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반야회 회장과 동산불교대학 이사장을 맡아 교육 불사에 헌신했던 고 덕산 김재일 법사를 처음 만난 때는 그가 중구청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며 동산반야회 회장직을 수행할 때였다. 동산반야회 창립 10주년을 맞아 인터뷰를 위해 만난 것이니, 거의 20년에 가까운 까마득히 오래 전의 일이다.

워낙 신심이 튼실한 터라, 현직 공무원인데도 당시 동료들은 김 회장을 법사라고 호칭하고 있었다. 그가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첫눈에 느낄 수 있었다. 기자라는 것이 많은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니, 어지간히 기자생활을 하면 자연스럽게 사람을 보는 눈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은 특정한 능력은 아니고 일종의 감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 후 김재일 법사를 자주 만났다. 김 법사와 함께 인사동 부산식당에서 점심을 함께한 것만해도 셀 수 없이 많을 정도다. 그렇게 김 법사와 꽤 오랜 세월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그날 이후 김재일 법사가 추진하고 일궈온 많은 업적들에 대해 이런저런 조언을 하고,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생각을 함께 나누거나 다듬고, 또 그것을 널리 홍보하는 역할을 힘닿는 데까지 해왔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어떤 이들은 내가 일하던 매체를 동산불교대학의 기관지 또는 홍보지로 착각하는 경우까지도 있었다. 물론 한 매체가 특정 단체를 지나치게 편중되게 홍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당시 나의 생각은 달랐다. 그 이유는 김재일 법사와 만나 어떤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런 일을 한 번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으면 이내 그 일이 현실로 구현되곤 했기 때문이었다.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다는 불교계에서 김재일 법사가 보여준 실천력은 남달랐다.

사실 재미도 있었다. 내가 가진 작은 힘과 역할이 동산반야회와 동산불교대학이라는 단체에 도움이 되고, 그로 인해 동산이 성장하는데 작은 동인이 되고, 곧 그것으로 말미암아 재가불교의 성장으로 직결되고, 나아가 한국불교의 발전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니, 편중됐다느니 어쩌니 따위의 이야기들은 그리 염두에 둘 필요가 없었다.

몇 해 전, 김재일 법사가 몹쓸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늘이 노래지는 것을 경험했다. '미인박명이라더니, 부처님도 무심하시지'라며 혼잣소리로 몇 번이나 되뇌였는지 모른다. 병중에도 자신이 하는 일을 천직이자 불보살이 맡긴 사명으로 생각하고 그는 동산불교대학 이사장실을 지켰다. 그 병의 치유에는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는 자신이 맡은 일을 끝내 내려놓지 않았다. 오히려 대아미타사 건립이라는 대작불사를 힘차게 추진했다. 부처님 일을 하다가 이생의 인연을 접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라는 그의 신념을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이따금씩 만날 때 그의 혈색이 좋아 보이기라도 하면, 이제 조금만 견디면 완치될 것이라며 애써 힘을 드리려고 했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워낙 건강한 체질이었기에 잘 견뎌내며 병고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세상을 뜨기 며칠 전, 김재일 법사를 이사장실에서 만난 것이 생전의 그와 함께한 마지막 만남이었다. 당시 극도로 쇠약해진 모습을 보면서, 말소리가 자꾸 목젖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움츠려드는 것을 보면서, 나는 김법사의 모습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회장님, 이제 좀 쉬셔야지요. 어디 조용한 곳에서 요양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가 그 병엔 제일 안 좋다고 하니, 스트레스 받지 않는 곳에서 치료에 전념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스트레스도 결국 6근을 통한 6경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그 6경을 좀 단순화하고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으로 바꾸는 것이 좋잖아요.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아름다운 풍광은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6경이니까요. 그렇게 하시지요.”

“그래요. 나도 이제 그리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정릉 동산법당에서 지내며 좀 쉴까 생각 중입니다.”

당시 김재일 법사와 나눈 이 대화가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언제나 건강했던, 그리고 늘 자신감에 넘쳤던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는데도 나는 그의 등공이 그렇게 가까이 왔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대법사에게 어줍지않게 육근육경을 언급하는 나의 모습이 얼마나 안스럽게 보였을까. 그가 그때 마치 혼잣소리처럼 말했던 “요즘 나는 생사에 대한 집착이 없어졌어요. 죽는다는 것, 또 산다는 것에 대해 그리 연연하는 마음이 사라졌어요.”라던 말이 끝내 김재일 법사에게서 들은 마지막 말이 되고 말았다.

오늘 오전, 김재일 법사의 49재에 참석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그가 극락세계로 가는 마지막 의식에 빠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평소 쌓아놓은 복덕과 공덕이 지대한지라 예상했던대로 그의 입적을 슬퍼하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로 동산불교회관은 붐볐다. 그러나 그가 남긴 큰 족적과 업적을 생각한다면 그의 마지막 극락행을 배웅하는 인파가 견지동을 가득 메웠어야 온당했을 것이다. 이런 비교가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더 고민해야겠지만, 산중의 고승이 입적하면 수만의 인파가 불원천리 찾아와 애도하는 게 절집의 관행이 아니었던가. 이는 아직 그를 떠나보내기에 한국불교는, 특히 재가불자들의 의식은 더 변하고 달라져야 할 점이 많다는 씁쓸한 반증이기도 하다.

‘아직 할 일이 많은 사람인데 이렇게 빨리 극락세계로 가게 되어 애석하다’는 동산반야회 법주 무진장 큰스님의 법문이 지금 추모칼럼을 쓰는 나의 뇌리 속에서 맴돌고 있다. 김법사가 세상을 하직하던 날 서울대학병원 영안실에서 '나보다 먼저 가다니 괴씸하다'며 슬픔을 감추지 못한 채 영안실 앞에 망연자실 앉아계셨던 무진장 큰스님의 모습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김재일 법사님이시여! 부디 극락세계에서 편히 쉬소서! 그러나 너무 오래 쉬지는 말고, 다시 원생하시어 건강한 몸으로 이생에서 못다한 원력을 반드시 이루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