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사회와 구별되는 현대사회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물질적 욕망을 천시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전통시대에는 사람들의 직업을 크게 사농공상으로 구분했는데, 사농공상이라는 말 중에 상업이 가장 끝에 위치한 것은 상행위를 천시하고 상업인을 천시했던 풍토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물질적 욕망을 추구하는 짐승의 감각을 발휘하는 상업에 대해 도덕주의자들의 견제가 내포돼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 특히 최근에 이르러 돈과 부는 더 이상 천시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일부 내지는 최고의 가치인양 노골적이리만치 존중되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모든 행위를 자유롭게 허용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는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거대기업이 군소기업의 사업영역을 잠식하고 세계적 금융재벌은 군소국의 금융산업을 뒤흔드는 행위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그리고 권력과 금력의 대소에 의해 서열이 매겨지고, 인간의 심성 중에서도 불성을 추구하는 보리심 대신 물질적 욕망을 추구하는 짐승의 심성이 더욱더 확대돼 간다.
불교적 교리로 본다면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신자유주의의 대표적 제도인 한미FTA 체결을 목전에 앞두고 불교학연구회(회장 본각)는 8월 9일부터 10일까지 화순 유마사에서 ‘신자유주의와 불교’를 주제로 여름워크숍을 개최했다.
‘신자유주의의 정체와 불교도의 역할’을 발표한 동국대 불교학과 김성철 교수는 “이러한 자유방임적 가치관과 완전히 상반된 가치체계에 의해 운영되는 사회가 바로 불교의 승가사회”라고 신자유주의와 불교의 차이를 설명했다.
신자유주의에서는 모든 경제원리를 자유롭게 인간의 욕망에 내맡기는 반면, 승가사회에서는 ‘이법(理法)으로서의 윤리’인 계에 근거한 율의 규범에 의해 운영된다. 계와 율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동물적 속성’ 즉 욕망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같은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불교도의 역할을 “중도불성(中道佛性)의 감성과 천수천안(千手千眼)의 실천”이라고 지적했다.
빈곤과 부유의 차별, 남과 북으로 갈린 분단 등 이분법적인 사고가 심해질 때 이를 타파하기 위해 중도불성이 움직인다. 이러한 중도불성의 감성이 구현되는 롤 모델(Role Model)을 김 교수는 “천개의 눈으로 고통 받는 중생을 찾아내 천개의 손으로 고통을 보듬는 관세음 보살”이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현대판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은 무엇일까. 김 교수는 이를 NGO라고 정의했다.
김 교수는 “약자를 보살피고 불의에 항거하는 NGO의 천수가 인터넷의 천안과 만남으로써 우리사회가 밝아질 수 있다”며 “천수천안 NGO의 감시와 보호와 항거는 신자유주의의 밀림을 지키는 이 시대의 희망”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경제인들의 독주와 정부의 실정을 감시하고 그 잘못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바로 천수천안 NGO의 몫”이라며 “NGO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불매운동”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발언은 최근 조중동에 광고 게재 기업에 대한 네티즌들의 불매운동을 정당한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된 것으로 해석된다.
김 교수는 “국제연합과 같은 세계 NGO 연합이 결성되고 인터넷을 통해 공동행동을 취하게 되면 신자유주의 시대의 공룡인 다국적기업도 조련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불교의 계와 율에 스며있는 반(反)동물적인 가치체계가 약육강식의 법칙에 의해 작동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운용에 대한 해독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