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정감사장 대정부 질의에서 야당의 수석 최고위원 정청래 의원이 한동훈 법무장관 특유의 조롱 섞인 말대꾸를 “장관은 참기름, 들기름 안 먹고 아주까리기름 먹어요? 왜 그렇게 깐족대요?”고 힐난하면서 돌연 아주까리가 세간의 화제로 떠올랐다. 아주까리기름이 깐죽대는 것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기름장어처럼 말장난으로 국민을 대리한 의원의 질문을 피해 가거나, 이런 행위로 인해 나타나는 경박한 태도를 꼬집은 것으로 보인다. 한 장관의 태도와 아주까리기름과의 연관성 유무와 상관없이 정 의원의 발언은 장안의 이야깃거리가 되었으니, 부고 기사 빼고는 거론되는 것으로 성과를 삼는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일단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아주까리기름의 주 성분은 리시놀산인데, 먹기도 하지만 발라서 활용하는 방법이 널리 유행한다. 아주까리기름은 예로부터 효과적인 변비약으로 알려져 있는데, 기름이 분해되면서 배출되는 리시놀레산이 장에 흡수되면서 활발한 움직임을 유도하여 장 내부의 숙변을 깨끗하게 비워내며 배변활동을 촉진한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아주까리기름은 모발 성장에 도움을 주며 모발의 색상을 풍부하게 하며 기름을 따뜻하게 해서 두피에 발라주면 모낭을 자극시켜 머리카락을 자라나게 하는 효능이 있어 탈모 방지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 밖에도 아주까리기름은 통증 완화나 피부 건강, 무좀 치료, 손톱 강화 등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다만 아주까리의 성분 가운데 리신이라는 아주 강한 독성 물질이 있어 날것으로 섭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한다.  

아주까리기름은 이상화 시인의 1926년 발표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 소재로 등장하면서 우리 국민들에게는 더 친숙해졌다. 긴 시구 가운데, 아주까리기름이 등장하는 연은 이렇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학창 시절 야구장에서 응원가로 불렀던 ‘아리랑 목동’이라는 노래의 가사에도 아주까리는 등장한다. 그 덕에 아주까리를 못 본 학생들도 그 이름만큼은 익히 알 정도였다. 

“꽃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 캐는 아가씨야/아주까리 동백꽃이 제아무리 고와도/동네방네 생각나는 내 사랑만 하오리까/아리아리 동동 쓰리쓰리 동동/~”

요즘은 뜸해졌지만, 사실 아주까리는 시골집 화단 구석에 한두 포기 정도는 흔히 있었던 다용도 식물이었다. 식물명은 ‘피마자’로 북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인도, 소아시아 등이 원산지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에 인도에서 중국을 통해 들어왔다. 

아주까리는 기원전 4천 년 경 고대 이집트 유적에서 흔적이 발견될 정도로 오래된 재배식물이다. 열매에서 뽑은 기름으로 불을 켰고, 식품과 의약품으로 전 세계에서 사용되었다. 원산지와 열대지방에서는 나무처럼 단단하게 10~13미터 높이까지 자라지만, 우리나라 등 온대지방에서는 일년생식물로 2~3미터 남짓 자라 나무라기보다는 풀에 가까운 식물체로 인식된다. 

꼬투리가 진드기와 닮았다 하여 경상남도에서는 아주까리를 ‘똥꼬 없는 가분다리’라 부르기도 한다. 가분다리는 진드기의 경남지방 방언이다. 씨앗으로 짠 기름 ‘피마자유’, 즉 아주까리기름은 여러 곳에 사용했다. 전등불이 귀하던 시절엔 호롱불을 밝히는 기름으로 사용되었다. 아주까리기름으로 등불을 켜면 귀신이 보인다는 속설도 있고, 들기름과 참기름 대용으로 먹기도 하였다. 옛날에는 배가 아프면 아주까리기름 한 숟갈을 삼키기도 했다. 한국불교 굴지의 종단인 천태종 구인사는 병고 중생들에게 아주까리기름을 제공해 큰 효험을 얻으면서, 절 이름처럼 ‘사람을 구하는 절’이라는 명성을 얻기도 했다.

아주까리는 ‘아주까리 등불’, ‘아주까리 선창’, ‘아주까리 타령’ 등 노래의 제목으로, 또는 ‘강원도아리랑’, ‘영천아리랑’ 등에서처럼 노랫말의 소재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일상에서 뗄 수 없는 존재였던 아주까리와 관련된 속담이 생겨난 것은 따라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신도 별 볼 일 없는 주제에 남의 흉을 본다는 뜻의 ‘진드기가 아주까리 흉보듯 한다.’, 아주까리도 기름이며 제 노릇을 한다는 뜻의 ‘참깨, 들깨 다 노는데 아주까리는 못 노나?’라는 속담 등이 그것이다. 

아주까리는 불전(佛典)에도 등장한다. 『불본행집경』 23에 등장하는 이야기인데, 불가촉천민이었던 똥군 니디(Nidhi)가 붓다의 한없는 자애심으로 출가하여 비구가 되는, 많은 불자들이 한두 번쯤은 들어보았을 매우 감동적인 내용이다. 

사왓티 시의 거리에서 아난다 존자와 함께 걸식을 하던 붓다와 마주친 니디는 붓다에게 똥물이 묻지 않도록 길 옆으로 피하다가 짊어지고 있던 똥통이 벽에 부딪쳐 똥물이 붓다와 아난다의 가사를 더럽히자, 엎드려 참회하며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붓다는 금방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니디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킨 후 강으로 데려가 몸을 씻겨주었다. 이어 붓다는 니디의 맑은 마음을 칭찬하고, 출가하여 제자가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붓다는 펄쩍 뛰며 사양하는 니디를 설득해 제자로 삼았는데, 똥군 니디가 비구가 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사왓티 시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시작됐다. 천한 자에게 출가를 허락한 붓다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불만도 늘어갔다. 투덜거리며 불만에 가득 차 기원정사를 찾아온 사왓티 시 사람들에게 붓다가 말했다. 

“누린내 나는 아주까리를 마찰시켜 불을 피우듯, 더러운 진흙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듯, 종족과 신분과 직업으로 비구의 값어치를 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지혜와 덕행만이 비구의 값어치를 정할 수 있습니다. 신분이 낮고 천한 직업을 가졌더라도 행위가 훌륭하다면, 여러분, 그 사람들을 공경하십시오.” - 졸저 <붓다 연대기> ‘똥군 니디’

불이 귀하던 시대에 아주까리는 비록 누린내가 나지만 불을 피우는 매우 소중한 존재라는 점을 비유로 들어 사람들이 잘못된 고정관념을 버리도록 설법한 것이다. 똥군 니디의 출가 이야기는 신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던 붓다의 평등사상, 모든 것을 수용하는 상가의 무한한 수용성, 화합을 중시했던 붓다의 대중관을 볼 수 있는 일화로 자주 거론된다. 붓다가 출가 제안에 펄쩍 뛰는 니디에게 전한 법문의 내용은 이렇다. 

“염려 말거라. 니디여, 나의 법은 청정한 물이니 그대의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줄 것이다. 넓은 바다가 온갖 강물을 다 받아들이고도 늘 맑고 깨끗한 것처럼, 나의 법은 모두를 받아들여 더러움에서 벗어나게 한다. 나의 법에는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귀한 사람도 천한 사람도, 남자도 여자도, 피부색의 차이도 없다. 오직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실천하고, 진리를 성취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 졸저 <붓다 연대기> ‘똥군 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