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가지 선화禪話3
윤두서(尹斗緖. 1668~1715) 노승도(老僧圖). 18세기 초, 종이에 수묵, 58.4 × 37.8cm,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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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가 만공과 함께 먼 길을 나섰다. 어느덧 한낮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길은 첩첩산중이고 마을은 눈에 띄지 않는데 시장기가 돌기 시작했다. 굽이진 산길을 돌아 어느 산마루 턱에 당도하였을 때, 저쪽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곳에 오색 깃발 같은 것이 늘어져 있었다. 상여 행렬이 고개 마루턱에서 쉬는 중이었다. 경허는 만공을 데리고 장례 행렬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상여 앞에서 합장을 한 다음 음식을 청했다.
“시장해서 음식을 좀 청합니다.”
“행상(行喪) 길이니 술밖에 더 있나요?”
한 상여꾼이 장난스럽게 대꾸하자 경허는 태연히 말했다.
“술이 있으면 술을, 고기가 있으면 고기를 주시지요.”
사람들이 모두 눈을 크게 떴다.
“아따 참, 원 별 중들 다 보겠네.”
사람들이 빈정거렸다. 점잖은 한 상여꾼이 말했다.
“아니 대사(大師)가 어찌 술을 달라 하시오? 곡차라 하지도 않고.”
경허는 그를 보며 대답했다.
“시장한데 한잔 하면 되지, 굳이 다른 말 할 게 뭐 있겠소.”
사람들은 어이가 없었지만 술 한 대접을 듬뿍 떠 내놓았다. 막걸리였다. 경허는 술잔을 받지 않고 손을 내저었다.
“잔이 너무 작습니다. 차라리 바가지나 동이째 주시오.”
경허에게 흥미를 느낀 한 상여꾼이 웃으며 말했다.
“어디 동이째 내줘 봐.”
이윽고 다른 상여꾼이 술이 가득 담긴 동이를 들어 경허 앞에 내놓았다. 경허는 그것을 단숨에 비워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던 상주의 마음이 움직였다. 틀림없이 도가 높은 대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상장(喪杖)을 짚고 경허에게 가서 공손히 물었다.
“무애행을 하시는 도가 높은 스님들 같사온데 스님들의 자비로움으로 망인이신 우리 아버님의 명당(明堂)을 하나 잡아 주실 수 없는지요?”
경허는 느닷없이 소리를 질렀다.
“명당은 해서 뭐에 써? 죽으면 다 썩은 고깃덩어리가 될 뿐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극진한 대접을 했는데 갑자기 표변한 걸승(乞僧)의 행동에 상주들이 분노했다.
“아니, 어디서 굴러먹던 중놈들이!”
상주들은 대막대기(喪杖)를 들어 당장에 후려칠 기세였다.
“네 이놈들!”
경허의 우렁찬 소리가 좌중을 압도했다. 경허와 만공은 모두 6척이 넘는 건장한 체구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이 뜻밖의 사태를 상여꾼들은 그저 멍청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때 맏상주가 흥분한 아우들을 헤치고 다시 앞으로 나섰다.
“스님 말씀이 지당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까막까치나 구더기의 밥이 되는 것이지요. 저희들이 미흡해 알아 뵙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자손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해서요.”
맏상주는 행상 길을 재촉해 떠날 차비를 했다. 잠자코 있던 경허가 중얼거렸다.
“모든 것은 다 허망할 뿐이니 죽고 사는 것은 원래 그러하므로 만약 모든 것이 참으로 허망한 줄 알면 그대들도 참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일세.”
14
경허의 법을 신봉한 직지사 제산(齊山) 스님은 청정한 지계행과 높은 덕행을 겸비해 제방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제산 스님은 경허가 합천 해인사 조실로 있을 때 시봉을 도맡다시피 했다. 당시 400~500명의 대중이 상주하는 대사찰에서 경허의 뜻을 받들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경허를 위해 대중 모르게 곡차를 마련하고 안줏감이 될 만한 것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제산 스님은 입소문을 막기 위해 다른 사람을 시키지 않고 깊은 밤이면 몰래 절 밖으로 나가 안주를 만들어 경허에게 올렸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게 마련. 제산 스님의 행각은 대중 사이에 알려지고 말았다. 산중은 변고가 난 것처럼 야단이었다. 납자 몇몇이 모이기만 하면 모두들 경허와 제산 스님을 성토하기 바빴다. 당시 주지 남전 스님이 이 소문을 듣고 제산 스님을 찾아 소문의 진위를 물었다. 제산 스님은 태연했다.
“제가 경허 스님을 위해 한 일입니다.”
남전 스님으로서는 제산 스님을 만나기 전 낭설이겠거니 하며 물었는데 제산 스님의 당당한 소리에 어이가 없었다. 남전 스님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며 밖으로 나갔다. 남전 스님은 믿기지 않았다. 평소 법력이 높아 추앙받는 선지식 경허, 또 학덕과 율행을 겸비한 것으로 알려진 제산 스님이었던 것이다. 남전 스님은 며칠을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스님의 고민은 경허의 법력에 대한 의구심에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남전 스님은 경허의 법문을 찬찬히 들었다. 그런데 들으면 들을수록 깊은 감명이 우러났다. 걸림이 없었던 것이다. 남전 스님은 곧바로 선방에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용맹정진을 시작했다. 신심이 발한 남전 스님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남전 스님이 하루는 대중공양을 하는데 발우를 펴며 제산 스님에게 격외 법담을 걸었다.
“스님, 이 발우가 안 보입니다.”
스님의 높은 경지에 모든 좌중은 크게 놀랐다. 그 후 남전 스님 역시 제산 스님 이상으로 경허에 대한 소문들을 진정시키는 데 앞장섰다.
해인사에서는 어느 날 만공ㆍ제산ㆍ남전 스님이 함께 자리해 경허의 법 따르기를 견주는 기회가 있었다. 제산 스님이 말했다.
“누가 뭐라 해도 경허 스님께 계속 곡차와 닭고기를 바치리다.”
남전 스님이 말을 받았다.
“경허 스님과 같은 어른을 위해서라면 닭이 아니라 소를 잡아 올려도 거리낄 게 없소.”
그러자 만공이 말했다.
“나는 전쟁이 나 깊은 산중에 모시고 살다 양식이 떨어져 공양 올릴 것이 없게 된다면 나의 살점을 오려서라도 스님의 생명을 구하겠소.”
15
경허가 마정령(馬亭領)이란 고개를 넘을 때였다. 산에서 나뭇짐을 지고 내려오던 초동들이 스님을 보고 웃었다.
“저 중 봐라, 이상하다.”
그때 경허의 행색은 머리는 깎았으되 수염은 길렀으며 맨발에 한 손에는 담뱃대를 잡고, 다른 손에는 떡과 과자가 든 자루를 둘러메고 있었다. 아이들의 웃음에 스님이 물었다.
“얘들아, 나를 알겠느냐?”
아이들이 말했다.
“저희들은 스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면 나를 보느냐?”
“예, 지금 스님을 보고 있습니다.”
“이놈들아, 나를 알지 못한다 하면서 나를 어찌 본다 하느냐?”
경허는 차고 있던 주장자(拄杖子)를 내어주며 일렀다.
“얘들아, 누구든지 이 막대기로 나를 한번 때려봐라. 만약 너희들이 나를 제대로 때리기만 한다면 수고한 대가로 이 자루에 든 과자와 돈을 모두 주마.”
그 가운데 한 영리한 아이가 앞으로 나왔다.
“스님, 그게 정말입니까?”
아이는 경허가 내주는 주장자를 받아 쥐고 힘껏 경허를 후려쳤다. 하지만 경허는 계속 아이들을 보고 말했다.
“때려봐라, 때려봐라!”
아이들은 무더기로 달려들었다. 그런데도 경허는 껄껄 웃었다.
“너희들은 나를 때리지 못했느니라. 만약 때렸다면 부처도 때리고 조사도 때리고, 또 세세 제불과 역대 조사 내지 천하 노화상을 한 방망이로 때려 갈길 것이니라.”
아이들이 항의했다.
“스님을 아무리 때려도 때리지 못했다고 하니 과자와 금전을 준다고 하는 것은 모두 거짓 아닙니까?”
경허는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여기 있다. 다 가져가거라.”
경허는 어째서 아이들에게 매 맞는 것을 자초한 것일까? 그리고 분명히 맞았는데 어째서 맞지 않았다는 말을 되풀이해 계속해서 매질을 유도한 것일까? 경허는 아이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싶었던 것이다. 못난 이 씨 왕조, 그 속에서 만신창이가 된 백성들. 아이들 앞에서 속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질곡 속에서 그들을 구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특히 이 땅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아이들에게 제일 미안하기에 저들로부터 몰매 맞는 것을 자초한 것이다. 경허는 아이들에게 돈과 과자를 내주고 고개를 넘어가며 한 곡조 노래를 읊었다.
온 세상 혼탁하나 나 홀로 깨었어라.
우거진 수풀 아래 남은 해를 보내리.
16
경허가 만공과 여러 날 멀리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만 여비가 떨어지고 말았다. 날이 저물어 여관에 행장을 푼 다음날, 여관 주인이 경허ㆍ만공 스님에게 숙박비와 식대를 내라 했다. 그러자 경허가 말했다.
“우리가 법당을 중수하려고 화주(化主)를 나왔습니다. 주인께서도 시주를 하시지요?”
여관 주인이 잠자코 있다가 답했다.
“그러면 그 화주책을 한 번 봅시다.”
만공이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경허에게는 화주책이 없었다. 화주책도 없는데 시주하라고 말을 꺼냈으니 큰일이었다. 만공이 말했다.
“실은 이 주인댁에 우리가 화주를 하려고 왔으나 지난밤 너무 극진한 대접을 받아 고맙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러니 이 댁에서는 시주를 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화주책을 내놓지 않고 둘러대는 만공의 말에 얼떨떨해진 여관 주인은 대꾸를 하지 못했다. 이때 만공이 덧붙인 한마디가 더 가관이었다.
“그렇게까지 괘념하시어 우리에게 고맙게 시주까지 해주신다면 책을 꺼내 보여드리지요.”
만공은 당황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 만공은 걸망 속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정작 있지도 않은 화주책을 꺼낼 기세였다. 그러자 여관 주인이 책 꺼내는 것을 만류하며 말했다.
“알았습니다. 알았어요. 스님들. 제가 시주를 특별히 할 수는 없고, 어젯밤 두 분의 숙식비는 받지 않을 테니 그냥 가시지요.”
주인으로서는 자칫 잘못하다 여관비를 받기는커녕 법당 중수 화주까지 하게 생겼다는 생각에 책 꺼내는 것을 극구 만류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여관에서 나오자 경허가 만공에게 말했다.
“자네 수단이 나보다 훨씬 낫네그려.”
17
만공이 경허와 만행하며 겪은 고비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고비마다 만공은 기지를 발휘했다. 만공이 경허와 함께 전주 인근을 지날 때였다. 어느 식당에서 점심 공양을 마친 두 사람은 구한말 시대에 쓰던 은백전을 내주었다. 그러자 식당 주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 돈은 전라도 도지사가 사용치 말라는 명령을 내려받을 수 없으니 여기서 쓰는 돈을 주시오.”
당시는 일제가 새 화폐 사용을 강요하던 시기였다. 식당 주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허가 큰 눈을 부릅뜨고 일갈했다.
“그 도지사란 놈은 당장 잡아 목을 벨 놈이로구나. 우리나라에서 내놓는 돈을 우리나라 사람이 사용 못 하다니 그런 죽일 놈이 있단 말이냐? 이 돈을 썩 받아라!”
스님의 호통에 주인은 얼떨결에 돈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마침 식당 주변에는 일제 관원이 나와 있었다. 관원이 이 광경을 보고 개입하려 했지만 서슬 퍼런 경허의 야단에 아무 말도 못 한 채 머뭇거리고 있었다. 경허는 이 틈을 타 식당을 나와 뛰기 시작했다. 만공은 태연한 척 마을 사람들에게 잘 이야기하고는 부리나케 경허를 쫓아 식당을 빠져나왔다. 얼마를 갔을까? 산모퉁이를 돌고 나니 경허가 쉬고 있었다.
“내가 어지간하지. 그 바람에 길을 많이 걸어왔다. 어떠냐? 내 재주가?”
18
경허와 만공이 어느 산중 깊은 길을 가다 갑자기 비를 만났다. 두 사람은 큰 바위 동굴에 몸을 피했다. 조용한 가운데 경허가 단단한 바위로 된 동굴 천장을 자꾸 올려다보았다. 만공이 의아해서 물었다.
“스님, 왜 그렇게 천장을 올려다보십니까?”
경허가 조용히 말했다.
“이 바위가 내려앉을까 염려되어 그러네.”
만공이 다시 물었다.
“스님, 이 끄떡없는 바위가 내려앉을 리 있겠습니까?”
경허가 조용히 말했다.
“이 사람아, 가장 안전한 곳이 가장 위험한 곳이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