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원-불교방송은 ‘불편한 동거 중’

계륵(鷄肋). 닭갈비를 지칭하는 것으로 ‘먹으려면 먹을 것이 없고, 버리려면 아까운 것’을 말한다. 진퇴양난에 처해있던 조조가 부장 하후돈이 군호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묻자 답한 것에서 비롯된 말이다.

불교진흥원 입장에서 불교방송이, 또 불교방송 입장에서 불교진흥원이 계륵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어찌되었든 불교계를 대표하는 두 재단법인은 현재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고 헤어지자니 이런저런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불교진흥원과 불교방송의 동거는 1989년 불교방송 설립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설립 당시 진흥원에서는 설립자금의 상당부분을 담당하며 사장 선임권 갖고, 종단(조계종)에서는 법인의 이사장을 맡는 시스템으로 출발했다. 이런 관계가 틀어진 것은 조계종이 94년도 이른바 종단개혁과 함께 겸직금지 조항이 생겨나면서부터다. 이후 종단의 직접적인 영향력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불교진흥원의 권한은 상대적으로 늘어났다.

사장 추천 잇단 실책…입지 스스로 좁혀

이런 현실에서 불교진흥원의 추천을 받아 취임한 사장이 불교방송이사회보다는 불교진흥원의 진흥원의 눈치를 살피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 그런데 이후 두 기관 사이의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 것은 불교진흥원 추천으로 취임한 사장들이 중도하차하는 등 거의 실패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IMF 당시 취임했던 성낙승 사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장인사가 실패했다는 게 교계의 중론이다.

이 점은 불교진흥원이 불교방송에 대해 당당할 수만은 없게 되는 근거가 되었다. 적합한 인사를 추천하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게 된 것이다. 이 점은 또 수치상 엄청나게 지원을 받은 불교방송이 불교진흥원에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불교방송 사장후보 추천의 잇따른 실책으로 불교진흥원은 실질적으로 불교방송의 주인 위치에 있으면서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애매한 입장이 된 것이다.

갈라서느냐, 권한 행사하느냐 ‘갈림길’

그렇다면, 이 두 불편한 동거법인 사이의 문제는 어떤 방향으로 해결해야 할까. 불교진흥원 제2세대 출범과 함께 어떤 형태로든 불교방송과의 관계 재정립이 불가피하다는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그 향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불교방송과 불교진흥원의 속사정에 밝은이들은 두 법인의 향후 관계가 갈라서든지, 아니면 책임과 권한을 확실하게 하는 관계정립을 하든지의 두 가지 상반된 방향에서 정리될 것이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먼저, 이번 기회에 깨끗이 헤어져야 한다는 견해다. 불교방송의 모든 권한은 불교방송이사회로 넘기고 불교진흥원은 사장추천권은 물론 불교방송이사의 권한(총 5명)까지 깨끗이 포기하고 관계를 말끔히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순수한 재정적 후원자로 계속 남을 지의 여부는 불교진흥원이 알아서 정할 별개의 문제다.

둘째는 불교방송에 막대한 재정지원을 해온 만큼 불교진흥원에서 확실하게 권한을 행사하고 그것에 대한 일정한 책임도 지자는 것이다. 어차피 종단에서 불교방송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시스템에서 불교진흥원이 권한과 책임을 갖고 불교방송을 책임질 때 피차 볼멘소리도 사라지고, 지금과 같은 어색한 동거도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불교진흥원 구성원 다수는 ‘관계정리’ 입장

그런데 현재 불교진흥원 구성원들의 상당수는 차제에 불교방송과의 관계를 말끔하게 정리하는 쪽, 그러니까 전자의 의견을 갖고 있는 쪽이 대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지원예산의 대부분을 불교방송에 할당하다 보니, 교계 전반에서 불교진흥원에 대한 이미지가 악화되었고, 칭찬은커녕 욕만 먹는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일종의 피해의식이 작용하고 있다. 불교방송으로 지원을 집중하기 이전의 불교진흥원은 교계단체로부터 신망을 받았다는 것, 이따금씩 불자들로부터 좋은 일에 써달라며 재산기부를 문의해오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 이런 견해를 가진 이들의 입장이다.

또한 불교방송에 대한 지원을 20년 정도 했으면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의견도 적지 않다. 불교진흥원에 따르면, 불교진흥원은 1989년 불교방송 설립당시 이사출연과 방송시설비, 임대료 지원 등으로 21억 원을 지원한 이후 이듬해인 90년에는 10억, 91년 11억, 92년 10억, 93년 이후 현재까지 매년 5억에서 8억 원을 지원, 현재까지 150억 원(현재금액으로 환산하면 200억 원을 훨씬 초과할 것으로 보임)을 지원했다. 게다가 방송초기에 불교방송에서 안정단계에 들어서는 3년간만 지원하면 이후로는 불교방송이 스스로 독립하겠다는 입장도 표명했던 만큼, 불교방송 일변도의 지원에서 교계의 뜻있는 사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불교방송 지원 20년에 남은 건 不信

방송포교를 통한 불교진흥이라는 공감대아래 불교진흥원과 불교방송이 함께해온 지난 20년은 결론적으로 불신이라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같은 불신은 최근 사장선출을 둘러싼 여러 불협화음과 함께 노출됐다. 내부적으로 잠재돼온 상호불신이 불교방송 이사장의 불교진흥원 사장추천권 '무시'를 계기로 수면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와 관련 불교진흥원의 한 이사는 “불교방송 정관은 ‘조계종 스님, 이사장 피선출권 독점’과 ‘대한불교진흥원의 사장추천권 보유’라는 특칙의 상호 균형체제를 골격으로 하고 있다”며 “이는 불교방송과 불교진흥원 양자관계가 ‘가치동맹과 신뢰동맹’의 합의에 기초해서 출발했음을 나타내는 것인데, 최근 불교방송이사장이 불교진흥원 추천 사장후보 가운데 새 사장 선출절차를 이유 없이 지연하는 것은 상호 균형과 신뢰를 깬 것”이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불교진흥원은 현재의 교계 지원예산 연간 10∼15억 원 중 8억 원을 불교방송에 지원하고 있다. 이는 전체 지원예산의 평균 70∼8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특히 불교진흥원 내부에서 불교방송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견해의 배경에는 그동안의 막대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불교방송의 청취율이 1% 미만에 머물러 군소종파인 원불교 원음방송에도 뒤쳐지고 있다는 실망감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밖에도 불교방송의 1년 예산이 160억에 이르러, 상대적으로 왜소한 불교진흥원에 언제까지 기댈 수는 없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한마디로 성년이 된 불교방송도 자체적으로 독립 운영할 시점이 지났고, 불교진흥원은 본연의 기능으로 돌아가 효율적이고 집중적인 교계 지원사업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 불교진흥원 구성원 다수의 생각이다. 지원사업은 엄선해서 시행하고, 신규 목적사업은 불교진흥원만이 할 수 있는 일에 한정하여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운영상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새 이사장 ‘가을 혁신안’에 교계 이목 쏠려

교계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불교진흥원의 민병천 새 이사장은 취임인사를 통해 올 가을쯤 불교진흥원 운영의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변화의 대상은 직접사업은 물론 지원사업도 포함된 전방위적 차원이 될 것이라는 게 불교진흥원 고위 관계자의 귀띔이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민 이사장은 법당과 불교문화센터, 대원불교대학, 출판 등 불교진흥원의 설립취지에 딱 들어맞지도 않는 사업에서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도심의 17층 건물을 보유하고도 법인이 수익을 내지 못하는 문제, 오랜 기간 불편한 관계를 이어오다가 최근 사장선임을 둘러싸고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뢰에 심각한 균열이 초래된 불교방송 관련 현실적 문제들에 대해 특단의 결단을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불교진흥원이 법인의 이름만 빼고 다 바꾼다는 각오로, 새로운 사업계획과 기존사업의 과감한 폐지 및 축소를 단행하는 혁신적 변화를 할 수 있을 지, 아니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을 되풀이할지 민병천 새 이사장의 향후 행보에 쏠리는 교계의 눈길이 조금씩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