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글씨 같기도 하고, 낙서 같기도, 혹은 기호 같기도 한 것들이 붉고 푸른 화면에 휘갈겨져 있다. 이런 서체적 추상을 이름하여 작가는 무화(無化)라고 표현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추상화가 오수환(서울여대 서양화과 교수)의 서른 한 번째 개인전 ‘변화 31 variation 2005-2008’이 10월 24일부터 11일 16일까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이번 개인전은 작가가 2005년부터 올해까지, 유럽을 비롯한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그의 발길과 시선이 닿았던 자연과 과거의 지혜와 흔적들이 담겨 있는 유적들을 스케치한 이미지들이다.
백지 위에 색을 칠하고 그 위에 글씨를 덧입히는 과정을 무(無)로 가는 과정이라고 하다니, 모순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그 모순 속에 해답이 담겨 있는 듯 하다.
“선가에서 말하기를, 명상의 지고함에 다가서고자 한다면 절벽 끝에 서 있을 때 한 발을 더 내디디어라. 한 발을 더 내딛는 순간 마음의 눈이 열리고, 이리하면 모든 걸 깨닫게 되리라. 나의 그림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운명의 요소들이 공존하는 회화적 표면이다. 그것은 정신의 평온함을 지키는 심리적 상징이기도 하다. 내 그림은 알몸과 같으며 거기에는 장식적이고 과잉적인 요소가 없다. 나는 나의 화폭에 나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을 즉각적으로 그린다. 나는 단지 과정, 곧 행위에만 집중한다. 나의 모든 탐구는 명상의 정점에 도달하기 위해 무와 공의 개념을 맴돈다.”
그림에서 화면 밖으로 터져나오는 강렬한 에너지 속에는 침묵과 웅변이 공존하고 있다.
작가에게 그림은 구도의 수단인 듯 하다. 그 구도의 도달점은 도교적 세계인 듯 하기도 하고, 샤머니즘의 세계 같기도 하며, 니르바나의 세계인 듯 하기도 하다.
작가는 이를 언어 이전, 또는 그림 이전의 어떤 상태라고 설명한다. 열려진 상태로 존재하는 그림, 그의 그림에는 확실히 힘이 터져나온다.
불교, 특히 선불교에서는 “성불도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본래 그 이전의 세계를 향한 열망과 에너지는 본래 붓 끝에 있으되, 수천 수만가지 형상으로 드러날 수 있음을 작가는 그림 속에서 드러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