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과학문명의 발전에 따른 소통양식의 대변혁과 문화의 혁신과정에서 디지털 네트워크라는 사이버 소통방식이 하나의 새로운 후천적 문화양식으로 등장했고, 미국·일본·중국·유럽과는 또 다르게 우리나라, 그것도 일반 청소년, 여성, 서민 일반에게서 개적인 쌍방향 소통과 논쟁으로 가득찬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의 독특한 정신문화를 형성하여 이미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었다.”

시인 김지하(동국대 생태환경연구센터 석좌교수). 그가 오늘(8월 8일) 열린 '촛불과 줄탁동시를 생각한다'는 주제의 제8기 에코포럼에서 발제를 통해 ‘촛불’의 등장배경을 분석한 요지다.

월드컵 응원문화의 발전과정에서 축제형식이 등장했고, 올해 쇠고기 문제와 대운하 문제라는 정치적 아젠다에 대한 직접 민주주의 운동으로 그 차원을 높였다는 것. 김 시인은 따라서 지난 100일간 계속되어온 촛불문화제와 촛불시위는 축제와 정치의 결합, 숭고한 새 ‘문화혁명’의 한 형태로 정치적 상상력의 한 양식이라고 규정했다. 김 시인은 또 “촛불의 근저에는 후천개벽운동으로서의 거대한 네오 르네상스의 역동이 뜀뛰고 있다”며 “한민족은 고대 축제 때 사흘 밤 사흘 낮을 춤추고 노래 부른 민족으로 이름나 있으며, (이런 전통은) 영고, 무천, 동맹의 축제 때와 고려의 팔관이나 국중대회로 계승된다”고 밝혔다.

이런 천의무봉의 신기, 신명, 신바람이 이후 976회의 외국침략으로 억압되어 한(恨)이라는 이름의 그늘진 내상으로 침전되어 내려오다가 2002년 월드컵과 더불어 억압됐던 이 신기와 신명이 한의 일방적 지배를 뚫고 폭발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역사적 굴곡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촛불은 해명되지 않으며 제대로 접수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시인은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신기, 신명, 신바람이 ‘풍류’라는 이름의 문화적 축적의 기본이요, ‘신시’라는 이름의 시장과 경제, 호혜와 교환의 자연생명존중과 인간친교통합의 성스러운 시장의 추동력이요, ‘화백’이라는 이름의 직접민주주의와 대의적 단상 단하의 합좌기구를 통한 장기간에 걸친 토론을 거쳐 전원일치에 도달하는 “직접-대의”의 결합구조의 기원이라는 점이며, 이것이 지금 (촛불로) 살아난 것이라고 풀이했다.

인터넷 디지털 네트워크 문화의 특징을 △다층성과 다양성 △쿨함, 즐거움, 감동 △함축성, 직접성, 속도 △개체적 융합 △내부공생과 자기조직화 △종합정보학적 집합지성 △상고신화와 미래 멀티미디어 세계에로의 쌍방향 통행성 △뇌과학적 이전법에 토대한 ‘아니다-그렇다(no-yes)’의 생명논리학으로 분석한 김지하 시인은 이런 특징들은 “뚜렷이 후천적이며 개벽적이다”라고 규정했다. 김 시인은 생명, 평화, 풍류의 흐름 속에 이어져온 촛불은 6월 10일 이후 한 쪽은 낡아빠진 보수꼴통, 다른 한 쪽은 좌파 시위꾼으로 대표되는 폭력의 요인들, 즉 ‘까쇠’라고 이름 지을 수 있는 폭력선동자(조장자)들에 의해 악순환이 시작되면서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김 시인은 촛불이 폭력에 빠져들어 선을 넘었을 때, 정체불명의 까쇠들에 의해 거의 꺼지려 했던 절망의 순간에 등장한 종교계의 비폭력 촛불시위(시국미사, 시국법회, 시국기도회)는 어미 닭이 병아리와 똑같은 달걀부위를 쪼아줌으로써 개벽과 전환을 이루는 선가의 줄탁동시, 동학의 일언(一言)과 같은 과정이었다고 해석했다.

김 시인은 “촛불이 변화해야 하는데, 마땅한 방법이 없다. 촛불이 분명히 줄어들고 있고, 반드시 변화해야 할 시점인 만큼, 국면전환을 위한 중의를 모아야 한다”며 그 이론적 대안으로 동학의 조직이 포(包)와 접(接) 이중구조로 되어 있는 원리를 제시했다. “접은 동학꾼의 기초 조직으로 소쿠리에 비유할 수 있고, 포는 유불선의 명망가들(스님, 유학자, 산에서 수련하는 도사)의 전선조직으로 품앗이에 비유할 수 있다”고 설명한 김 시인은 “경전도 한문과 한글 두 종류가 있고 주문도 두 종류다. 모두 다 식자층과 민중, 어른들과 아이들, 남성 가부장과 여성 주부들을 대상으로 이중화되어 있고 둘 사이의 공동해석을 겨냥하는 해월 최시형 선생 등의 수많은 현실적 통합해석과 가르침을 위기를 맞은 촛불이 주목해야 한다. 즉 ‘소쿠리(대중조직·병아리)를 메고 품앗이(명망가, 종교지도자들의 조언 또는 지도·어미닭)를 간다’는 이른바 줄탁동시의 의미로 요약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김지하 시인의 발제에 대해 토론에 나선 장시기 교수는 발제의 의미를 더욱 명확하고, 더욱 깊이있게 해석한 논평문으로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의 토론문은 단순한 토론이 아닌 마치 경전의 주석인 논이 훗날 3장의 반열에 들어 경전과 대등한 지위를 얻듯 시종일관 해박한 지식과 통찰로 발제자의 뜻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장시기 교수는 김지하 시인이 촛불문화제를 바라보면서 '승리라는 말을 함부로 써서는 안된다. 승리가 아니라 시작이다'라고 말한 부분에 대해 축제와 문화제를 하는데 승리가 어디 있겠는가? 김지하가 '개벽의 시작'이라고 이야기 하는 촛불문화제의 '줄탁동시'나 들뢰즈의 '어두운 전조'는 마치 춤과 같다고 동의했다. 스무살 미만의 청년 어린이들과 젊은 여성들을 포함한 근대의 소수자들이 근대와 다른 탈근대의 새로운 생성의 법칙이라는 놀랄만한 생성을 만드는 이유는 그들이 근대적 이분법에 의한 근대적 다수성(메저리티)의 척도나 평균을 구성하는 주류나 그 주변부에 머물러 있는 비주류가 아니라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근대적 이분법의 척도나 평균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기때문이라고 갈파한 장 교수는 김지하는 한반도의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어몰입교육이나 영어몰입교육에 의하여 소외된 한글 중에서도 이미 사라져버린 19세기의 한글을 시적 언어로 사용하고, 68년 프랑스의 5월 혁명을 경험한 들뢰즈처럼 21세기 대한민국의 촛불문화제 속에서 소수자되기, 어린이 되기, 여성되기를 경험한다고 분석했다. 장 교수는 이런 분석과 함께 김지하와 촛불이 만드는 21세기 대한민국이 만드는 놀랄만한 문화적 생성을 목격하고 있다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즐거움이라고 논평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