂蕭禹正空門圖) 일경공회정욕희도(一娙空懐精慾喜圖) 봉선군모천지우도(鳳僊郡冒天止雨圖) 난멸가지원대각도(難滅加持圓大覺圖) 흑송림삼중심사도(黑松林三衆尋師圖)

통도사 용화전 서유기 벽화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현장병성건대회도(玄裝秉誠建大會圖)

『서유기』 12회의 내용 가운데 일부를 그린 것으로 당 태종이 저승에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승려들을 초청하여 재를 주관할 고승으로 현장을 뽑아 수륙재를 성대하게 치르는 장면이다. 벽화는 제단 앞에 나아가 용을 밟고 향을 꽂는 태종과 더불어 줄지어 선 승려들의 가장행렬 앞쪽에 머리에 관을 쓴 현장을 묘사하고 있다.

2. 도고혼소우정공문도(度孤魂蕭禹正空門圖)

『서유기』12회의 내용 가운데 재상 소우蕭禹가 불교의 바른 이치를 말하여 수륙재를 열 수 있었음을 그린 것으로 벽화는 당 태종의 명으로 수륙재를 주관할 고승을 선발하는 위징과 소우, 장도원 등을 묘사한 것이다.

3. 일경공회정욕희도(一娙空懐精慾喜圖)

『서유기』94회의 내용 가운데 일부를 그린 것으로 천축국 부마로 선택된 현장玄奘이, 손오공의 권유로 요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왕궁으로 들어간 뒤의 이야기이다. 벽화는 공주로 변신한 요괴가 손오공 등이 방해할까 두려워 왕에게 손오공 일행을 성 밖으로 내보내줄 것을 요청하는 장면인 것이다.

4. 봉선군모천지우도(鳳僊郡冒天止雨圖)

『서유기』87회의 내용 가운데 하늘을 모독한 죄로 가뭄에 든 천축 변방의 봉선군鳳僊郡에 비를 내리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손오공이 천궁에 올라가 옥황상제를 만나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5. 난멸가지원대각도(難滅加持圓大覺圖)

『서유기』84회의 제목을 화제로 쓰고 85회의 초반부 내용을 그린 벽화로 멸법국滅法國에 도착한 현장 일행이 승려들을 죽인다는 왕의 눈을 피하기 위해 들어간 궤짝이 도적들 때문에 소동을 겪고 왕에게 받쳐진 장면이다.

6. 흑송림삼중심사도(黑松林三衆尋師圖)

『서유기』 81회의 내용 가운데 선림사에서 쉬다가 요괴에 잡혀간 현장을 찾던 손오공이 삼두육비三頭六臂의 괴물로 변해 광분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