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삽화 정윤경)
고따마 붓다가 꾸시나라에서 열반한 지 3개월 뒤였다. 붓다의 제자들 중에 수승한 장로 5백 명이 라자가하(왕사성) 교외의 삿따빠니굴(칠엽굴)에 모였다. 라자가하 사람들은 절벽 위에 나뭇잎 모양의 동굴 일곱 개가 서로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칠엽굴(七葉窟)이라고 불렀다. 장로 5백 명은 모두 아라한들이었다. 아난다(아난)도 가파른 산길을 걸어 칠엽굴로 올라갔다. 장로 5백 명이 붓다가 정한 승가의 계율[律藏]과 붓다가 설하신 가르침[經藏]을 결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올라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장로 5백 명의 모임을 주도하고 있던 마하깟사빠(마하가섭)가 동굴 입구에서 아난다를 제지했다. 붓다의 사촌동생이자 붓다를 25년 동안 시봉했던 아난다는 충격을 받았다. 그래도 마하깟사빠는 단호했다.
“벗 아난다여, 그대는 결집에 참가할 자격이 없으니 나가시오.”
“스승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들었던 제가 왜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인정하지만 여기는 아라한만 참가할 수 있다오.”
동굴 입구에서 쫓겨난 아난다는 마하깟사빠에게 항의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은 수다원, 고작 성자의 흐름을 탄 비구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아라한 경지까지 가려면 사다함, 아나함이라는 두 경지를 더 거쳐야 했다. 아난다는 ‘나도 아라한과를 증득하고 말겠다’ 하고 분심을 냈다. 칠엽굴 입구 절벽 위에서 아라한이 될 때까지 일어나지 않고 정진하겠다는 불퇴전의 각오를 했다.
아난다는 절벽 위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7일 밤낮이 순식간에 지났다. 깨어 있지 않고 졸거나, 깜빡 잠이 들거나, 꿈을 꾼다면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을 수도 있었던 7일 밤낮이었다.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졸 때나, 잠깐 잠을 잘 때나, 꿈을 꾸는 동안에도 의식은 선명하게 깨어 있어야만 했다. 아난다의 의식은 7일 밤낮 동안 한 줄기 빛처럼 밝았다.
이윽고 아난다는 가부좌를 풀고 일어났다. 아라한이 된 그의 얼굴은 보름달처럼 빛이 났다. 동굴 안에 모여 있던 장로들이 모두 놀란 채 일어나서 아난다를 맞이했다. 3달 전에 열반하신 고따마 붓다가 살아서 들어오는 듯한 모습이었으므로 모두 일어나 맞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하깟사빠가 아난다에게 말했다.
“나는 그대가 아라한이 되어 돌아올 줄 알았소.”
“그렇다면 사형께서 저를 일부러 내쫓았단 말입니까?”
“그렇소.”
“이제 저는 결집에 참가할 자격을 얻었으니 붓다께서 설법한 경을 말하겠습니다.”
“그동안 우빨리(우바리) 장로가 스승이 정한 규율을 외워 보이면 장로들은 합송으로 동의했소.
아난다 비구는 무슨 경부터 암송하겠소?”
“벼락처럼 단번에 자르는 지혜의 완성이라는 금강경부터 암송하겠습니다.”
“좋소. 그렇게 하시오.”
5백 명의 장로들이 아난다를 중심으로 둘러앉았다. 모두가 열반하신 스승 고따마 붓다를 그리워하는 절절하고 진지한 표정의 얼굴들이었다. 그러나 아난다는 바로 암송하지 못한 채 한동안 침묵했다. 어떻게 첫 말을 꺼내야 할지 두 가지 문장을 놓고 고민했다.
‘이와 같이 붓다는 말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아난다는 자신이 어떤 제자보다도 스승 붓다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자부했다. 실제로 붓다가 55세일 때부터 80세에 열반할 때까지 25년 동안 그림자처럼 시봉했으니 아난다만큼 붓다의 설법을 많이 듣고 기억하는 제자도 없었다. 다른 제자들은 붓다의 설법을 직접 듣기도 했겠지만 더러는 전해 들었던 설법도 많았다. 붓다와 함께 있을 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을 때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난다는 ‘이와 같이 붓다는 말했다,’라고 서두를 꺼내는 것은 위험하고 불완전한 전달이라고 판단했다.
‘비록 스승 붓다를 가장 오랫동안 시봉했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붓다를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붓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붓다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붓다이지 나는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붓다는 이렇게 말했다.’라고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붓다가 될 수 없다. 붓다가 한 말씀을 어떻게 완전하게 되살려낼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내 기억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나는 이렇게 들었다’라고 해야 한다. 나는 붓다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장로들이 내 기억을 동의해 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내 기억은 사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 붓다는 내가 기억하는 것 이상으로 설법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므로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는 붓다의 가르침을 완벽하게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는 것이므로 나로서는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내가 듣고 내가 기억하는 범위 안에서만 사실대로 말하겠다는 것이니 나로서는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그 무엇, 한두 가지를 빠뜨리더라도 내 말은 사실에 가장 근접한 진실인 것이다.’
마침내 아난다는 첫 말을 꺼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아난다의 목소리는 청아했다. 맑은 목소리가 동굴 속에 공명이 되어 더 크고 부드럽게 울렸다. 5백 명의 장로들은 아난다의 첫 말에 붓다가 환생한 듯 감격했다. 이어 아난다는 붓다가 어디에 계셨는지를, 어느 때인지를 밝혔다.
<스승께서는 1,250명의 제자들과 더불어
사밧티(舍衛城) 시의 제타 숲,
고독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는 장자의 뜰에 머물고 계셨다.
스승께서는 아침녘에 하의를 입으시고 발우와 상의를 손에 쥐고,
탁발하기 위해 사밧티 큰 시가를 걸으셨다.>
5백 명의 장로들의 합송이 끝나자마자 한 장로가 아난다에게 말했다.
“탁발을 준비하시는 스승님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할 수 있다니 놀랍구려.”
“스승님께 여쭤본 일이 있습니다. 스승님의 말씀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를 여쭈었더니 스승님께서 원칙을 정해주셨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저는 스승님께서 가르쳐주신 원칙을 따랐을 뿐입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조금 전 망설였습니다. 스승님께서 말씀한 원칙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스승님께서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라고 시작하라고 하셨지요. 그리고 때와 장소, 누가 누구에게 설법한 것인지를 밝히라고 말씀하셨지요.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정확하게 이해를 못해서 방금 저는 잠시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5백 명의 장로들은 일제히 아난다에게 합장했다. 비록 암송의 서두이기는 하지만 아난다가 하는 말은 사실과 다름없으니 믿고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