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民畵)의 발전 시기는 17∼18세기경으로 계급 신분 타파와 서민 경제 발전이라는 사회적 변화와 함께 대중문화의 새로운 발전과정 가운데 하나였다.
민화란, 장식적 필요에 의해 그려진 그림으로써 토속신앙과 세계관이 반영되고 있고 집단적 감수성의 표현이면서 일전한 본에 의해 반복적으로 그려진 그림을 말한다.
민화가 불교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연구는 그동안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사찰의 벽화와 불화 속에 민화적 요소가 들어와 있었다는 것, 이런 현상이 조선 후기에 이르러 본격화한다는 것은 관련 분야에서 종종 언급되어 왔지만, 스님들이 직접 민화를 그리고, 민화를 사찰의 의례에 폭넓게 사용했다는 연구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열수 가회민화박물관장의 SMA 민화특강 장면.
이런 가운데에서 윤열수 박사(문화재위원, 가회민화박물관 관장)가 18~19세기 수준높은 민화를 스님 화사들이 많이 그려 사찰에서 활용하는 것은 물론 일반에 유통시켰다고 밝혔다. ‘사찰 민화’와 ‘화승들의 민화 제작’이라는 윤열수 관장의 이날 발표는 신선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윤열수 관장은 7월 4일 오후 구기동 삼성출판박물관에서 열린 SMA특강에서 ‘사찰민화’ 주제의 강의를 통해 “조선 후기 삼보사찰을 중심으로 보면 사찰 모두가 많은 민화를 소장하고 있었으며, 특히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사찰은 단청이나 불화의 제작을 사찰 내부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당시 승려 화사(畵師)들이 주도했다”고 주장의 배경을 설명했다.
부처님 탄생 당시 아홉마리의 용이 물을 뿜어 부처님을 목욕시켰다는 내용의 병풍으로 불교의식에 실제로 사용되었다.
송광사의 산내 암자를 그린 민화풍의 그림.
서울 동대문 성곽에 위치한 지장암이 소장하고 있는 십장생도 초
스님화사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달마대사의 그림. 갈대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달마대사의 모습이 민화풍으로 그려져 있다. 사진=가회민화박물관 제공
통도사와 송광사, 해인사 등에서 소장하고 있는 민화나 민화풍의 불화를 일일이 사진으로 소개한 윤 관장은 “특히 19세기 후반의 사회적 문화적 현황으로 사찰의 중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민간의 민화 작가들이 불사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민화적인 요소의 그림들이 불화에 유입되는 현상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늘날 사찰 그림에서 ‘역(逆)원근법’이나 ‘다시점(多視點)기법’ 등의 민화 풍의 주요 그림 요소들이 많이 발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윤 관장은 “사찰이 소장하고 있는 민화는 상당히 수준이 높아 솜씨가 뛰어난 화사가 그린 그림일 가능성이 크다”며 “대부분의 사찰민화들은 단순히 초 그림이 아니라 옛 문헌에 의한 사실성과 그 당시에 유행하던 소설류의 그림들을 익살과 해학이 넘치는 창의성이 함축된 그림들”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고승 진영 뒤의 배경 산수화는 일반인 유명 화가들도 그릴 수 없는 섬세한 배채기법과 정밀한 묘사가 매우 뛰어나, 고승에 대한 존경심을 가진 화사에 의해 우수한 필법으로 그린 그림임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 관장은 “송광사의 ‘산내암자도’는 지도에 표시된 암자와 그 주변의 지형이 실제의 지형과 거의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절에서 오랜 세월 거주하며 관찰을 한 사람이 아니면 그릴 수 없는 것”이라며 “조선 후기의 승려 화사는 민화 작가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는 집단”이라고 결론지었다.
윤 관장에 따르면, 사찰소장 민화는 화훼도, 화조도, 운용도, 책가도, 산수화에 이르기까지 일반 민화의 주요 화목들을 거의 망라하고 있다. 또한 사찰에서 사용한 구룡(九龍吐水)을 그린 민화풍의 병풍양식 ‘구룡도’ 등은 보관용이 아니라 실제로 사찰에서 다양한 행사에 사용되었다.
윤 관장은 또 사찰이 사찰의 재정을 위해 민화를 그려 일반에 판매한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윤 관장은 서울 동대문 성곽 부근에 있는 지장암에서 발견한 ‘십장생 초본’을 그 근거로 예시하고, 초본의 수준으로 볼 때 거의 최고 수준의 민화가 사찰에서 그려져 외부로 유통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윤 박사는 해인사에 주석했던 김달기 스님은 글씨로 유명한 환경 스님의 스승으로, 특히 민화를 많이 제작해 외부로 유통시킨 분으로 지목했다.
윤 관장은 결론적으로 “18,19세기 스님들이 민화를 많이 그렸으며, 그 당시는 사찰의 살림이 매우 어려웠던 시기로, 민화를 그려 먹고 살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라며 “따라서 민화를 공부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불화를 병행해 공부해야 할 정도로 스님들이 그린 민화의 중요성이 크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