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이 집안(절집)에 승랍 순으로 앉지를 않고 벼슬중심으로 않습니다. ‘벼슬을 하는 자리에는 벼슬 순으로 앉고, 마을로 돌아오면 고향에서는 나이순으로 앉는다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속인도 나이순으로 앉게 되어 있습니다.”

“매일 한 시간이라도, 하다못해 일주일에 한 시간이라도 경전과 어록을 듣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중략> 무얼 알아야 앉아 있지요. 무턱대고 앉아만 있으니 동으로 가는 건지 서로 가는 건지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조계종을 대표하는 대강백으로 이름이 높은 무비 스님(전 교육원장)이 「승가교육 제7집」에 기고한 ‘(선원)청규편찬의 의의와 방향’이라는 제목의 기고를 통해 한국불교의 선방이 달라져야 한다고 강도 높게 주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무비 스님은 이 기고문의 ‘좌차와 독경’이라는 제목의 문단에서 승랍이 무시되고 경전이나 어록이 경시되는 두 가지의 폐단만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무비 스님은 “봉암사 결사에서도 ‘좌차는 계랍에 의함’이라고 밝혔는데 이것이 아무렇지 않은 문제 같지만 산문에 처음 들어오는 행자들이나 사미들에게는 주지지상주의로 흐르도록 만드는 근본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님은 “어느 날 주지되었다고 새파랗게 젊은 주지들이 노장들 위에 앉는다. 3직들 앉고 7중들 앉고 노장들은 저 밑에 밀려나 있기 때문에 노장들은 기분 나빠서 큰방에 안 간다. 이런 사례가 한 두 개가 아니다.”라고 개탄했다.

무비 스님은 이어 “제가 해인사 선방에 있을 때, 참 좋은 규칙을 세워서 하신다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성철 스님께서 백일법문을 하신 것이고 그 다음에 육조단경을 가지고 강의를 하신 것”이라며 “하루에 한 시간 소참법문을 하시니깐 훨씬 수행하는 분위기도 좋아지고 또 뭔가 알게 되고 ‘우리 가는 길이 이렇구나’ 이런 것을 일러주는 일이기에 참으로 좋은 풍토였다”고 회고했다. 무비 스님은 또 서옹 스님은 봉암사에서 임제록을 강의했고, 백양사에서도 어록을 수시로 강의했다고 소개하면서 특히 “한국 대표선사 성철 스님은 개인도서관까지 있는 스님이었고, 심지어 문학전집까지 다 읽은 분이어서 중도광(中道狂)이요 독서광(讀書狂)이라는 말을 감히 한다”고 말했다.

‘선원이 살아야 불교가 살고 불교가 살려면 선원이 살아야 한다’고 전제한 무비 스님은 “현 시대에 맞는 정말 최적의 청규, 가장 이상적이고 적합한, 실천가능한 그런 청규를 만들어야 한다”며 “옛 스님네의 정신은 계승하되 조도적인 문제는 이 시대에 맞게 기술적으로 잘 보완해서 한국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기틀이 되었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무비 스님은 “말할 자리에서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어버리고, 말을 해서는 안 될 자리에 말을 하면 말을 잃어버린다. (저는) 말도 잃어버리지 않고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감히 좀 과한 감이 있지만 선원청규 편찬의 기본방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며 기고문을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