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문에 들다 

 경허(鏡虛, 1849~1912).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만큼 기실 그의 행적은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물론 인구에 회자된 만행이 그가 가지고 있던 사상의 깊이와 불도의 넓이를 짐작하게 할 뿐이다. 원효 이래 그만큼 많은 일화를 가지고 있는 스님도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 찾아가는 청계사에 얽힌 일화는 하나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청계사는 그가 아홉 살에 들어와 열네 살에 동학사로 가기 전까지 잠시 머문 곳일 뿐이다. 그러나 그 유년의 기간이 그의 전 생애를 좌우했음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그래서 청계사는 경허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럼으로 불가에도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가정하여 그가 우리 불가에 없었다면? 작금 불교가 가지고 있는 이만한 입지조차 우리는 마련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청계사는 본의 건 본의가 아니건 오늘 우리 불교의 은사(恩寺)다. 

 경허 스님이 어째서 그 어린 나이에 불문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는 1849년 8월 24일 전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나이 아홉 살 때 아버지 송두왕(宋斗王)이 죽자 어머니 박씨 부인의 손을 잡고 청계사에 입산해 계허대사(桂虛大師) 밑에서 출가자의 첫걸음을 내딛는다. 그의 형도 공주(公州) 마곡사(麻谷寺)에 출가한 것을 보면 대대로 불연이 깊은 집안이었던 것만은 틀림없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진짜였는지 혹은 나중에 붙여진 말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태어난 지 꼭 3일 만에야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출생 초기부터 어떤 신이(神異)를 가지고 세상에 나온 것이다. 청계사에서의 행자 생활은 어린 그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의 나날이었지만 그는 남다르게 기골이 장대했다. 그는 천부적인 강건함으로 산중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한 해, 두 해‥‥‥‥.  드디어 그에게 문자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의 나이 열네 살에 박처사(朴處士)라는 사람으로부터 글을 배우게 된 것이다.

 이후 그에게 걸리는 것은 없었다. 하나를 익히면 능히 열을 아는 총명함으로 그는 일찌감치 계허(桂虛) 대사의 심중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마침내 계허 대사가 퇴속(退俗)하면서 동학사(東鶴寺)에 있는 만화(萬化) 강백(講伯)에게 천거했다. 경허는 만화 강백 밑에서 불경은 물론 유전(儒典), 노장(老莊)까지 두루 섭렵해 스물세 살에 동학사 강원 강사로 추대되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후 그의 행적은 알려진 대로 한국 불교의 법등(法燈)이었다. 그를 따르는 수많은 학인들이 구름 떼처럼 동학사로 몰려들었다. 그런 그가 수월(水月), 혜월(慧月), 만공(滿空), 한암(漢岩) 등의 뛰어난 제자를 남긴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