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는 당진은 보통 바닷가 동네로 알려졌지만, 농지가 광활하게 펼쳐진 곡창지대이기도 하다. 내포지역을 대표하는 가야산 또는 당진의 주산 아미산에서 내려다보이는, 멀리 예산까지 펼쳐진 예당평야는 가히 장관이다. 면적이 99㎢에 달하는 예당평야는 대체로 삽교천(揷橋川)과 그 지류인 곡교천(曲橋川)·무한천(無限川)의 유역으로 예산·당진·아산·서산에 걸쳐 있다. 

당진 신평면의 광활한 평야 가운데에 돌미륵이 서 있는 마을이 있다. 곡창지대에 미륵불상이 서 있는 경우는 드물지 않지만, 신평 돌미륵 주변의 수로를 따라 성곽처럼 피어난 갈대숲은 매우 인상적이다. 언제까지나 잔잔할 것 같던 평야의 고요를 깨뜨리는 건 바람결에 온몸을 맡기고 일렁이는 갈대일 듯싶다.  

갈대는 우리나라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매우 친숙한 식물이다. 국민가요 반열에 오른 ‘갈대의 순정’이라는 노래도 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통나무는 거센 바람에 뿌리째 뽑히지만 갈대는 강풍에도 제 몸을 눕혀 살아남는다. 그래서 갈대의 꽃말에 지혜, 지식 등이 포함돼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람결에 따라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갈대의 속성을 여인의 흔들리는 마음에 빗대기도 한다. 

갈대는 줄여서 갈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한자로 표기하면 노(蘆) 또는 위(葦)이다. 양지바른 곳에 서식하는 억새와 달리 주로 습지나 갯가, 호수 주변의 모래땅에 군락을 이루며 자란다. 뿌리줄기의 마디에서 많은 황색의 수염뿌리가 난다. 줄기는 마디가 있고 속이 비었으며, 높이는 3m 정도이다. 잎은 가늘고 긴 바소(곪은 부위를 째는 침)의 형태를 하고 있어 끝이 뾰족하다. 잎집(leaf sheath)은 줄기를 둘러싸고 털이 있다.

꽃은 8~9월에 피고, 수많은 작은 꽃이삭이 줄기 끝에 원추꽃차례로 달린다. 꽃 색깔은 처음에 자주색을 띠지만 점차 담백색으로 변한다. 열매는 영과(穎果, 화본과 작물의 열매)이고 종자에 갓털(씨방의 맨 끝에 붙은 솜털 같은 것)이 있어 바람에 쉽게 날린다. 번식은 종자 또는 땅속줄기로 이루어진다.

어린순은 식용으로도 사용하는데, 중국에서는 노순(蘆荀)이라고 부른다. 이삭은 빗자루를 만들었고 이삭의 털은 솜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성숙한 줄기는 갈대발·갈삿갓·삿자리 등을 엮는 데 쓰이고, 펄프 원료로도 이용한다. 한방에서는 수염뿌리를 제거하고 햇볕에 말린 것을 약재로 사용한다. 진토(鎭吐)·소염(消炎)·이뇨·해열·해독에 사용한다.

갈대는 대금 연주자들에게도 친숙한 식물인데, 대금의 청 부분이 갈대의 속껍질로 만들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갈대를 길이를 재는 '자'의 용도로 썼기 때문에 표준/기준/정형 등의 의미로 확장되었고, 그것이 오늘날 전해지는 카논(canon)이 되었다.

갈대는 미나리와 함께 대표적인 수질 정화 식물이기도 하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친환경적인 폐수정화를 위해 정화사업에 활용되는데, 염분에 강해 해안에 심기도 했다. 일본의 경우는 지금도 각 현에서 생활폐수를 정화하기 위해 친환경적 하천사업을 벌이고 있다. 국내의 경우는 순천만의 갈대밭이 유명하다. 순천만 갈대는 수질정화사업을 위해 심은 것이 아니지만 자생적으로 자라 오염을 낮추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하천에서는 갈대밭을 기준으로 상류와 하류의 수질이 눈으로도 구분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고전문학에서는 갈꽃이 한가롭고 평화스런 정경을 읊는 시재(詩材)로 주로 다뤄졌다. 또 <삼국사기>에 봉상왕(고구려의 제14대 왕)을 폐위하는 데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그 표지로 갈댓잎을 모자에 꽂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님프인 시링크스(Syrinx)가 목신(牧神)인 판(Pan)에 쫓기다가 갈대로 변신하였는데, 판이 이 갈대를 꺾어 피리를 만들어 그녀를 그리워하며 불었던 데서 갈대를 음악의 상징으로 여기게 되었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Ovidius)의 <변신 이야기>에 당나귀 귀를 가진 미다스왕(Midas)의 비밀을 안 이발사가 구덩이에 대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 속삭이고는 흙을 덮고 후련해 하였는데, 구덩이 위의 갈대가 바람에 나부끼면서 이 비밀을 누설하였다는 설화가 전한다. 갈대는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의 온대와 한대에 걸쳐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

불전(佛典)에서도 갈대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요즘 사용하는 지혜, 지식 등의 갈대 꽃말과는 달리, <법구경, 담마파다>에서는 지혜가 모자라고, 얻은 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고, 삿된 견해를 지니고, 가르침을 듣거나 보시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방해하는 것을 대변하는 식물로 등장한다. <법구경> 12 ‘자기의 품’의 여덟 번째 게송에서 붓다는 갈대를 이렇게 노래한다. 

거룩한 님, 고귀한 님,

여법한 삶을 사는 님의 가르침을 

지혜롭지 못한 자는 

악한 견해에 의지해 방해한다. 

자기파멸을 위해 익어가는 

갈대의 열매와 같다. 

붓다는 지혜롭지 못한 자의 사견을 갈대가 열매를 맺는 것에 비유했다. 왜냐하면 갈대는 열매가 열리면, 자기 자신의 파멸로 향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갈대와 마찬가지로 대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도 대나무의 죽음을 의미한다. 열매가 열리면 죽는 식물로는 바나나 나무와 대나무, 그리고 갈대를 들 수 있다. 동물의 경우에는 자신의 임신으로 죽음을 맞는 암노새를 들 수 있다. 

붓다, 아라한, 성자의 가르침을 지혜가 모자라 어리석음과 삿된 견해로 받아들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듣고 따르는 것을 방해하는 자를 마치 열매가 열리면 스스로 파멸에 이르고 마는(self destruction) 갈대의 속성에 비유한 것이다. 

<법구의석(DhpA. Ⅲ. 155-156)>에는 붓다가 이 게송을 설하게 된 인연담이 나온다. 

붓다께서 사왓티 시의 제따 숲에 계실 때, 장로 깔라와 관련된 이야기(Kālattheravatthu)이다. 사왓티 시에 한 여인이 어머니의 위치에서 그 장로를 보살폈다. 그녀의 이웃에 사는 사람들이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 와서는 ‘오! 세존의 덕행이 얼마나 훌륭한지! 오! 그 진리에 대한 가르침은 얼마나 달콤한지!’라고 말하며 최상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이 칭찬하는 말을 듣고 여인은 장로에게 ‘존자들이여, 나도 그 스승의 설법을 듣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장로는 ‘거기에 가지 마십시오.’라고 말하며 권하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녀는 장로에게 요청했으나 장로는 거기에 가는 것을 만류했다. 장로는 ‘만약에 그녀가 세존의 설법을 듣는다면, 그녀는 더 이상 나를 섬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그녀는 아침을 먹고 딸에게 ‘딸아, 고귀한 장로를 성심껏 섬겨라.’라고 말하고는 포살일에 참가하기 위해 승원으로 갔다. 장로가 그녀의 집에 들러 탁발하다가 딸에게서 ‘그녀가 가르침을 들으러 승원으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창자에 증오의 불길이 일어나 그를 태웠다. 장로는 ‘이제 그녀는 나와 더불어 파멸한다.’라고 외치고 즉시 승원으로 달려갔다. 그 여인이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있는 것을 보고 장로는 세존께 ‘세존이시여, 저 어리석은 여인은 세존의 미묘한 가르침을 알지 못합니다. 그녀에게 존재의 다발 등의 미묘한 가르침을 설하지 마시고 보시의 이야기와 지계의 이야기를 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세존께서는 그가 말하는 동기를 알고 그 장로에게 ‘어리석은 자여, 그대가 사악한 견해에 의존해서 세존의 가르침을 매도하고 자신을 파멸시키려고 한다.’라고 말하고, 위와 같이 시로써 경책했다. 이 가르침이 끝나자 재가 여신도들은 흐름에 든 경지(수다원) 등을 성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