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는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아야 하지만

“근자에 와서 특별히 부각되는 것이 종교편향의 문제다. 본래 수행자에게는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아야 하겠지만, 일반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바로잡아야 하고, 잘 된 것은 상을 주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지금은 옳고 그른 것을 가려야 할 때다. 대중(종도)의 뜻이 절대적으로 그렇다고 하면 따라가야 한다. 반수 이상이 그렇다고 해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수행자이지만 이렇게 할 때는 그리 해야 한다.”

여는 교구본사주지회의 때와는 달리 8월 18일 오후 2시 '헌법파괴 종교차별 이명박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를 다루기 위해 열린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4층 회의장에는 긴장이 맴돌았다. 회의에 참석한 전국 25개 본사주지 스님들은 하나같이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부의 마치 불교를 조롱하는 듯한 안하무인적 태도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스님들의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다. 평소 은유적 표현을 즐겨 사용하면서 직접적인 의사를 잘 표명하지 않았던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이날 이례적으로 직접적인 표현을 쏟아냈다.

잘못을 방치하는 것도 계를 어기는 것

“보살계에 잘못을 방치하는 것도 범계(犯戒; 계를 어기는 것)에 속한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모든 것이 너무 잘못되어 갔고, (불교계에서) 여러 차례 시정하도록 요구도 했지만 잘 안 되어서 그런 것을 바로잡고자 이렇게 모였습니다. 8월 27일 범불교도대회와 관련해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 잘 해결하고자 이렇게 본사주지스님들을 오시라고 했습니다.”

지관 스님은 당초 23일날로 잡혔던 범불교도대회 일정변경과 관련 본사주지들의 이해를 구했다. 처음에는 본사주지회의를 통해 입장을 밝히고 스님들이 모이는 승려대회를 열고, 맨 나중에 모든 불자들이 참여하는 범불교도대회를 열 계획이었으나 하안거 중이어서 여의치 못했고, 당초 대회일정으로 잡았던 23일도 마침 올림픽 폐막식과 겹친다고 해서 부득이하게 27일로 늦춰 잡은 것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평등해야 시비 사라지고 종교도 예외 아니다

“범불교도대회를 하기로 했으니 잘 해서 모든 것이 잘 되도록, 바로 되도록 힘을 모으자”고 밝힌 지관 스님은 “우리는 이 행사(27일 범불교도대회)가 시작이지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면서 지관 스님은 “우리 사회가 평등해야 한다. 그래야 시시비비가 사라진다. 거기에는 종교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종교에 차별을 두면 나를 위해서도 좋지 않은 일이다. 오늘 잘 논의해서 모든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고견을 말씀해 달라”고 요청했다.

불교계는 8월 27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종단협의회 소속 전체종단의 사부대중이 참석해 열리는 종교차별 규탄 범불교도대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공개사과 및 재발방지 약속 *어청수 경찰청장의 파면 등 관련자 문책 *정부의 종교차별금지 입법조치 *국민화합을 위한 수배자 수배해제 대화합 조치 등을 요구할 방침이다.

비공개로 회의가 진행되면서 회의장을 빠져 나와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을 나섰다.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입구에는 8월 27일 대회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었고, 그 옆으로 전단지가 수북히 쌓여 있다. 주차장 쪽 벽에는 대형 플래카드가 잔잔히 흩뿌리는 비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세지 않은 비바람 앞에 맥없이 펄럭이는 플래카드처럼 21세기 초입 한국불교의 처지가 갑갑하게 느껴졌다.

한편 조계종 기획실은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교구본사 주지회의에서는 ‘헌법파괴 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 대회’와 관련한 범불교도대회 상임봉행위원장 원학스님(총무원 총무부장)의 경과보고가 이뤄졌으며, 교구본사 주지스님들은 이번 범불교도대회가 여법하게 봉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또 이날 회의에서 본사주지스님들은 일부 정치인과 지역 경찰들이 지역 본말사 주지스님들을 대상으로 한 회유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적극 대처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또 향후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과 경찰들의 스님들에 대한 회유에 대해 더 강력하게 대처하자는 데 합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종단산하 25개 교구본사 주지스님들이 전원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