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월(慧月)5 

 

남는 장사

혜월이 손수 황무지를 개간해 2천 평의 논을 만든 적이 있었다. 이 옥토를 마을 사람 중 한 사람이 노리고 있었다. 그는 혜월의 천진함을 이용해 그 논을 싸게 사려고 밤마다 찾아와 졸라댔다.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혜월은 그 사람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논을 사려 그러시나?”

“농사를 지어 밥술이라도 먹을까 해서 그렇습니다. 시세대로 쳐드리겠습니다. 저에게 파십시오.”

혜월은 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주막으로 따라가 술과 고기가 차려진 술상 앞에서 계약을 하고 말았다. 혜월은 밤늦게야 절로 돌아왔다. 혜월은 제자들에게 논값을 내놓으며 말했다

“옜다. 여기 돈이 있다.”

원래 혜월은 돈에 대해서는 백치였다. 신도들이 이따금씩 용돈을 주면 봉투를 뜯어보려 하지도 않고 이불 밑에 넣어 두었다가 사중 스님들에게 봉투째 용돈을 집어주곤 하였다. 도대체 산술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엄청난 액수인 논값을 내놓으니 앞뒤 사정을 모르는 대중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게 웬 돈입니까?”

그러자 혜월이 대답했다.

“내가 논을 팔았다. 마을 사람 박 아무개가 밥술이라도 먹겠다고 졸라대서 줘버렸다.”

느닷없는 혜월의 말에 제자들은 논값을 헤아려 셈을 해보았다. 그들은 돈을 세어본 후에 비로소 그 마을 사람이 혜월을 속인 것을 알게 되었다.

“스님, 스님은 속으셨습니다. 논은 세 마지기인데 이 돈은 두 마지기 값밖에 되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일제히 힐난을 퍼붓자 묵묵히 앉아있던 혜월은 소리를 질렀다.

“이놈들아, 그게 무슨 소리냐? 저 논 세 마지기는 아직 그대로 절 앞에 있고, 여기에는 두 마지기 논값이 있으니 다섯 마지기 논으로 불었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냐!”

제자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혜월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다시 말했다.

“이놈들아, 장사는 나처럼 해야 한다.”

뱀을 타이르다

한여름이 되면 깊은 산속의 절에는 여러 짐승이 많이 몰려들게 마련이다. 그 가운데서도 뱀이나 구렁이 같은 것들이 언제나 절 근처를 맴돌았다. 더구나 비만 오면 뱀과 구렁이들은 절 마당으로 잔뜩 몰려들었다. 그때 혜월은 그들 앞에 나타나 조용히 타이르곤 하였다.

“사람들이 너희들을 싫어하니 사람들 눈에 띄기 전에 자리를 피해 도망가라.”

그러면 거짓말처럼 뱀과 구렁이들은 풀숲으로 스르르 사라져 버리곤 했다. 그래도 못 알아들은 뱀이 있으면 그는 어린애 다루듯 타이르면서 아무렇게나 뱀을 손으로 집어 숲속에 놓아주곤 했는데 이상하게도 뱀은 절대로 혜월의 손을 물지 않았다.

또 찾아오시게

그가 정혜사에 있을 무렵 하루는 도둑이 들었다. 

양식을 훔쳐내 지게에 지고 가려던 도둑은 가마니가 무거워 홀로 지게를 지려했으나 힘에 부쳐 쩔쩔맸다. 이때 누군가 밤도둑의 지게 짐을 들어 올려 슬며시 밀어주는 것이 아닌가?. 놀란 도둑이 돌아보니 혜월이었다. 그는 놀란 도둑에게 소리를 내지 말라고 입가에 손을 대고는 이렇게 말했다.

“쉬잇, 아무 소리 하지 말고 조용히 내려가게. 양식이 떨어지면 또 찾아오시게나.”

수많은 선지식이 수행 오도한 후 열반했지만 일생을 천진함과 무심으로 모든 중생들을 제접한 혜월만큼 특이한 열반의 모습을 보여준 사람은 드물다. 그는 노년에 시간이 있을 때는 항시 뒷산에 올라 솔방울을 주어 자루에 담아오곤 하였다. 그가 열반하던 날도 역시 솔방울을 줍기 위해 산을 오르다 언제나 쉬던 그 자리에서 그대로 몸을 벗어버렸다. 그때가 세수 76세, 법랍 65세였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