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급으로 평가되는 <삼국유사> 조선 초기 판본이 공개됐다. 이 판본은 연세대 박물관장을 역임햇던 고 손보기 교수의 소장본 <삼국유사> 1책(권1, 권2)을 유족이 연세대에 기증하면서 지난 1월 16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로써 <삼국유 사> 조선 초기 간행의 고판 초간본의 전체 모습이 비로소 전모를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에 공개된 <삼국유사> 조선초기 판본은 글자 탈락·오류가 많았던 ‘역대 왕조별 왕의 족보’ 등이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어 포함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을 것으로 평가된다. 이 판본은 손 교수가 생전에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공개하지 않았고, 관련 내용도 언급하지 않아 내용을 알 수 없었다.

손보기 교수의 유족이 연세대에 기증한 <삼국유사> 조선 초기 판본 가운데 왕의 족보에 해당하는 왕력편(王曆篇)에는 기존의 정덕본에서 잘 확인되지 않았던 부분을 확인시켜주고 있어 학계를 흥분시키고 있다.

연세대가 공개한 <삼국유사> 1책은 신라·고구려·백제·가야의 역대 왕의 족보를 간략하게 기술한 ‘왕력편’과 삼국시대 각종 기이한 이야기를 모은 ‘기이편(奇異篇)’ 권1과 권2로 구성돼 있다. 연세대는 “손보기 교수 기증본을 검토한 결과, 삼국유사 1책이 낙장없이 완벽하게 보존돼 있으며, 조선 초기에 간행된 것이 확실하다”고 밝혔다.

연세대는 “손보기 기증본을 다른 삼국유사의 초기 간행본 권2(보물 제419-2호·성암고서박물관 소장)와 대조한 결과 동일 판본임을 확인했다”며 “같이 1책으로 묶인 왕력편과 권1도 판면 상태로 봐도 동일 판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국유사가 조선초기에도 간행된 것은 이 시기 고판본의 인본(印本)인 석남본(石南本)과 송은본(松隱本)이 현존하기 때문이다. 보물 제419호로 지정된 송은본은 현재 곽영대(郭永大)가 소장하고 있다.

고려 말인 1281년(충렬왕 7년)경에 일연 스님이 펴낸 삼국유사는 1512년(조선 중종 7년) 경주에서 발행한 목판본인 ‘중종 임신본(中宗 壬申本)’ 혹은 ‘정덕본(正德本)’이 완전한 형태로 전하는 가장 오래된 판본이다. 이르면 고려 말, 늦어도 조선 초기 찍었을 판본이 최근 발견되고 있지만 전질이 아니라 일부만 남아 있었다.

특히 <삼국유사>를 구성하는 여러 편 가운데 ‘왕력편’만 글자 탈락이나 오류가 심한 데다, ‘중종 임신본’ 이전의 판본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손보기 소장본은 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중종 임신본’(정덕본)에서 확인되지 않은 것이 이번에 공개된 손보기 기증본에서 확인된 것 중에는,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어머니 천명부인(天明夫人)이 죽은 뒤 받은 이름인 시호가 ‘문정(文貞)’이 아니라 ‘문진(文眞)’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 신라 진덕여왕 아버지가 ‘국기안(國其安)’으로 알려졌지만 이번 자료에서는 ‘국진안(國眞安)’으로 표기되었고, 진덕여왕 어머니 아니부인(阿尼夫人)은 아버지가 기존 자료에는 이름이 ‘노(奴)’이며 사후에 ‘○○갈문왕(葛文王)으로 추봉됐다’고 했지만 이번 자료에서는 기존에 탈락한 갈문왕 이름이 ‘만천(滿天)’인 것으로 밝혀졌다.

학계에서는 이번에 공개된 손보기 기증본 <삼국유사> 자료는 ‘중종 임신본’ 이전에 나온 유일한 왕력편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해설> 1940년대 이전까지는, <삼국유사>의 판본이 1512년(중종 7) 경주부윤 이계복이 간행한 5권으로 구성된 것(中宗 壬申本, 현재 국보 306-2호)만 알려져 왔으나, 그 이후 중종 임신본에 앞선 조선 초기 간행본(초간본 추정)으로 알려진 잔권(殘卷)들이 세상에 드러났다. 그러나 초간본은 전체 5권 가운데 2, 3, 4, 5권(현재 보물 419-2호, 국보 306-1호)만 남아 있어서, 초간본의 전체 모습을 파악할 수 없었다.

이 가운데 권3-5는 국보 306호(松隱本, 곽영대 소장)로 지정되어 있다. 이 또한 권3 앞부분 6장, 권5의 마지막 4장이 없는 상태이다. 그 외 영본(零本)들도 모두 보물 419-2호(권2, 성암고서박물관), 419-3호(권 4-5, 범어사)로 지정되어 있다. 이 초간본들은 현재 완질이 전하는 중종 임신본(국보 306-2, 서울대규장각 소장)보다 100여 년이 앞서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번에 손보기 교수 유족이 기증한 <삼국유사> 1책(왕력, 권1, 권2)은 낙장 없이 완벽한 상태이다. 부분적으로 훼손된 부분은 전문가에 의해 보존 처리되어 복원되어 있다.

손보기 교수 기증본을 남아 있는 초기 간행본 권2(보물 제419-2호 및 조종업 본)와 대조하여 본 결과 완전히 같은 동일 판본임을 확인하였다. 또한 같이 묶여 있는 ‘왕력’과 권1의 판면 상태로 보아도 동일 판본으로 보인다고 연세대는 밝혔다.

이번에 기증된 권1, 권2를 ‘중종 임신본(中宗 壬申本)’과 비교하면, 손보기 교수가 기증한 <삼국유사>는 중종 임신본의 ‘판형이 다른 이판(異版)’임을 알 수 있다.

연세대는 기증된 <삼국유사> 1책은 손보기 교수의 아호를 따 ‘파른본’이라고 명명한다고 밝혔다. 연세대는 ‘파른본’을 통하여 <삼국유사> 조선 초간본 완질이 구비되게 된다는 점에서 이미 국보로 지정된 초간본에 없는 앞부분으로 구성된 ‘파른본’은 국보급의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그동안 학계에서 논란이 된 저자, 간행시기, 판각장소 등에 관한 논의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으며, 임신본 등 여러 이본과의 대조를 통해 <삼국유사> 정본을 만드는 작업까지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