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와 학자 한 자리에 모여 대담가져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주창하며 수행에 전념하는 선사와 언어와 논리로 학문을 연마하는 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수행과 학문의 소통을 주제로 한 뜻 깊은 대담이 이뤄졌다. 전국선원수좌회와 조계종 불학연구소는 지난 2008년 10월 24일부터 25일까지 양일에 걸쳐 경북 봉화 문수산 축서사에서 ‘선사와 학자의 대담’을 가졌다.
조계종 간화선 세미나의 일환으로 개최된 이날 대담에는 조계종 원로위원 고우스님, 축서사 주지 무여스님,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혜국스님, 기본선원장 지환스님, 용문선원 선원장 의정스님 등 10여명의 선원장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학계에서는 동국대 고영섭 교수, 연세대 신규탁 교수, 창원전문대 이덕진 교수, 경북대 임승택 교수 등 선학 및 불교학을 전공하는 학자 10여 명을 비롯해 교육원 관계자 등 모두 30여명의 스님과 학자들이 모인 가운데 진행되었다.
선사와 학자의 만남은 그동안 필요성은 제기되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성사되지 못하다가 이번에 최초로 마련되었다. 이번 대담은 ‘수행과 학문의 소통’이라는 부제로 진행되었으며, 조계종 원로위원 고우 스님의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1박 2일간 3차례의 대담으로 진행되었다.
언론에 공개되지 않고 진행된 이날의 대담에 참여했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서재영 박사가 대담내용을 간추려, 전해왔다. 문답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이 빠져 아쉬움이 남지만, 사상 첫 대담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판단해, 서 박사의 요약본을 그대로 게재한다.
선사와 학자의 대담 필요성에 모두 공감
조계종교육원 불학연구소에서는 2006년부터 간화선의 대중화를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해 왔다. 그러나 세미나가 학자들 중심으로 진행됨에 따라 수행을 주제로 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선학과 실참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고, 수행자와 선학자 간의 소통이 담보되지 못하는 한계가 드러났다.
이에 따라 2008년에는 총 3회로 기획된 간화선 세미나 가운데 1회는 선원장 스님과 학자들의 대담 자리로 기획되었다. 불학연구소는 이 자리는 통해 이론과 실참을 접목하고 선사와 학자들 간에 소통을 도모한다는 취지를 밝혔다. 이틀 간 진행된 이번 대화 모임에서는 학술적 담론을 지양하고 수행과 깨달음 등 수행자와 학자 양측의 공통의 관심사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시간으로 진행되었다.
불학연구소장 현종스님은 대담에 앞서 진행된 입재식에서 “직절간명하고 활발발한 간화선이 보다 많은 사람에게 전파되어 개인적으로는 이고득락하고, 사회적으로는 맑고 밝은 사회가 되는데 이바지하기 위해 선사와 학자의 대담를 마련했다.”며 대담을 개최하게 된 취지를 밝혔다.
이어 대담 장소를 제공한 축서사 주지 무여 스님은 환영사를 통해 “선사와 학자의 만남은 아주 특별한 자리이며,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한국선불교 발전에 초석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며 선사와 학자의 대담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나아가 무여 스님은 “한국문화상품으로서 세계에 내 놓을 만한 상품 중에 으뜸가는 것이 바로 간화선”이라고 전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화선이 들어온 지 700년이 넘었지만 불자들조차 그 가치를 모르고 있는 것은 아쉬운 현실”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이런 대화를 통해 한국선불교가 세계화되고,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방안을 탐구하는 뜻깊은 자리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조계종 원의위원 고우 스님은 기조강의를 통해 “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 나아가 국제 문제 등에도 불교계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명했다. 나아가 고우 스님은 부처님께서 사부대중을 구성하여 각자 해야 할 역할을 분담한 것과 같이 오늘날도 스님들과 재가가 역할을 분담해서 불교중흥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사회문제는 물론 세계적 문제에 대해서도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활발한 선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 사부대중이 원활히 소통하여 자기 능력에 맞는 역할을 해주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혜국 스님은 “학자들이 쓴 간화선에 대한 글을 보면 화두에 대한 믿음이 부족함을 느꼈다”고 밝히고 “이런 자리를 통해서 화두에 대한 정견과 세계관과 인생관이 바로 서면 학자들은 글을 통해서 대단히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실참과 학문 간에 대화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대담의 정례화에 선사-학자 인식 같이해
그동안 실참과 학문간의 교류가 단절되어 전 세계적으로 명상 붐이 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의 대중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송대의 간화선, 조선 후기에 유대치를 필두로 한 선풍진작 등은 모두 당대 지식인들의 역할이 크게 작용하였다. 선학발전을 위해서는 현재에도 불교학자 등 지식인들의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선원장 스님들 역시 선의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고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대화모임이 더욱 활성화되고, 정례적으로 개최될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했다. 나아가 수좌회 산하에 수행법 연구, 간화선 대중화 방안 탐구 등을 전담할 연구소 설립 등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불교적 가치관에 입각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에도 인식을 같이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