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공(滿空)1 

유숙< 유숙필고사인물도(劉淑筆故事人物圖)> 中 <무후대불도(武后大佛圖)> 지본담채, 114.5  47.3cm, 국립중앙박물관.

그림에 가능한 대불이 눈에 띄지 않도록 희미하게 그려 넣고 앞쪽은 짙은 넝쿨로 가려놓았다.

텅 빈 충만, 만공(滿空). 경허의 그 다음 제자가 만공이다. 만공에 대한 기록은 풍부하게 전해지고 있다. <경허집>을 출판한 것도 만공이었다. 만공은 힘이 장사였는데 홍성 지방에 살던 김좌진이 수덕사에 소문을 듣고 찾아와 만공과 힘겨루기를 한 일이 있었다. 둘이 팔씨름 시합을 하게 되었는데 김좌진은 있는 힘을 다해 만공의 팔을 넘어뜨리려 애를 썼지만 만공은 그저 김좌진의 팔을 붙잡고만 있을 뿐이었다. 마침내 지쳐버린 김좌진이 손을 들었다. 당시 청년이었던 김좌진은 그 후 만주로 망명해 독립군 사령관이 되었다.

13세에 어머니와 금산사에 다녀온 바우(만공 스님의 속명) 소년은 미륵부처가 업어주는 꿈을 꾸고 나서 식구들 몰래 출가의 꿈을 키운다. 마침내 14세에 공주 계룡산 동학사로 출가해 진암(眞巖) 스님 밑에서 행자생활을 하다 그곳에 다니러 온 경허를 운명적으로 만난다. 경허를 따라가라는 진암 스님의 말에 처음엔 싫다고 거부하지만, 경허의 법문을 듣고 난 후 그 자리에서 마음을 바꿔 제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경허는 그의 형 태허 스님과 어머니가 머물던 천장암에 바우 소년을 데리고 가 ‘월면(月面)’이라는 법명을 준다.

바로 이때가 경허의 세 달이 모두 함께 천장암에 주처하던 기념비적인 순간이었다. 훗날 북간도에서 슬픈 동포들에게 짚신을 삼아주며 무주상보시를 했던 ‘북녘의 상현달’ 수월 스님은 땔나무를 해오는 소임인 부목을 맡고 있었고, 아이 같은 천진불로 유명했던 ‘남녘의 하현달’ 혜월 스님은 이곳에서 경허에게 보조국사의 수심결을 배우고 있던 것이다. 이때 수월은 30세, 혜월은 23세, 만공 월면은 14세였다.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만 가지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대체 그 한 가지 돌아가는 곳이 어디냐)’를 화두로 참선에 들어간 만공은 25세에 온양 봉곡사에서 새벽종을 치며 깨달음을 얻어 다음과 같은 오도송을 남긴다.

空山理氣古今外 

白雲淸風自去來  

何事達摩越西天  

鷄鳴丑時寅日出 

빈산의 이치와 기운은 예와 지금의 밖에 있는데

흰 구름 맑은 바람은 스스로 오고 가누나

무슨 일로 달마는 서천을 건너 왔는가

축시엔 닭이 울고 인시엔 해가 뜨네.   

이후 만공은 공주 마곡사 토굴에서 수도했으나 경허로부터 아직 진면목에 깊이 들지 못했다는 점검을 받고 더욱 정진한다. 경허를 모시고 서산 부석사와 부산 범어사 계명암에서 수도하고 해인사 조실로 초청받은 스승 경허를 시봉한다. 1901년 경허와 헤어진 만공은 양산 통도사 백운암에서 재차 깨달음을 얻었다.

1904년 금강산을 거쳐 삼수갑산으로 화광동진(和光同塵)하러 떠나는 경허에게 마지막으로 법인가를 받고 ‘만공(滿空)’이란 법호를 받는다. 이때 만공은 스승 경허의 헌 담배쌈지와 담뱃대가 마음에 걸려 새것으로 선물했는데 경허는 아이처럼 좋아했다고 한다. 훗날 글방 선생 ‘박난주’로 임종을 맞을 때 경허는 이 두 가지를 꼭 무덤에 함께 묻어달라고 했다. 아마 이 물건이 자신임을 증명할 신표가 될 것임을 내다봤기 때문일 것이다.

멍텅구리의 법문

1930년대 말, 만공이 수덕사에 있을 때였다. 당시 만공 스님을 시봉하고 있던 어린 진성사미, 즉 훗날 수덕문중이며 이 나라 불교의 큰 스승이 된 원담 스님이 사미승이던 시절, 진성사미는 어느 날 사하촌의 나무꾼들을 따라 나무를 하러 갔다가 장난기 많은 나무꾼들에게 속아 딱따구리 노래를 배워 부르고 다녔다.

저 산의 딱따구리는

생나무 구멍도 잘 뚫는데

우리 집 멍텅구리는

뚫린 구멍도 못 뚫는구나.

뜻을 알지 못하는 진성사미는 노랫말이 의미하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심심할 때마다 절 안을 돌아다니며 큰 소리로 이 노래를 부르곤 했다. 마침 만공이 지나가며 노래를 듣고 좋은 노래이니 잊지 말라 당부하고 갔다. 

그런데 어느 화창한 봄날, 서울 경복궁의 내명부 상궁들과 나인들이 만공에게 법문을 청했다. 그러자 만공은 좋은 법문이 있다면서 진성사미를 불러 노래를 시켰다. 만공의 칭찬에 신이 난 진성사미는 구성지게 노래를 불렀다. 순진한 동자사미의 노래를 듣는 동안 내명부의 나인들은 얼굴을 붉히며 노래를 듣고만 있었다. 노래가 끝나고 만공은 담담한 모습으로 나인들에게 법문을 했다.

“바로 이 노래 속에 인간을 가르치는 만고불력의 직설 핵심 법문이 있소. 마음이 깨끗하고 밝은 사람은 딱따구리 법문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이나 마음이 더러운 사람은 이 노래에서 한낱 추악한 잡념을 일으킬 것이오. 원래 참법문은 맑고 아름답고 더럽고 추한 경지를 넘어선 것이오. 범부중생은 부처와 똑같은 불성을 갖추어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뚫린 부처 씨앗’이라는 것을 모르는 멍텅구리요. 뚫린 이치를 찾는 것이 바로 불법이오. 삼독과 환상의 노예가 된 어리석은 중생들이라 참으로 불쌍한 멍텅구리인 것이요. 진리는 지극히 가까운 데 있소. 큰 길은 막힘과 걸림이 없어 원래 훤히 뚫린 것이기 때문에 지극히 가깝고, 결국 이 노래는 뚫린 이치도 제대로 못 찾는 딱따구리만도 못한 세상 사람들을 풍자한 훌륭한 법문인 것이요.”(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