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법인 대한불교진흥원(이사장 이한구)은 불교의 교리와 문화를 보다 쉽고 바르게 알리기 위해 발행하는 불교계 대중 문화지인 월간『불교문화』 2025년 12월호(통권 제304호)를 발간했다. 

표지 사진 : 충북 보은 법주사 팔상전. 사문유관과 유성출가의 팔상도가 보인다.(사진｜하지권)

특집. 한눈에 보기｜다양성, 왜 존중되어야 하나

- 서로 다른 길, 하나의 세상

키워드: 다양성 / 관점주의 / 아힘사 / 무외시 / 상호존재

① 자이나교의 관점주의와 철학적 아힘사 - 양영순 

② 간디의 실재 다면성 가르침을 통해 갈등을 완화하자 - 허우성

③ 전쟁과 폭력, 평화, 그리고 불교의 무외시(無畏施) - 허남결

④ 타자화 없는 상호존재 – 권선아

서로 다른 생각과 목소리가 공존해야 할 공간이, 어느새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전장의 언어로 가득 차 있다. 정치적 입장, 종교, 성별과 세대, 전쟁과 난민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름은 곧 공격과 배제의 이유가 되어 버렸다. 다양성이 인류의 미래를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현실에서는 “왜, 어디까지,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다.

이번 특집 ‘다양성, 왜 존중되어야 하나’는 이 질문을 피해 가지 않고, 철학과 종교, 수행의 언어로 정면에서 마주한다. 자이나교의 관점주의와 철학적 아힘사, 간디의 실재 다면성 사유, 전쟁과 폭력 속에서 다시 묻는 불교의 무외시, 그리고 틱낫한·버니 글래스먼이 보여준 상호존재와 포용의 길을 통해, “나와 다른 진리와 타자를 존중한다는 것”이 어떤 정신과 실천 위에서 가능한지를 짚어본다.

이번 특집은 ‘다양성, 왜 존중되어야 하나’라는 물음을 네 가지 시선에서 비춘다. 

▲ <자이나교의 관점주의와 철학적 아힘사> 

   양영순(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남아시아센터 선임연구원)

‘맹인과 코끼리’ 우화를 통해 사람들이 자기 경험의 일부만을 절대적인 진리라고 우길 때 말싸움과 폭력이 생긴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어 자이나교가 이 우화를 바탕으로, 실재가 여러 얼굴을 지닌다는 다면론과 각자는 자기 자리에서만 본다는 관점론, “어떤 면에서는~”이라는 단서를 붙이는 개연론을 전개하면서 타인의 관점을 존중하는 ‘철학적 아힘사’와 여러 제한된 인식을 함께 모아 가는 ‘세속적 일체지’의 길을 열어 두었다고 정리한다. 마지막으로 자이나교의 관점주의와 아힘사가 서로의 부분적인 이해를 인정하고 나누며 합쳐 갈 때, 독선과 다툼을 넘어 더 온전한 진리에 함께 다가갈 수 있는 오늘날의 철학적 길이라고 제시한다.

코끼리는 언제나 우리 앞에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길은 두 갈래다. 여전히 언어적 정신적 주먹을 휘두르며 부분적 인식에 갇혀 있을 것인가, 아니면 서로의 인식에 귀 기울이며 함께 연대하여 진짜 코끼리에 대한 전체적 이해로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인가이다. 

▲ <간디의 실재 다면성 가르침을 통해 갈등을 완화하자> 

   허우성(경희대학교 명예교수)

‘누구의 편도 아닌 비폭력의 자리에서, 갈등을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갈등과 혐오가 넘치는 오늘 우리 사회에서, 간디가 진리와 아힘사(비폭력·사랑)를 정치와 삶에 적용하려 했던 태도가 다시 절실하다고 말한다. 간디는 실재의 다면성, 곧 관점주의를 바탕으로 이토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행동과 그에 대한 상반된 평가, 달라이 라마의 ‘정당한 전쟁’ 논의 등을 각기 다른 자리에서 나온 입장으로 보되, 끝까지 비폭력의 기준으로 엄격히 성찰하려 했던 인물로 그려진다. 하나의 답으로 정리하기 어려운 이런 쟁점들 앞에서, 적어도 명백한 폭력이 아닌 사안들에 대해서는 간디의 다면성 가르침을 따라 서로의 관점을 인정하고 이해하려 할 때 오늘날의 역사·정치적 갈등도 한층 완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다시 간디를 말하려는 것은 우리 사회에 독버섯처럼 퍼진 분노와 증오, 혐오를 이기고 사회를 개량하는 데는 비폭력이라는 사랑의 감정 이외에 다른 해법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 <전쟁과 폭력, 평화, 그리고 불교의 무외시(無畏施)>

   허남결(동국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미얀마 로힝야족 탄압 등 사례를 통해 불교권조차 국가 권력과 결탁해 폭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았음을 짚으며 “불교는 정말 반폭력적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그럼에도 붓다는 “승리는 증오를 낳는다”는 가르침처럼 끝까지 비폭력과 평화를 설했고 일상 속에 스며든 폭력의 평범성을 성찰할 것을 요구한다. 두려움을 없애 주는 보시인 무외시가 한국전쟁 당시 국제사회의 지원에서도 드러나듯 보편적 휴머니즘이자 불교윤리의 핵심으로, 폭력을 정당화하지 않는 불교 전통이 종교 간 대화와 평화를 이끄는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어려움에 처한 생명체에게 온갖 종류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대자비의 실천인 무외시는 불교윤리의 의무론적 측면이자 좋은 결과와 자비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점에서 목적론과 덕론도 함께 품고 있는 ‘오래된 미래의 아름다운 법문’이라는 칭송을 받을 만하다.

▲ <타자화 없는 상호존재>

   권선아(공감과자비연구소 소장)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상호교차성 이론,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 선언을 짚으면서, 불교의 ‘상호존재(Interbeing)’가 차이를 서로 얽혀 있는 관계로 보는 더 근원적인 통찰이라고 설명한다. 틱낫한 스님의 마음챙김·깊이 듣기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안거, 버니 글래스먼의 ‘모름–증언하기–다정한 행동’과 아우슈비츠 안거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포용이 곧 연기·상호존재를 삶에서 실천하는 불교 수행임을 보여준다. UC 버클리의 ‘타자화/함께 있음’ 논의를 불교의 연기론과 연결하며, 다양성은 새로 만들어야 할 과제가 아니라 이미 우리 존재의 바탕에 깃든 공존의 약속이며, 이를 기억하고 살아낼 때 분열을 넘어 한 생명으로 숨 쉬게 된다고 말한다.

 ‘나’는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언제나 타인과 세상 전체와 함께 존재한다. 다양성은 이러한 상호존재가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며, 포용은 그 다양성을 깨어 있는 마음으로 알아차리고 살아내는 실천이다.

2025년 하반기 캠페인｜“기도하는 삶을 살자!”

다큐멘터리 작가 유정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머니는 염불·사경·참선과 기도 도량 순례를 쉼 없이 이어오며 삶 전체를 하나의 기도로 살아오셨다고 회상한다. 작가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불교의 기도는 단순히 소원을 비는 행위가 아니라 욕망과 집착을 비우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하며 깨달음의 길을 실천하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어머니의 기도가 끝나지 않듯, 자신 역시 옳고 그름과 너와 나를 가르는 분별을 넘어 매 순간 삶 자체를 기도처럼 살아가려는 진행형의 수행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밖에, 이번 호에는…

· 기도하기 좋은 절｜경기도 이천시 설봉산 영월암

· 치유의 숲, 사찰림을 가다｜서울 삼각산 삼천사 숲

· 10분으로 배우는 불교｜공은 허무가 아닌 연기법의 다른 이름

· 법상 스님과 함께하는 마음공부｜나는 무엇인가, 회광반조

· 정여울 작가의 이럴 땐 이 책을!｜따스함, 다정함, 그리고 자비로움의 힘

등 풍성한 읽을거리를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