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연구는 곧잘 퍼즐놀이에 비유되곤 한다. 워낙 적은 사료 때문에 상상력으로 채워야 할 공간이 많다는 의미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이 고려후기에 쓰여진 삼국유사라는 점만 보더라도 한국 고대사학자들이 자료 빈곤에 얼마나 시달릴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전무한 고대 문헌들이 일본이나 중국에서 간혹 발견되곤 한다. 이런 문헌들이 발견될 때마다 고대 한반도의 영향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일본 학자들은 중국의 저술이라고 주장하고, 한국 학자들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문헌이라고 주장하는 논쟁이 반복적으로 벌어지곤 한다.

애초부터 한반도에서 건너간 이들의 저작들은 일본사 연구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돼왔고, 아직도 상당수 자료들은 한국의 자료인지 중국 자료인지 확인되지 않은 채 일본의 장서 속에 깊숙이 묻혀있다. 이들 자료들이 한국 학자들의 손에 닿기란 매우 어렵고 또 어려운 일이다.

최근 일본에 남아있는 고대 한국불교의 문헌들을 살펴볼 수 있는 학술대회가 개최돼 관련 학계의 큰 주목을 끌었다.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는 8월 20일 서울역사박물관 시청각실에서 ‘한국불교문헌의 새로운 발굴’을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세미나는 한국 불교사의 미발견 문헌들, 혹은 잘못 알려져 있던 문헌들을 찾아내 재검토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끌었던 발표는 일본 도요대(東洋大) 다무라 코유 명예교수의 논문 ‘아스카 시대 불교와 삼국의 승려’였다.

아스카 시대에 삼국의 불교가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무슨 영향을, 어떻게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아직 미진하다. 그 이유는 한국 내에서 당시 불교학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사료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무라 교수는 이번 발표에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문헌 중의 하나인 법화의기가 누구에 영향에 의해 쓰여졌는지에 주목했다.

이 책은 쇼토쿠 태자가 양나라 광택사의 승려 법운의 저술인 법화의소를 저본으로 해서 저술했다는 것이 기존 학계의 정설이었다.

그런데 다무라 교수는 법화의기의 내용 가운데 법화의소와 반대되는 견해들이 다수 발견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법화의경에서는 교판론 중 유상교, 대품경, 유마경, 열반경을 다양하게 해설하고 있는 반면 법화의소에서는 이를 통일적으로 해설하고 있다. 또한 의기가 원인의 부분과 결의장원의 분과를 별도로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의소는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상위가 불생하게 된다. 또한 의소에서는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개소를 삭제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이런 의문을 품을 수 있다. 법화의소와 반대되는 독자적인 해석이 쇼토쿠 태자 개인의 의견인 것일까.

다무라 교수는 이것이 쇼토쿠 태자의 개인적 의견이 결코 아니라고 단정했다.

왜냐하면 법화의기에는 학술고문으로 활동한 승려의 존재를 추정케 하는 부분들이 잇따라 등장한다는 것이다. 또한 아스카 시대 일본의 불교교학 수준으로 추정해 보았을 때 일본 내에서 독자적으로 이같은 학술연구가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쇼토쿠 태자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제3자의 인물’이 있다는 주장인데, “그가 바로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었던 백제의 혜총과 고구려의 혜자”라는 것이 다무라 교수의 주장이다.

다무라 교수는 광택의 영향을 깊게 받은 것은 양나라와 교류가 깊었던 백제 출신의 혜총의 영향이고, 그와 반대되는 의견들이 도출되는 것은 고구려 승려 혜자의 영향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쇼토쿠 태자에게 영향을 미친 인물이 중국 출신의 승려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다무라 교수는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외국 승려들 중에서 14명이 백제승려, 9명이 고구려승려, 5명이 신라 승려인 반면 당나라에서 온 승려는 10명에 불과하다”며 “이들 외국승려들의 숫자만 보더라도 아스카시대 일본 불교계에 깊은 영향을 미친 것은 한반도에서 도래한 승려들”이라고 지적했다.

다무라 교수는 “한국 내에서 삼국불교에 대한 연구와 법화의소의 내용을 비교해보면 훨씬 더 명확하게 나올 테지만 한국에서 삼국불교 연구가 너무도 미진해 이에 대한 심도깊은 분석이 힘들다”며 “하지만 법화의소를 비롯해 일본내에 남아있는 한반도 불교의 내용을 통해 보았을 때 고구려와 백제의 교학수준은 상당히 높은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당시 백제불교의 교학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또 한편의 논문이 발표돼 주목을 끌었다.

「백제 도장의 <성실론소> 일문(逸文)에 대하여」를 발표한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 김천학 연구교수는 백제에서 건너가 일본에서 활동한 승려 도장의 삶과 사상을 조명했다.

백제 도장은 백제에서 일본으로 일본사상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본학자들은 그가 한반도에서 건너갔다는 이유로 비중있게 연구하지 않았고, 한국에서는 그에 관한 자료가 전무하기 때문에 연구가 불가능해 ‘그런 사람이 있었다더라’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

김천학 교수는 교넨(1240～1312)의 <삼국불법전통연기>를 통해 “백제에는 삼론종 승려들이 쇼토쿠 태자에게 성실론을 가르칠 정도로 삼론종과 성실론이 사이좋게 공존했고 그러한 터전에서 도장이 성실론을 배운 것”이라며 “도장은 백제의 멸망과 함께 친족들과 일본으로 망명하여 일본에서 성실론 연구에 매진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는 백제에서 당시 중국의 성실론 연구와 삼론 연구를 동시에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이 돼있었고 그런 연후 백제 내에서 두 학파의 논서가 충분히 연구되었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도장의 성실론소는 가마쿠라 시대 이전까지는 도다이지 삼론종에서 주로 학습됐고, 가마쿠라 시대가 되어 널리 유통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어 “사상적인 측면으로 보면 도장은 성실론 사상을 충실히 계승하면서 백제에서의 성실론 연구를 비롯하여 천태, 열반, 지론, 계율 연구를 충분히 반영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며 “이는 도장이 학습해온 백제불교의 현상을 이야기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발표된 두 학자의 논문은 그동안 밝혀지지 않은 백제불교의 교학수준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성과로 평가된다.

이날 세미나에 참가한 학자들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삼국시대의 저술들을 발굴하게 되면 고대 한국불교사상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한국학자들이 일본에 남아있는 고대 자료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