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문화평론가인 유명종, 화가 이종송, 사진가 전성영. 2000년대 중반 지속 가능한 삶을 꿈꾸며 세 남자가 사유여행을 떠났다. 고성에서 해남까지, 산사에서 지방 소도시까지, 세 명의 예술가는 주말마다 역맛살을 긍정하며 6년 여 동안 우리나라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들의 여행은 일종의 ‘비우기’였다. 성공, 소유, 화, 불화, 피로와 권태, 머리와 가슴에 가득 차서 급기야 지속 가능한 삶을 위협하는 욕망의 찌꺼기를 하나 둘 비워내는 일이었다. 그리고 6년 후. 세 남자는 욕망의 찌꺼기를 비운 자리에 사랑, 꿈, 공존, 관용, 통섭, 조화, 가치, 소소익선 같은, 평생 품고 살아야 할 인생의 키워드를 채워 넣었다. 사유와 성찰로 얻은 가치의 언어들이었다. 이 가치의 언어들을 회화, 사진의 문법으로 독립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다시 조화롭게 통합하여 사진이 함께 하는 전시 ‘남자의 여행’전이 사진전문 갤러리 통인동의 류가헌갤러리에서 오는 9월 2일까지 열리고 있다. 또 같은 제목으로, 여행길에서 길어 올린 감성과 사유를 촘촘히 담아낸 산문집도 출간하였다.
화가이자 건국대 회화과 교수인 이종송은 별을 보고 길을 찾았던, 인간과 자연이, 나와 세계가 순환적인 완결성을 이루었던, 그리하여 달과 별에서 숱한 시와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자연에서 삶의 영감을 얻었던 시대를 다시 꿈꾼다. 이종송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장자의 ‘호접몽’이 떠오르고,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읽는 듯하다. 산은 꿈에서 본 듯하고, 나무는 영환이 깃든 것처럼 숨결이 느껴진다. 몇 장의 꽃잎은 서정시를 닮았다. 그의 작품세계는 노자와 연결되어 있다. 절대 자유를 꿈꾸는 무위(無爲)의 그림이다. 그는 초월적 상상력과 자유로운 필치로 무위의 미학을 화폭 가득 풀어놓고 있다.
사진가 전성영의 사진은 그의 인문적 교양과 미적 감수성으로 건져 올린 풍경 미학이다. 얼핏 보면 지성적이고 중성적인 느낌이 들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품 안에 눈물 몇 방울 떨어뜨린 것처럼 금세 서정성이 묻어난다. 전성영의 서정성은 쓸쓸함이 짙게 스며든 서정성이다. 특히 폐사지의 사진들이 그러하다. 황룡사지, 감은사지, 망덕사지, 사천왕사지…. 한반도 남쪽의 폐사지가 그의 사진 속에서 한없이 쓸쓸한 폐허의 미학으로 부활한다. 그런가 하면 그의 꽃과 단풍 사진은 화려하기보다는 슬프면서 관능적이다. 스스로 목을 자른 동백꽃과 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게 삶을 정리하는 가을 단풍들. 인생을 은유하듯 생을 마감하는 꽃과 나무는 처연하게 아름답다.
류가헌 갤러리는 서울 종로구 통의동 7-10 경복궁역 3,4번 출구 인근에 위치해 있다. 문의: 02)720-2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