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다면 동양에는 견우와 직녀가 있다. 은하수를 사이에 둔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한 번 조우하는 날이라 그럴까. ‘칠월칠석’. 그 단어만 봐도 가슴이 울렁, 마음이 두근두근 설렌다. 칠석은 가슴 저미게 안타까운 사랑의 날이자, 괜스레 사랑하고 싶어지는 날이다.
언제부터인가 젊은이들에게 음력으로 쇠는 칠석은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 채 지나가는 날이 됐다. 지고지순한 오작교의 사랑도 CF 소재로 활용되는 것이 전부인 현실이다.
그런 가운데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8월 24일 음력 칠월칠석날 밤 이태원 클럽 허브에서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현대판 칠월칠석 파티’가 열린다는 것.
이날 클럽에는 8백여 명의 견우, 직녀가 운집했다. ‘불금(불타는 금요일)’에 제대로 걸린 칠월칠석 파티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칠석 파티의 낯설음도 잠시. 파티에 참가한 젊은이들은 견우와 직녀의 애달픈 사랑을 형상화한 한국무용 퍼포먼스에 환호했다. 놀 준비가 된 것이다.
힙합 가수 MC스나이퍼는 칠석파티를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이날의 견우, 직녀들은 각각 부채와 댕기를 장전했다. ‘댕기를 쟁취하는 자, 오늘의 견우가 된다!’는 슬로건 아래 견우는 자신이 가진 부채를, 직녀는 소중히 가지고 있던 빨간 댕기를 건넴으로써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짝이 되는 것이다. 클럽 곳곳에 배치된 ‘인간 까마귀’도 견우와 직녀의 마음을 전달했다.
춤을 추고 이야기를 하던 파티의 열기는 새벽 한 시, 최고조에 달했다. 힙합 가수 ‘MC스나이퍼’가 무대에 등장하자 견우직녀들은 팔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입을 모아 노래를 따라 불렀다. MC스나이퍼의 바통을 이어받은 ‘시크엔젤’의 관능적이고 절제된 춤사위도 참가자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끌어냈다.
“웬 얼음 탑?” 파티를 즐기던 견우와 직녀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아졌다. 칠월칠석을 기념하는 행사에 맞게 주최 측에서 ‘탑돌이’를 위한 얼음 탑을 조성했기 때문.
견우, 직녀들은 얼음 탑 주위에서 눈빛을 주고받았다.
칠석 파티는 새벽 6시까지 이어졌다. 클럽 문화에 익숙했던 젊은 남녀들은 전통문화를 녹여낸 이날 클럽 파티에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칠석 파티에 참가한 이원빈(24세·직장인) 씨는 “고루하게만 생각했던 칠월칠석이 클럽과 어울릴 줄은 몰랐다”며 “세시풍속을 현대적으로 해석해서 젊은 사람들과 공유한다는 게 정말 참신한 것 같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칠석 파티를 기획한 ‘마인드디자인 mim’의 김민지 대표와 안유선 기획팀장은 “이런 행사는 처음이어서 미흡한 점도 있었지만 800명의 참가자들이 부채를 흔들고 댕기를 매고 재미있게 노는 광경은 그야말로 감동이었다”며 “칠월칠석을 새롭게 부활시켰으니, 이제 부활한 칠월칠석을 어떻게 부흥시킬지 고민 해야겠다”고 즐거운 엄살을 부렸다.
견우와 직녀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선보인 한국무용 퍼포먼스
칠석, 탑돌이, 연등회 등 우리나라 세시풍속이 불교문화에서 파생된 예가 많은 만큼 앞으로 현대 문화와 접목할 수 있는 불교문화도 무궁무진할 것이다. 올 칠석에 처음 벌어진 재기발랄한 젊은이들의 당돌한 시도와 유쾌한 성공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또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보는 것도 파티 이상으로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 인간의 상상력은 끝이 없을 테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