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를 대표하는 학술지 <불교평론>의 폐간이 결정됐다. <불교평론>은 9월 21일 긴급 편집위원회 회의를 열어 <불교평론> 폐간을 최종 결정했다. 폐간 결정의 배경은 제52호에 수록한 재야불교학자 윤창화 씨(불교학술전문출판사 민족사 대표)의 ‘경허의 주색과 삼수갑산’이라는 논문에 대해 수덕사 문중에서 강하게 반발했고 <불교평론>를 발간주체인 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폐간으로 책임을 진 형국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폐간이 결정된 불교계 대표적 학술지 <불교평론>

윤창화 대표는 최근 발간한 <불교평론> 제52호에 게재한 ‘경허의 주색과 삼수갑산’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경허도 자신의 주색을 후회했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글을 발표해 교계 안팎의 주요 언론의 주목을 받는 등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윤창화 대표는 최근 입수한 김태흡의 경허와 관련된 미공개 글을 발굴, 이를 근거로 경허가 자신의 주색을 후회했다는 내용을 소개하며, 최근 조계종에서 발생한 도박승 파문 등 지계정신이 무너져 내린 승단을 에둘러 비판했다.

특히 윤창화 대표의 논문은 파계 행을 일삼는 승려들이 자신의 막행막식을 경허의 무애행에 빗대어 정당화 시켜온 데 대한 비판 및 경종 성격의 논문이었다는 점에서, 이를 문제 삼아 폐간 결정에 이르도록 한 일련의 행동은 어떤 이유로도 온당치 않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불교계는 <불교평론>이 돌연 폐간된다는 소식에 놀라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금치 못하고 있다. 그동안 <불교평론>이 불교학 발전에 기여해온 점이 컸고, 불교학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발표하고, 검증받는 최고의 장으로서 그 역할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교평론>은 또 현재 불교학자들이 논문을 발표할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학술지로 성장해 명실 공히 불교계를 대표하는 학술잡지로 사랑을 받아왔다. <불교평론>은 정통학술지의 딱딱함을 벗어나 세미 학술지의 성격을 겸비하는 세련된 편집으로 불교학을 대중화 시키는 데에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불교학자 및 불교계 활동가는 물론이요, 이웃종교의 학자들에게도 주목을 받았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밖에도 <불교평론>은 불교계의 다양한 이슈를 학술적으로 진단해보는 ‘열린논단’의 매월 개최해 수준높은 토론문화를 선도해 나가고 있고, ‘올해의 논문상’ 시상 등으로 불교학 활성화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 같은 <불교평론>의 알토란같은 역할이 인정받아 지난해에는 불교계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대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불교학은 물론 불교발전을 위해 꼭 있어야 할 소중한 이 학술지는, 그러나 학술적인 문제를 학술적으로 풀지 못하는 수덕사측의 납득하기 어려운 방식의 과도한 반발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급작스런 <불교평론>의 폐간 결정 소식에 교계 다수의 불교학자들과 관계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수덕사 측의 단세포적 대응에 대해 성토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고, 반드시 다시 발간될 수 있도록 중지를 모아야 한다는 여론이 모아지고 있다.

그동안 엄청난 정재를 들여 최고의 학술지를 만들어온 만해사상선양실천회를 향해 폐간 결정 재고를 요청하는 목소리도 분출될 것으로 보인다.

10월 10일 경허학술세미나 발표자의 한 사람인 동국대 김호성 교수는 <불교평론> 폐간 결정과 관련해 학문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경허학술세미나에서의 주제발표를 보이콧, 즉 발표를 하지 않겠다고 수덕사 측에 통보하기도 했다.

<불교평론>을 폐간 결정과 관련해 일부 학자들은 ‘한국불교판 분서갱유’라고 할 만큼 부끄러운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 행동은 경허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이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불교평론> 52호에 실린 경허 열반 100주년 특별기고 '경허의 주색과 삼수갑산'

특히 <불교평론>의 책임 있는 당사자가 수덕사를 방문해, 불편함을 끼친 데 대해 사과와 함께 서점 판매 중단 및 기이 배포된 <불교평론>의 전량 회수 등의 성의 있는 조치를 취했는데도, 끝내 폐간에 이르도록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교학계의 공분은 더욱 높아갈 것으로 보인다.

<불교평론> 홍사성 주간은 이번 사태에 대해 “죄송할 따름이다. 설악산에도 덕숭산에도 미안하고 면목이 없다. 다만 학술적인 문제를 학술적으로 풀어가지 못하는 풍토가 유감스러울 뿐”이라며 말을 아꼈다.

문제의 논문을 발표한 윤창화 대표도 “난감하고 착잡하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불교의 현실이 황당하고 놀랍다. 이는 한국불교가 크게 후퇴되는 일이며 부끄러운 일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불교평론>이 다시 발간될 수 있도록 불교계가 힘을 모아야 한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