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월(慧月)3 - 혜월과 동자승 - 

혜월이 팔공산에 있는 파계사에 머무르고 있을 때였다. 혜월의 소문을 듣고 송광사의 젊은 스님 하나가 친견하기 위해 전라도 땅에서 경상도 땅으로 찾아왔다. 객승이 혜월에게 큰절을 올리자 혜월이 물었다. 

“어디서 오셨는가?”

“조계산 송광사에서 왔습니다.”

“전라도 부처는 요즘 시절인연(時節因緣)이 어떠하던가?”

“가고 머무르고 앉고 눕는 것(行住坐臥)이 여일(如一)합니다.”

“그러하면 그대는 뭐 하러 이곳까지 찾아오셨는고?”

그러자 객승이 대답했다.

“참선하려고 왔습니다. 그리고 큰스님의 시절인연을 보려 왔습니다.”

객승의 대답에 혜월이 대뜸 되물었다. 

“참선해 뭐 하려고?”

“그거야 부처가 되려고 그러지요.”

“참선은 앉아서 하는 건가, 서서 하는 건가?”

“물론 앉아서 하지요.”

그러자 혜월이 웃으며 말했다.

“그놈의 부처는 다리병신인 모양이지, 앉아서만 있으니.”

어리둥절해진 객승이 혜월에게 물었다.

“좌선은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은 앉아만 있는 것이지, 부처되는 작업은 아니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자 혜월은 소리를 질렀다.   

“명색이 먹물 옷 입고 중노릇하면서 그것도 모르시나?”

“그래서 큰스님을 찾아와 문안드리지 않았습니까?”

혜월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아이고, 나도 모르겠네. 점심 공양이나 하시게. 나는 시장에나 다녀와야겠네.”

혜월은 객승을 남겨두고 시장에 가려는 듯 서둘러 경내를 빠져나가려 했다. 그때였다. 방 안에서 “아이고, 아이고!”하는 곡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혜월은 바삐 나서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방문 앞으로 다가가 큰절을 올려 합장하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큰스님, 큰스님, 저 시장에 다녀오겠습니다.”

그러자 방 안에서 칭얼거리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내 점심은 안 차려주고 너 혼자 간단 말이냐?”

“곧 다녀오겠습니다, 큰스님. 심심하시면 객스님과 재미있게 노십시오.”

그러자 문이 열리더니 이제 갓 열 살이 넘은 듯한 동승 하나가 고개를 내밀고 말했다.

“빨리 다녀와라, 해지기 전에.”

무심코 열린 방문을 통해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지켜보고 있던 젊은 객승은 너무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토록 법격이 높은 큰스님 혜월에게 명령을 내리고, 그 큰스님 혜월로부터 ‘큰스님’으로 호칭 받는 더 큰 스님이 도대체 누구일까 궁금하던 차에 열린 방문을 통해 나타난 분이 정작 이제 열 살 남짓한 동자승이었던 것이다. 그뿐인가? 혜월은 그 동승에게 깍듯이 합장 배례하고 문안 인사드린 후 절문 밖으로 나간 것이다. 젊은 객승은 어리둥절하여 그 동승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동자승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객승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벌떡 일어나며 소리쳐 말했다.

“그대는 누구인가? 못 보던 얼굴인데? 오라, 알겠다. 우리 절을 찾아온 객중인 모양이로구나.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 온 객승인데 건방지게 눈이 마주쳐도 앉아만 있는고? 우리 혜월 스님은 아침저녁 내게 문안인사를 올리는데!”

객승은 기가 막히다 못해 분노가 치밀었다. 그렇다고 열 살 남짓의 동자승과 싸울 수도 없는 노릇. 간신히 분노를 가라앉힌 객승은 조용히 방 안으로 동자승을 들어오게 했다. 마침 심심했던 듯 그 동자승은 좋아라고 객승이 머무르고 있는 방으로 당당하게 들어와 앉았다. 

“나를 왜 부르지?”

그러자 객승은 문을 닫고 나서 꾸짖었다.

“네 이놈, 도대체 어디서 그러한 무례를 배웠는고?”

처음 당하는 일이라 동승은 벌벌 떨고 있었다. 

“내 당장 네 옷을 벗겨 절문 밖으로 쫓아내 버릴 것이다.”

그러자 비로소 동승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스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리 와 앉거라.”

자리에 앉는 법조차 모르는 동승은 무릎을 꿇지 않고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알겠느냐?”

“네.”

객승은 동승에게 기본적이고 간단한 예법을 가르쳐 주었다.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옷을 벗겨 절문 밖으로 쫓아버릴 테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동승은 울먹이며 대답했다. 그날 저녁 늦게 혜월이 시장에서 돌아왔다. 그는 절에 도착하자마자 동승이 머무르고 있는 방문 앞에 서서 큰 소리로 문안인사를 했다.

“큰스님, 시장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방 안에서 대답이 없었다. 젊은 객승은 그 동승이 자신이 시키는 대로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가를 지켜보기 위해 방문을 열고 이를 살펴보고 있었다. 

“큰스님, 어디 편찮으십니까?”

혜월은 조심스레 방문을 열어보았다. 그러자 방 안에서 동자승이 울먹이며 혜월을 향해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인사를 했다.

“큰스님, 이제 다녀오십니까?”

혜월은 순간 자기가 시장에 가고 없는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날 밤 혜월은 자신의 방으로 그 젊은 객승을 불렀다.

“내가 시장에 가고 없을 때 그대가 동승에게 가르침을 준 것 같구먼. 무엇을 가르쳤는가?”

객승이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하도 무례하고 무도하여 간단한 예법과 도리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꿇어앉는 법, 공경어 쓰는 법, 인사하는 법과 같은 간단한 예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순간 혜월은 소리쳤다.  

“그대는 내가 예법을 몰라 그 어린아이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가? 천진 그대로의 모습이 하도 좋아 이 세상의 때가 묻지 않도록 가꾸고 있었는데 그대가 무슨 연유로 그 천진을 깨뜨린단 말인가? 그대는 예법을 가르쳐 줌으로써 천진 그대로의 부처를 죽이고 말았네. 한 번 잃은 부처는 다시 살아날 수 없는 노릇. 이제 큰스님 동자승과는 시절인연이 다 됐으니 내일 아침 그대가 산문(山門)을 떠날 때 그 동자승을 데리고 함께 가게.”

객승은 다음날 아침 열 살 남짓의 동승을 데리고 산문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객승을 따라나서는 동승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면서 혜월은 크게 절하고 두 손을 모아 합장한 후 작별 인사를 했다.

“큰스님, 어디를 가시나 부디 건강하시고 어디를 가시나 공부 잘하십시오.”

산문을 지나 산자락을 타고 멀리 사라져가는 동승의 뒷모습을 쫓아 혜월은 산짐승처럼 뒷산을 오르고 올라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