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신축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어온 고려대와 개운사의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보타사 마애불은 붕괴가 우려될 정도로 위험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보타사 마애불은 2005년 보수공사를 했지만 콘크리트 등으로 날림공사를 한 탓에 최근 또다시 붕괴위험 진단이 나와 현재 성북구청 측이 재보수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 보타사 마애불은 여기저기 균열이 생기고 이전 공사 때 땜질을 했던 콘크리트 부스러기들이 툭툭 떨어져나오는 실정이다.

설상가상으로 고려대 기숙사 신축공사가 진행되면서 암반에 기초말뚝을 박는 등 소음과 분진이 지속되고 있다.

9월초 개운사와 보타사 측이 고려대와 현대산업개발 측이 문제를 재기해 일단 공사를 중단시켰지만, 현재 공사는 다시 재개중이다. 보타사 측은 서울시청과 성북구청에 공문을 보내 문제점을 지적했으나 구청 측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답신을 보냈고 서울시청은 성북구청의 책임이라는 답변만 전달했다. 그러나 성북구청이 직접 실시한 2002년 실태조사 보고서에는 보타사 마애불이 “붕괴 위험”이라는 진단이 기재돼 있다.

고려대와 개운사의 갈등이 심각해지자 9월 23일 고려대 이기수 총장이 개운사 주지 범해스님을 방문했다. 이기수 총장과 범해 스님은 “문화재 보호와 개발이라는 두 명제를 충족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자”는 데 의견을 모으고 양측이 함께 계측을 하자고 약속했다.

개운사와 보타사는 고려대 측에 “마애불로부터 충분한 거리를 두고 건물높이를 축소할 것, 소음과 진동을 최소화하는 공법을 선택하고 마애불에 대한 제반 안전조치 및 지속적인 진동계측을 할 것” 등을 요구했다.

이에 고려대 측은 개운사가 지정한 업체를 통해 모일 10시에 계측을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10월 9일 스님들이 지정업체와 공사현장을 찾았을 때는 이미 모든 계측이 끝난 상태였다. 공사가 시작하기도 전인 오전 9시에 현대산업개발이 지정한 업체를 통해 이미 계측을 끝낸 상태였던 것이다.

수차례 고려대와의 약속이 번번이 파행되자 개운사 측은 더 이상 이들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확인하고 비평화적 대응에 나설 것을 결의했다.

21일 총무원에서 기자회견을 연 범해 스님은 “고려대로서는 학생들 기숙사를 만든다는 좋은 일이고, 우리 쪽도 그것이 좋은 일이라는 데 대해서는 동의한다. 고려대가 민족사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최소한 문화재를 보호하는 범위 내에서 공사를 진행해줄 것이라 믿었고, 이번 공사가 사찰환경을 보호하면서도 개발이 이뤄질 수 있다는 좋은 선례가 되리라 기대했다”며 “하지만 번번이 고려대 측의 약속 불이행을 보면서 더 이상 대화로서 풀어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비평화적 행동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결국 개운사 측은 10월 22일 고려대 정문에서 항의법회를 열었다. 법회를 마치고 스님들이 고려대에 항의서한을 전달했으나 고려대 측은 총장이 부재중이라며 서한 수령조차 거부했다. 이에 분노한 스님들이 그 자리에서 서한을 찢고 본관 앞에서 연좌정진에 들어갔다.

보타사 주지 초우 스님은 그 자리에서 3000배 참회정진에 들어갔고, 앞으로 매일 3000배를 하겠다고 밝혔다.

스님들의 분노가 진정기미를 보이지 않자 고려대측은 그제서야 23일 범해 스님과 총장과의 면담을 제안했고, 개운사는 이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면담이 결정된 후에도 스님들과 신도들은 23일 오전까지 철야정진을 진행했다.

범해 스님과 고려대 총장은 23일 오후 5시 총장실에서 면담을 가질 예정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합일점을 찾지 못한 양측이 이날 면담으로 뚜렷한 해결책을 마련할 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