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히토 일왕, 한국의 모든 분들이 이영화 보았으면

2001년 도쿄.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 한 한국인 청년이 전동차가 달려오고 있는 지하철의 철로로 몸을 던졌다. 그는 음악을 좋아하고 운동을 즐기고, 또 이웃나라 일본의 문화를 조금 더 알고 싶었던 평범한 대학생 이수현이었다.

당시 그의 희생은 일본열도를 감동시켰고,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2008년 10월, ‘우리와 함께 이 순간을 함께 할 수 없는 이수현을 이제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고 호소와 함께, 이수현의 짧은 생을 소재로 한 영화가 제작되어 돌아왔다. 외마디 비명처럼 영화는 강렬한 톤으로 외친다. “이. 수. 현. 너를 잊지 않을 거야, 반드시 기억할 거야.”라고.

일본열도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한국청년 이수현의 거짓말같이 아름다운 감동실화 ‘너를 잊지 않을 거야’가 양국에서 10월 30일 개봉된다. 개봉에 앞서 10월 27일 오후 6시, 롯네시네마 명동 에비뉴엘관에서 시사회가 열렸다. VIP를 초청해 열린 시사회에는 내로라하는 한일 양국의 인사들로 빼곡했다.

주연 이태성, 마키와 이수현의 부모를 비롯해 문화계, 정계 등의 유명 인사들이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준 ‘너를 잊지 않을 거야’ 시사회 참석을 위해 명동으로 모여들었다. 이수현의 아버지 이성대 씨와, 어머니 신윤찬 여사. 주연배우 이태성과 일본인 여자 친구 역을 맡은 일본배우 마키는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를 집중적으로 받았다.

독실한 불자인 이성대 씨와 신윤찬 여사의 영향으로 생전의 이수현 군 또한 독실한 불자였다고 한다. 시사회에 앞서 고 이수현 군의 아버지 이성대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착잡한 표정에 눈물을 머금은 아버지는 “슬픔을 딛고 앞으로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아가겠다. 우리 수현이가 사고를 당한지 7년. 그동안 힘겹고 슬픈 세월을 지냈다. 여러분이 이렇게 잊지 않고 기억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이수현 역을 맡은 배우 이태성의 인사말은 간단했다. “이 영화를, 제발 일본인들보다 한국인들이 더 많이 보았으면 좋겠다.”

이어 일왕 아키히토의 초등학교 친구 하시모토 상이 나와 한국관객에 보내는 일왕의 메시지를 전했다. “한국의 모든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일왕 부부도 이 영화를 보고 30분 동안 기립박수를 쳤다고 전했다. 또 자신의 피에 한국의 피가 함께 흐르고 있다는 말도 했다고 전했다.

이수현이라는 한 청년의 고귀한 희생을 통해 가까이 있으면서도 정서적으로 늘 멀게 느껴지는 이웃 일본과의 정서적 공감대가 기적처럼 형성된 것이다.

시종일관 영화를 관통하는 흐름, '인연의 두려움'

이 영화를 관통하는 흐름은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이다. 중중무진의 법계연기가 시작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이어진다. 우리가 작고 하찮게 여기는 일상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복선이 되어 반드시 새로운 인연으로 발현하는 무서운 인연소기(因緣所起)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 정확함과 엄격함에 소름이 끼칠 정도다.

청년 수현이 일본과 일본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의 조부로부터 일본과 깊은 인연이 있음을 통해 나타난 필연이었음을, 또 수현(이태성 분)이 기타를 즐기고 락을 좋아한 것은 훗날 일본에서 여자친구 유리(마키 분)를 만나기 위한 준비였다는 것, 그리고 또 영화 후반부에 밝혀지지만 마치 일본인의 전형처럼 느껴졌던 마키의 아버지가 또박또박한 한국말로 수현에게 ‘유리를 잘 부탁한다’는 대목에서 그의 실체가 한국인이었음을 알게되었을 때는 인연의 무서움에 전율이 일 정도였다. 수현과 마키가 정표로 나눠 찬 목걸이 세트. 수현의 목걸이가 피 흥건한 지하철 철도 위에 나뒹굴 때, 다른 한 목걸이는 락 콘서트 장에서 열창을 하는 마키의 목에 걸려 빛나는 비극적인 인연이라니!

오랜 역사 속에서 갈등과 마찰, 대립과 전쟁으로 점철된 두 나라의 악연이 이수현이라는 한 청년을 통해 선연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마리를 이 영화는 두 나라 국민에게 화두처럼 던져주고 있다.

한 평범한 청년의 일본사랑, 일본인 사랑이, 21세기 한일관계에 어떤 인연을 가져다 줄 수 있을지, 한국과 일본 두 나라 국민 모두에게 공히 감동을 주고, 눈물을 자아내는 영화 ‘너를 잊지 않을 거야’가 두 나라 국민간의 오랜 앙금을 푸는 소중한 인연의 씨앗이 될 수 있을지는 두 나라 국민들이 풀어나갈 일종의 숙제요, 화두에 다름 아닐 것이다.

스치고 지나가는 작고 소소한 일상들이 우리들 삶에 얼마나 큰 복선인지를 알려주는 영화 ‘너를 잊지 않을 거야’, 이 영화는 비록 불교용어 하나 등장하지 않았지만 인연의 소중함과 엄격함, 그리고 무서움을 피부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마치 고승의 법문처럼 긴 여운을 남겨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