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 났습니다. 우리 연꽃마을에서는 시설이 부족해서 더 불자들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불교시설도 갈곳이 거의 없으니, 우리 노인불자들은 꼼짝없이 기독교, 천주교 등 타종교 시설의 서비스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된 지 40일. 노인복지의 최일선에서 눈물겨운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 각현스님을 안성 연꽃마을 감로당에서 만났다. 스님의 얼굴에 수심과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정말로 불교가 큰일 났다는 것이다. 노인복지에 대한 불교계의 낮은 인식수준을 설명하는 대목에선 저절로 목소리가 커졌다. 스님은 절박한 목소리로 격한 토로를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며칠 전 한 스님이 노모를 모시고 찾아왔습니다. 연꽃마을에 어머니를 의탁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연꽃마을엔 이미 정원이 꽉 찼습니다. 명색이 스님의 어머니인데 기독교 시설로 모실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눈물을 흘리는 스님을 돌려보내면서, 정말로 우리 불교가 그동안 복지를 등한히 해온 과보를 받기 시작했다는 현실을 절감했습니다. 큰일입니다. 더 큰 일은 사정이 이런데도 여전히 불교계에서는 선방수좌를 1등 스님, 포교스님은 2등 스님, 사회복지 스님은 3등 스님으로 여기고 있지 않습니까. 이게 말이 됩니까.”

내가 이렇게 목청을 높이는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면서 차를 마시며 잠시 숨을 고른 스님은 이내 말씀을 이어나갔다.

“지금은 우리 불교가 총력을 기울여서 사회복지에 나설 때입니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노인복지를 단순히 노인의 문제로 인식해선 안 됩니다. 이것은 불교의 미래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한국불교가 복지를 불교의 미래가 달린 문제라는 데 동의하지 못한다면 한국불교에 희망은 없습니다. 살아있는 자를 위한 불교를 해야지요. 언제까지 죽은 자를 위한 천도재에 몰두할 것인지 갑갑하고 답답할 뿐입니다.”

7월 1일부터 전국적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작됐다. 이 제도는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으로 일상생활을 혼자 하기 어려운 노인들에게 신체 및 가사활동 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여 노후생활의 안정과 그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사회보험제도다. 이 제도의 특징은 65세 이상, 또는 65세 미만이라도 노인성 질환을 가진 장기요양이 필요한 자는 누구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즉 과거 사회적 약자나 특별히 요양이 필요한 계층을 상대로 한 제한적 복지에서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보편적 복지로의 전환이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궁극적으로 이런 사회보장제도가 보편적 복지로 전환돼야 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지만, 미처 시설 수나 전문인력 등 노인복지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불교계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형국이다. 현재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실시로 인해 각종 서비스를 받게 될 대상은 약 16만 2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9만 명 정도가 노인복지 서비스를 희망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에게 복지서비스를 제공할 불교계 시설은 40여개 미만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 시설 당 70명씩 책임진다고 하면 2800명 선에 불과한 실정이다. 복지서비스를 희망하는 9만 명의 노인 중 불자분포를 30%, 즉 약 3만 명 정도로 줄여 잡는다고 해도 나머지 2만7천명이 넘는 불자들은 부득이 타종교 시설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노인복지 포교가 문제가 아니라 기왕에 불자인 노인들마저 다 타종교의 복지서비스를 받게 된 것이 현실이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없다. 개신교가 장악하고 있는 병원에 입원해서 개종을 하는 불자들이 속출하는 것이 현실인 점을 감안하면 노인포교는 이미 벼랑에서 추락하는 중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는 것이 각현 스님의 설명이다. 2010년부터는 장애인도 노인과 마찬가지로 제한적 복지에서 보편적 복지로 정책이 바뀌게 되어 있어 불교복지 전반이 큰 위기를 맞을 것은 시간문제다.

1200개 노인복지 시설 중에 개신교계가 운영하는 시설이 700여개, 가톨릭 운영시설이 300여개, 나머지는 불교계 40여개와 시군 등 지방기초자치단체에서 설립한 시설인데, 이나마 대부분 기독교에서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합니다. 사찰마다 노인복지시설을 운영해야 합니다. 총무원에서는 주지들에게 이런 일을 하도록 의무화하고 본사별, 사찰별로 선의의 경쟁을 시켜야 합니다. 가칭 불교노인복지협회와 같은 것을 설립하여 정보를 교환하고 복지정책 수립 및 복지전문가 양성 교육을 시행해야 합니다. 미디어붓다 기사를 보니 진각종은 그래도 준비를 하고 있더군요.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전 종단, 전체 불교계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대책에 나서야 할입니다.”

3년 전부터 이런 일이 있을 것임을 미리 예견하고 인연 있는 스님이나 단체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역설을 했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고 밝힌 각현 스님은 “그렇지만 지금은 과거의 과실을 따질 때가 아니라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천에 나설 때”라고 거듭 강조했다.

“특수 소외계층이나 빈민층을 위한 복지시대가 마감되고 전 국민을 상대로 한 보편적 복지시대가 개막된 오늘날, ‘복지 공개경쟁 시대’가 열린 지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불교계가 너무나 안타깝고 답답하다”는 각현 스님, 스님은 “불교계의 전반적인 인식을 전환시키는데 역량의 한계를 느끼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냐”며 쓴 웃음을 짓는다.

스님은 막 개원한 매머드급 파라밀 병원을 돌아보며, 또 매일매일 찾아오는 노인과 노인불자의 가족들을 맞아 상담을 하면서, 또 경기복지미래재단 대표이사로 일하면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평생 사명감을 가지고 일구고 축적해온 노인복지에 대한 성과와 생생한 노하우를 불교계에 전해야 하는 시절인연이 곧 다가올 텐데,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짓는 스님의 얼굴에 깊은 번민이 스치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