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가 제법무아(諸法無我)를 주창한 이래, ‘나’ 즉 자아는 불교의 가장 큰 화두였다. 아니, 자아의 문제는 붓다 이전의 베다철학에서도, 이와는 다른 계통의 서양철학에서도 항상 문제의식의 정점에 놓여있었다. 하지만 그 어느 전통에서도 무아를 주창한 사상가는 없었다는 측면에서 불교는 다른 사상과는 차별되는 사상으로 구분된다.

붓다가 무아를 주창한 이래 그의 추종자들 또한 ‘나’의 문제를 놓고 각기 다른 논리를 전개해 나갔다.

‘어디에도 고정된 나는 없다’는 제법무아와 ‘어디서나 주인공이 되라’는 선종의 수처작주(隨處作主)는 얼핏 보기에도 상반된 개념처럼 보인다. 어디에도 나는 없다고 하더니 어디서든 내가 주인공이 되라니. 모순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같은 문제의식을 초기불교, 중관‧유식학, 서양철학, 생물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한 학술대회가 열렸다. 밝은사람들은 12월 13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나, 버릴 것인가 찾을 것인가’를 주제로 제6회 학술연찬회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는 지난 5회때 주제인 욕망, 삶의 동력인가 괴로움의 뿌리인가의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욕망에 대한 고찰에 이어,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의 틀을 고찰함으로서 불교와 동서고금의 철학자들이 추구한 세계를 다양한 포지션에서 바라본 것이다.

이번 학술연찬회에는 정준영, 허인섭, 김진무, 박찬국, 김종주, 권석만, 우희종 등 일곱 명의 학자가 자아를 주제로 각각의 논리를 펼쳐나갔다.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있는가’를 발표한 정준영 교수는 나 또는 자아에 대한 붓다의 입장이 어떠했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주었다.

정준영 교수는 “고정불변의 실체적 영혼인 우빠니샤드의 ‘아뜨만’은 무아(無我)라 하여 부정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경전을 살펴보면 나․자아‧자신‧자기를 의미하는 ‘앗따’라는 용어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무아란 자기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불변하는 고정된 실체로서의 자아를 부정하는 것일 뿐, 나‧자아‧자신 등과 관련된 세상의 일반적인 표현은 언어적 관행으로서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붓다는 무아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불변하는 고정된 실체로서의 자아를 부정했다”며 “초기불교의 무아사상에 따르면 ‘나는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변하지 않는 내가 있다는 관념으로, 결국 초기불교 안에서 ‘나’라는 것은 버릴 수도 찾을 수도 없는 실재하지 않는 개념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내가 없다(無我)는데 의식은 홀로(唯識) 어디에 있는가’를 발표한 허인섭 교수는 용수의 중관불교와 세친의 유식불교에서의 자아관을 살펴보았다.

허 교수는 “용수는 초기불교의 무아론을 계승하여 공 개념을 통해 부정논리를 더욱 세련되게 발전시켰으며 세친은 무아론과 연기론을 의식적 차원에서 전개하여 심화시켰다”며 “실체적 자아는 용수에게서는 이중부정을 통해 제거되어야 할 개념일 뿐이며, 세친에게는 말라식이 잘못 정위시킨 개념적 존재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즉 경험적인 나는 분명 존재하지만 실체적인 나는 우리의 인식경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으니 그것을 찾아 헤매는 일은 결국 헛된 행위일 뿐만 아니라 온갖 고통을 초래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불교와 관련하여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질문은 ‘진실로 무아라면 열반에 드는 이는 누구이며, 누가 깨달음을 얻을 것인가’일 것”이라며 “사실 붓다가 부정한 것은 오직 허구적인 불변의 절대적 자아일 따름이며, 불교가 긍정하는 자아는 구체적이고 동적인 자아”라고 설명했다.

‘참나 혹은 眞我의 탐구와 불성으로서의 자성’을 발표한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김진무 연구교수는 불교가 중국에 들어가 유가와 도가와의 관계 속에서 참나(眞我)의 개념이 변용돼가는 과정을 혜원, 도생, 구마라집 등을 통해 밝혔다.

김 교수는 “중국 선종의 기본 입장은 불성=자성=자심=참나로, 선종의 입장은 분명 나를 찾는 것이고, 반면 망념과 망상에 빠져 불성을 보지 못하는 나는 버려야 할 나”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어 “‘찾으려는 나’와 ‘버리려는 나’의 본질적인 주체는 어떤 형식논리를 구해도 모두 상견이나 단견에 떨어질 뿐”이라며 “결국 찾는 나와 버리는 나는 상대적인 입장에서의 논단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결국 선에서는 지금 이 자리가 바로 본래 참나가 실현되어 드러난 상태이므로 우리는 다만 철저하게 접근할 것을 강조한다”며 “그 방법은 철저하게 조작, 시비, 취사, 단상, 범성이 없는 평상심으로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 “선가에서는 ‘지금 이 자리’를 바로 ‘본래 참나가 실현되어 드러난 상태(本來現成)’로 보고, 끊임없이 ‘한 생각(一念)의 어리석음(迷)‧깨달음(悟)을 부여잡고 자기가 현재 서있는 자리를 살필 것(照顧脚下)’을 강조한다”고 정의했다.

‘본래적 자기와 존재지향적 자아, 그리고 우아한 자아’를 발표한 서울대 철학과 박찬국 교수는 서양철학의 자아관을 실존철학, 특히 하이데거와 프롬, 니체의 사상을 중심으로 고찰했다.

박 교수는 “하이데거와 프롬, 니체에게 있어 나라는 것은 하나의 고정된 실체로서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진정한 자아 혹은 통일된 자아는 형성되고 창조되어야 할 것”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진정한 자아는 사랑, 지혜, 절제 등의 이성적인 덕을 실현한 것”이라며 “이같은 자아를 하이데거는 본래적인 실존가능성, 프롬은 존재지향적인 자아, 니체는 우아한 자아라고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무의식 또는 상상계와 상징계 속의 자아’를 발표한 반포신경정신과의원 김종주 원장은 프로이트와 라깡의 정신분석학 혹은 정신의학의 관점에서 나의 문제를 검토했다.

김 원장은 “프로이트에게서 자아는 이드와 초자아 사이에 자리하는 심급으로, 자아는 서로 모순되는 요구들을 화해시키는 중재자의 역할을 한다”며 “프로이트를 비판적으로 계승한 라깡은 자아를 하나의 주변 대상에 불과하다고 보며, 그의 정신분석의 기초가 되는 거울단계에서 자아를 거울상과 동일시한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라깡에 의하면 자아는 주체에 반대되는 상상적인 형성물로, 우리의 정신을 옥죄는 고통스럽고 거추장스런 갑옷”이라며 “따라서 라깡에게는 프로이트의 무의식의 발견이야말로 자아 개념과 대비되는 커다란 업적”이라고 지적했다.

‘자기개념의 발달과 구조 그리고 심리장애와의 관련성’을 발표한 서울대 심리학과 권석만 교수는 심리학과 심리치료의 관점에서 ‘나’의 문제를 다루었다.

권 교수는 “심리학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나를 보존하고 강화하며 확대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나라는 자기개념이야말로 삶의 근간을 이룬다”며 “하지만 이런 자기개념은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관념적인 기억체계로 존재론적 실체는 아니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또 “이러한 심리학의 입장은 불교의 무아론과 상충하지 않으며, 이것은 불교적 명상이 심리치료에 응용되는 기반이 된다”고 지적했다.

‘복잡계 속에서 깨어있는 나’를 발표한 서울대 수의학과 우희종 교수는 자연과학적 결과의 토대 위에서 불교의 깨달음 문제를 다루었다.

우 교수는 “모든 생명체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기만의 고유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런 ‘나’라는 개체고유성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내몸’이라는 물질적 터전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이는 다시 신체의 고유성을 결정하는 면역계와 정신적 고유성을 만드는 신경계로 구성되는데, 이 둘은 상호 연결된 하나의 통합된 체제로 전형적인 복잡계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우 교수는 이어 “깨달음의 결과가 일상에서 늘 ‘깨어 있는’ 나이고, 따라서 불교의 아상(我相) 개념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하다”며 “열린 관계(無相․無住) 속에 놓여 있을 때 ‘나’라는 아상은 더 이상 아상이 아닌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