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차인(茶人)들에게 요즈음은 아주 흐린 날씨다. 차계의 혼탁함은 도를 더하고, 중국차는 홍수처럼 밀려와 우리 시장을 뿌리째 뒤 흔든다. 차 시장은 악화되고, 차를 내는 이들이나, 차 관련기업들도 어려움을 호소한다.

지난 1, 2년 사이에 우리 차 시장은 더 꽁꽁 얼어붙었다. 좋은 차를 값싸게 만들어 보급하고, 수출도 해야 살아날 수 있는데, 그동안 우리 차 산업이 너무 체계 없이 형성되다 보니 모든 것이 허술하다. 설상가상 주변 국가에서는 한국시장을 겨냥해 온갖 차를 만들어 내놓고 있다. 그들의 낮은 품질, 값싼 상품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우리 차 산업이 적절하게 대응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차 산업을 육성한다는 취지에서 정부에서 여러 가지 지원도 하고 있지만, 그것이 적재적소에 제대로 활용되는지는 의문이다. 외려 제다업계의 혼란만 부추긴다는 볼멘소리가 적지 않다.

이런, 어쩌면 암울한 한국 차 시장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어르신이 한 분 있으니, 그이는 한국제다 서양원 대표다. 운차(雲茶)라는 차호를 가진 서양원 대표가 차와 인연을 맺은 것은 57년이 넘었다. 본격적으로 차를 만들고 연구를 한 것은 올해로 51년째다. 반세기를 넘게 차와 살아온 그. 그가 올해의 명인으로 뽑혔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명인지위를 받을 만한 분이 받았으니 다행한 일이다.

명인제도는 전통식품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정부에서 지정하고 있는 제도다. 좋은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그동안 선정과정에서 이런저런 잡음이 들렸던 것도 사실이다. 명인지정을 받은 서양원 대표를 남도의 한 차밭에서 만나 그의 차 인생, 그리고 수상소감과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들었다.

서양원 대표는 한꺼번에 두 가지 분야, 즉 말차와 황차의 제다 부문에서 명인지정을 받았다. 전에 없는 일이고, 앞으로도 없을 이례적인 일이다. 아마 지정자가 서양원 대표가 아니었더라면, 그렇지 않아도 말이 많은 차계에서 온갖 입방아가 난무했을 것이다.

말차 분야에서는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의 전문가이고, 황차 분야는 전승해온 제다법의 활성화를 통해 한국 차 시장과 차 산업을 지켜달라는 각별한 당부의 의미가 담겨 있음을 서 대표는 잘 알고 있다.

알다시피 한국의 차 산업과 차 시장은 중국차의 무차별 수입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중국차의 품질이 좋은 것도 아니다. 품질이 좋은 것은 터무니없이 비싸 일반인들은 살 엄두를 낼 수 없고, 값싼 차들은 차라리 먹지 않는 것이 나을 정도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중국차의 시장 점유가 확대되고, 한국 차 산업이 위기에 몰리면서 결국 한국식 황차 활성화가 불가피한 상황까지 몰린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나라의 황차 시장은 혼탁하고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저마다 고수이고, 자기 차가 아닌 다른 이의 차는 다 엉터리라는 폄훼와 비난이 팽배하다. 제다방법에도 질서가 없고, 그저 적당히 발효시켜 누런 빛깔만 내면 황차인 줄 아는 이도 적지 않다.

이런 암담한 상황은 결국 서양원 대표의 결단을 불렀다.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고유의 황차 제다법을 익히 전승해온 그이지만, 그동안은 한국차의 대명사, 덖음차를 고수하면서 황차에 대한 투자를 자제해왔던 그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차 시장의 사정이 달라지면서 서대표는 황차의 생산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황차를 만들어 경제적인 값에 보급함으로써 중국 등에서 밀려오는 싸구려 발효차에 제동을 걸겠다는 뜻이다. 서 대표는 정부가 자신을 황차 분야의 명인에 지정한 것은 황차 보급으로 우리나라 차 시장을 지켜달라는 의미도 담겨있다고 믿는다.

우리나라 차 산업을 이끌고 있는 그는 50년 전부터 우리나라 3곳에 10만평이 넘는 차밭을 확보하고 차를 연구하고 만들어온 대표적인 차꾼이다. 그가 설립한 한국제다는 우리나라 차 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전문기업이다. 차에 한평생을 바쳐온 서 대표의 열정은 가족에게도 그대로 전해져 아들을 포함, 직계가족 9명이 차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차시장을 지키고 또 발전시켜 나갈 토양을 서 대표는 갖추고 있는 것이다. 평생 차의 대중화, 차문화의 보급에 큰 역할이 해온 서 대표에게 주어진 몫은 자못 크다.

차와 더불어 평생을 살아온 서양원 대표는 차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 차 관련 학회에 참석해 학자들이 우리 차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학문적·이론적 토대를 만들어 줄 것을 촉구할 참이다. 그의 삶이 순탄한 세월로만 이어졌을 리 없지만 서양원 대표의 얼굴은 참 맑다. 깊게 패인 주름살마저 정겹다. 선한 얼굴, 저런 모습을 두고 이름이리라.

고희(古稀)를 훌쩍 넘어 이제 8순이 다가오지만, 차에 관한 그의 열정은 여전히 열혈청년이다. 아직 회향이란 말은 그에게 성급하다. 서 대표는 슬하 6남매를 두었는데 모두가 차인이다. 차밭과 공장을 바쁘게 오가며 부친의 뒤를 이어 가업을 이은 외아들 민수씨를 바라보는 서 대표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흐른다. 그동안 서양원 대표는 크고 작은 상을 많이 받았지만 이번에 받은 제다 두 분야에서의 명인 지정이 특히 감회가 깊은 이유다.

■한국제다 서양원 대표 약력

△31년 전남 광양 출생 △부산 동아대학교 졸업 △1953년 차를 부산지역 약방에 한약으로 제공하고 공업용 금속착색에 차(茶)를 이용하면서 착색업체에 차를 납품하며 차와 인연을 맺음 △1958년 순천시 인제동에서 ‘한국홍차’라는 간판을 걸고 차류 제조 △60년대초 야생차 발굴을 위하여 15년간 전국을 헤매면서 200여곳의 차나무 자생지 발굴 △79년 10월 광주시 동구 소태동으로 확장 이전 현재 총8종31품목의 천연 건강다류 생산 △94년 상호를 ‘한국제다’로 변경 △94년 두충차 일본 수출 △95년 작설차 완제품 캐나다 처녀 수출 △95년 제4회 초의상 수상 △96년 일본 시즈오카현청 주최 세계 차대회 한국대표로 참가 △97년 광주시 소태동에 무료 차생활 교육장인 운차문화회관 개관 △99년 해남 대흥사에 차의 성인이신 초의선사의 동상을 순수 사비로 건립 △사단법인 한국차문화협회 차생활 지도사범 교육을 위해 한국제다의 제반 시설을 무료 개방 △2000년 5월 한국차인연합회 주최 최우수 차 품평회에서 한국제다의 상품이 ‘올해의 명차’로 선정 △2008년 말차·황차 분야 명인 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