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수리기술자를 실제 고용하지 않고 명의만 대여해 쓰는 명의대여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이종걸 의원(민주당 소속)은 지난 10월 24일 “문화재청과 한국전통문화학교가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문화재수리업체 중 상당수가 문화재 수리기술자를 실제 고용하지 않고 명의만 빌려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문화재보호법은 등록된 문화재 수리업체에 대해 문화재 수리기술자를 상시 고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법에 따르면, 보수 분야 2인, 단청분야 2인(또는 보수 3인, 단청 1인)을 관련 업체는 상시 고용해야 한다.

이종걸 의원은 이날 “부여에 소재한 한국전통문화학교에 다니면서 문화재 수리기술자 자격증을 획득한 학생 중 최소 4명이 각각 경남, 경북, 전북 등에 있는 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야간도 아닌 주간에 최소 12-20학점을 듣는 바쁜 학사 일정 속에서 경북이나 경남에 있는 회사를 낮 시간에 다니면서 충남 부여에서 진행되는 수업을 듣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이 같은 사실은 업계에서 자행되는 명의 대여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회사 측은 비용 절감 등의 목적으로 실제 고용은 하지 않고, 문화재 수리기술자들에게 일정액만 지불하면서 명의를 빌려 썼다”며 “명의대여는 부실공사의 첫 걸음인 만큼 이에 대한 실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문화재청은 이와 관련, “관리 감독은 시·도지사에서 하고 우리는 보고만 받는 상황이지만 일단 시·도 지사와 함께 사실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은 “문화재 수리기술자 명의대여 행위는 결국 문화재 수리의 부실을 초래하고, 부실업체를 용인하는 결과를 낳는다”며 문화재를 공부하는 학생들에 대해서도 “아무리 어려워도 학생이 불법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며 자성을 촉구했다.

현재 문화재수리기술자의 자격증 1년 대여료는 비공식적으로 연간 3500만원에서 2000만 원 선에 거래되고 있으며, 관련 업계는 이런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부실공사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황평우 소장은 “미디어붓다가 보도한 선암사의 총체적 부실공사나 부석사 무량수전의 방염제 공사도 결국 이런 실정과 무관하지 않다”며 “순천시 등에서 춘천지검에 의뢰해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이번 기회에 문화재보수를 둘러싼 일체의 비리가 발본색원되기를 기대하고, 수사과정을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