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깨우친 부처님 말씀6
정찬주(소설가)

(삽화 = 정윤경 작가)
자비가 세상에 가득 차게 하라
마음의 벽을 다 허물고
자비로 가득 차게 하라
자비가 사방으로 퍼져 온 세상 위아래,
주위에 가득 퍼지게 하라
자비가 장엄하고 헤아릴 수 없이
모든 곳에 가득 차게 하라.
-장아함경
자애에 대해서 힘써 명상하라
부처님은 라훌라를 보고 기뻐했다.
부처님은 아들 라훌라에게 충고했다.
“라훌라여,
자애에 대해서 힘써 명상하라.
자애를 키우게 되면 사악한 마음이
영원히 사라지리라.
자비에 대해서도 힘써 명상하라.
자비를 키우게 되면 악한 마음이
사라지는 것을 발견할 것이니라.”
-중아함경
사족; ‘자비가 세상에 가득 차게 하라’는 부처님 말씀을 ‘사랑이 세상에 가득 차게 하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자비와 사랑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랑은 연민 혹은 측은지심이다. 그러나 자비의 뜻은 좀 더 크다. 자(慈)는 사랑이고, 비(悲)는 정의감이 깃든 말이다. 왜 비가 정의인가? 비(悲) 자를 파자하면 아닐 비(非)와 마음 심(心)자이다. 거짓을 보고 ‘아니라고 하는 마음’이 비(悲) 자인 것이다. 정의란 거짓을 보고 ‘아니라고 하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일 터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이 어수선할수록 자비가 온 세상에 가득 퍼져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부처님은 아름다움의 친구
너의 마음은 아름다운 것을 향해
활짝 열려 있어야 한다
이것 자체가 여행의 전부여야 한다
생로병사를 두려워하는 이들은
아름다움의 감정을 지님으로써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 수행하는 방법이다
부처님은 아름다움의 친구이자
아름다움과 친숙한 자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 부처님은 선한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세밀히 통찰하고
이를 감싸 안았던 것이리라.
-장아함경
사족; 부처님을 아름다움의 친구라고 하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릴 이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진(眞)이나 선(善)이나 미(美)는 결국 하나로 회통한다는 것을 안다면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아름다움을 가짐으로써 두려움에서 해방된다는 부처님 말씀을 바로 이해했다. 집필하는 동안에는 단 한순간도 두려운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역시 아름다움을 탐구해 온 힘이 아니었을까.
분노를 버리는 연습을 하라
사람들이 너를 비난할 때
너는 이런 방법으로 응대하라
마음을 차분하게 갖고
거친 말로 대꾸하지 말라
분노를 버리는 연습을 하라
다른 사람들의 적의도
네가 그들의 처지에서 보게 하는
자극제가 된다는 사실을 믿어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라
친절하라, 관대한 입장을 취하고
적을 친구 대하듯 하고
온 세상에 증오 없는 따스한 마음이
멀리 널리 끝없이 가득 퍼지게 하라
이러한 경지에 머물도록 힘쓰라.
-법구경
사족; 요즘처럼 좌파니 우파니 하고 이념 대립이 극심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 이념 속에는 도무지 따뜻한 체온의 인간은 사라지고 없다. 세계 지성들은 이념의 종말을 고했지만 우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서글픈 현실이다. 부처님 말씀이 새삼 가슴을 친다. 분노를 버려라. 친절하라. 관대하라. 이 세 마디만 받아들인다면 공존, 공생, 상생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마음은 바람 같고 강물 같다
마음은 환상과 같아
허망한 분별에 의해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마음은 바람과 같아
멀리 가고 붙잡을 수 없으며 모양도 없다.
마음은 흐르는 강물과 같아
멈추지 않고 일어나자마자 사라진다.
마음은 등불의 불꽃과 같아
인(因)에 연(緣)이 닿으면 불이 붙어 비춘다.
마음은 번개와 같아
잠시도 머물지 않고 순간에 소멸한다.
마음은 허공과 같아
뜻밖의 연기로 더럽혀진다.
마음은 원숭이와 같아
잠시도 그대로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인다.
마음은 그림 그리는 사람과 같아
온갖 모양을 나타낸다.
-보적경 가섭품
사족; 팔만대장경을 원심분리기에 넣고 돌린다면 마음 심(心)자 하나만 남는다고 한다. 불교는 천변만화(千變萬化) 하는 마음을 다스리고 닦는 종교이다. 마음의 노예가 될 것인지, 마음의 주인이 될 것인지, 항상 사색하고 행동해야 한다. 참고로 인(因)이란 직접적인 원인이고, 연(緣)이란 간접적인 원인이다. 그러니 모든 현상은 인연의 결과일 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