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자애심으로 흐름에 든 ‘직조공의 딸’ 

어느 날 부처님이 설법을 하기 위해 알라위(Āḷavi) 시에 도착했다. 알라위 시는 꼬살라 국의 수도 사왓티 시에서 30요자나 거리에 위치해 있고 바라나시에서는 12요자나 정도 떨어져 있는, 사왓티 시와 라자가하 시 사이에 위치한 도시였다. 부처님은 사왓티 시에서 라자가하 시를 오갈 때 그 사이에 위치한 이곳에서 자주 머물렀다. 신심 깊었던 알라위 시의 시민들이 부처님을 초대하자 부처님은 기꺼이 응한 후 이곳까지 와 공양을 받았다. 부처님은 공양을 마치고 알라위 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렇게 설법했다. 

“죽음에 대해 명상하십시오. ‘삶은 불확실하고 죽음은 확실하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죽음은 삶의 종착역이다. 삶은 불안전하고 죽음은 반드시 찾아온다.’라고 자주 외우며 명상하십시오. 죽음에 대해 명상하지 않은 사람은 마치 막대기도 없는 사람이 독사를 보면 두려움에 휩싸이듯이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면 공포에 휩싸여 당황하며 비명을 질러댈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 명상한 사람은 마치 막대기를 가진 사람이 뱀을 보면 막대기로 집어서 멀리 던져버리며 마음의 동요가 전혀 없듯이 마지막 순간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떨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죽음에 대해 명상해야 합니다.”

부처님으로부터 ‘죽음을 명상하라’는 주제의 법문을 들은 알라위 시 사람들은, 그러나 오직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세속 일에 바빠 부처님의 당부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부처님의 설법 내용을 잊지 않고 기억한 한 사람은 열여섯 살 먹은 한 직조공의 딸뿐이었다. 그녀는 부처님이 들려준 귀한 말씀을 잊지 않고 늘 마음에 깊이 새겼다. 

‘부처님의 법문은 정말로 놀라운 가르침이다. 나는 죽음에 대한 명상을 꼭 실천할 것이다.’

소녀는 부처님의 법문을 들은 이후 밤이나 낮이나 오직 죽음에 대해 명상했다. 설법을 마친 부처님은 알라위 시를 떠나 다시 사왓티 시의 제따와나[기원정사]로 돌아갔다. 그 뒤 이 소녀는 3년 동안이나 늘 죽음에 대한 명상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 새벽이었다. 부처님은 늘 그랬던 것처럼 세상을 살피다가 알라위 시의 이 소녀가 반야의 그물 안으로, 즉 성자의 흐름에 막 들어오려고 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앞으로 이 소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부처님은 통찰로써 소녀에게 일어날 일을 간파했다. 

‘이 소녀는 나의 법문을 들은 그날부터 3년 동안 죽음에 대해 명상했다. 나는 곧 알라위 시로 가서 이 소녀에게 네 가지 질문을 할 것이다. 이 소녀는 네 가지 질문에 대해 정확하게 대답할 것이고, 나는 소녀를 칭찬하며 게송을 읊게 될 것이다. 이 게송 끝에 이 소녀는 성자의 흐름에 드는 수다원과를 성취하게 될 것이다. 이 소녀로 인해 알라위 시의 많은 사람들도 나의 법문을 듣고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500명의 비구들을 이끌고 제따와나를 출발해서 얼마간 유행한 끝에 악갈라와 쩨띠야(Aggālava Cetiya)에 도착하셨다. 악갈라와 쩨띠야는 알라위 시에 있는 사원으로, 처음에는 이교도의 예배 장소였으나 나중에 불교사원이 된 곳이었다. 이곳은 부처님이 알라위 시를 방문할 때마다 자주 머무는 장소였고, 여러 가지 계율이 제정된 곳이기도 했다. 부처님은 정각을 이룬 후 16년째 되던 해에 이곳에서 우안거를 보냈을 정도로 알라위 시를 각별하게 여겼다.  

알라위 시 사람들은 부처님이 악갈라와 사원에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사원으로 달려가서 부처님을 초청했다. 어느덧 열아홉 살이 된 소녀 역시 부처님이 오셨다는 말을 듣자 온몸이 기쁨으로 가득 찼다. 

‘나의 자애로운 아버지, 존귀하신 스승님, 보름달처럼 아름다우신 분, 고따마 부처님께서 여기로 오셨다고 한다. 3년 전 황금빛으로 빛나는 부처님을 처음 뵈었지. 나는 오늘도 황금빛 부처님을 찾아뵙고 감미롭고 숭고한 가르침을 들어야겠다.’

그러나 그 순간 소녀의 아버지가 작업장으로 나가면서 말했다. 

“얘야, 손님이 주문한 옷이 아직도 베틀 위에 걸려있는데 한 뼘 정도만 더 짜면 마무리가 되겠구나. 오늘 그 옷을 끝내려고 하니 네가 북통에 실을 감아서 빨리 갖다 줄 수 있겠느냐?”

그러자 소녀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이 북실을 가져다드리지 않으면 아버지가 나를 때릴지도 몰라. 먼저 북통에 실을 감아서 갖다 드리고 나서 법문을 들으러 가야겠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북통에 실을 감기 시작했다. 

그때 알라위 시 사람들은 부처님과 비구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등 시중을 들고 있었다. 공양이 끝나자 그들은 발우를 받아들고 부처님의 법문을 기다렸다. 이때 부처님께서 말했다. 

“나는 오늘 특히 한 소녀에게 법문을 들려주기 위해서 30요자나를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아직 소녀가 이곳에 오지 않았으니 소녀가 이곳에 도착하면 법문을 시작하겠습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침묵한 채 자리에 앉아계셨다. 그곳에 모인 대중들도 모두 침묵을 지켰다. 부처님이 침묵하자 신도 인간도 감히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소녀가 북통에 실을 다 채워 바구니에 넣고 아버지의 작업장으로 가다가, 대중들이 모여 앉아 있던 법석의 맨 뒤에 서서 부처님이 앉아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이때 부처님도 고개를 들어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부처님이 자기를 바라보자 곧 부처님의 뜻을 알아차렸다. 

‘대중이 앉아 있는 가운데 부처님께서 나를 바라보신 것은 가까이 다가오라는 의미일 것이다.’ 부처님의 뜻을 간파한 그녀는 북실 바구니를 땅에 내려놓고 부처님 가까이로 다가갔다. 

부처님이 소녀를 바라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부처님은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이 소녀가 아버지 작업장에 가면 깨달음을 얻지 못한 채 죽게 돼 미래가 불확실해진다. 소녀가 내게로 와 법문을 들으면 수다원과를 성취한 후 떠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미래가 확실해지고, 죽어서 뚜시따(Tusita, 도솔) 천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뚜시따천은 수미산(須彌山, Sumeru mountain) 정상에서 12만 요자나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욕계천상 가운데 하나이다. 뚜시따천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나뉘는데, 내원[내원궁(內院宮)]은 고따마 부처님이 남섬부주(南贍部洲, 인간세계)에 내려오기 전에 머물렀던 곳이다. 현재는 미륵보살이 지상으로 내려갈 때를 기다리며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 한편 외원은 여러 천인(天人)들이 모여 행복과 쾌락을 누리는 곳이다. 공덕을 지어 선업을 쌓고 불심 깊은 사람만이 도솔천에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 

마침 그날은 소녀의 수명이 다하는 날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 소녀가 자칫 흐름에 들지 못한 채 죽어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을 안타까워한 부처님은 한없는 자애심과 연민심으로 30요자나의 먼 거리를 기꺼이 걸어온 것이다.  

소녀가 부처님에게로 다가가자 부처님의 몸에서 방사되는 여섯 색깔의 광명이 그녀의 몸을 포근히 감싸 안았다. 그녀는 부처님에게 삼배를 올리고 침묵하고 있는 대중들 가운데 앉았다. 이때 부처님께서 그녀에게 물었다. 

“소녀여, 그대는 어디서 오는가?”

“모릅니다.”

“어디로 가는가?”

“모릅니다.”

“모르는가?”

“압니다.”

“아는가?”

“모릅니다.”

부처님이 이렇게 네 가지 질문을 하고 소녀가 답하는 것을 들은 대중들 사이에서 불쾌감이 일었다. 

“제멋대로 무례하게 부처님께 대답하는 이 직조공의 딸 좀 보게! 부처님께서 ‘어디서 오는가?’라고 물으실 때 ‘직조공의 집에서 옵니다.’라고 대답해야지. 그리고 ‘어디로 가는가?’라고 물으실 때 ‘직조공의 작업장으로 갑니다.’라고 대답해야지. 이렇게 돼먹지 않은 대답을 하다니!”

그러자 부처님은 대중들의 소란을 잠재우고,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소녀여, 내가 ‘어디서 오는가?’라고 물었을 때 왜 ‘모릅니다.’라고 대답했는가?”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제가 아버지 집에서 온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어디서 오는가?’라고 물으실 때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어디서 왔는가?’라는 의미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어디서 왔는지 모르기 때문에 모른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오, 소녀여. 훌륭하다! 훌륭하다! 그대는 정확하게 대답했다.”

부처님은 소녀를 칭찬하고 나서 또다시 물었다. 

“내가 ‘어디로 가는가?’라고 물었을 때 왜 ‘모릅니다.’라고 대답했는가?”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제가 북실 바구니를 들고 직조공의 작업장으로 간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어디로 가는가?’라고 물으실 때 ‘저세상을 갈 때 어디에 태어나는가?’라는 의미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금생에서 죽어 저세상에 태어날 때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 때문에 모른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그대는 정확히 대답했다.” 

부처님은 두 번째로 그녀를 칭찬하시고 나서 또다시 물었다. 

“내가 ‘모르는가?’라고 물었을 때 왜 ‘압니다.’라고 대답했는가?”

“부처님이시여, 저는 확실히 죽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안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그대는 정확하게 대답했다.”

부처님은 세 번째로 그녀를 칭찬하고 나서 또 물었다. 

“내가 ‘아는가?’라고 물었을 때 왜 ‘모릅니다.’라고 대답했는가?”

“부처님이시여, 저는 확실히 죽는다는 것은 알지만 언제 죽을지는 모릅니다. 밤에 죽을지 낮에 죽을지 아침에 죽을지 언제 어느 시간에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모른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참으로 그대는 정확히 대답했다.”

부처님은 이렇게 네 번째로 칭찬하고 나서 대중들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들은 대부분 이 소녀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하고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안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보지 못하고 안목을 갖춘 자만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게송을 읊으셨다.

세상 사람들은 눈멀었고

몇몇 사람만이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보네.

몇몇 새만이 그물을 벗어나듯

몇몇 사람만이 천상으로 가네.

이 게송 끝에 소녀는 수다원과를 성취하였다. 

그러고 나서 소녀는 북실 바구니를 챙겨들고 아버지에게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베틀에 앉아 졸고 있었다. 소녀는 아버지가 자고 있는지도 모르고 북실 바구니를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이때 바구니가 베틀을 치면서 바닥으로 ‘툭’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지자 아버지가 놀라 잠에서 깨어나면서 무의식적으로 베틀의 방추를 당겼다. 그 순간 방추의 날카로운 끝이 움직이면서 그녀의 가슴을 찔렀다. 방추는 실에 꼬임을 주면서 목관(木管) 등에 감는 데 필요한 양 끝이 날카로운 송곳 모양으로 제작된 작은 축이다. 

방추에 가슴 부위를 깊게 찔린 그녀는 그 자리에서 죽어 뚜시따 천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딸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황급히 다가가 살펴보았지만 이미 심장이 멈추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실수로 딸이 죽었다는 생각에 그는 비통한 감정을 가눌 길이 없었다. 

‘아, 누가 나의 찢어질 듯 아프고 비통한 마음을 가라앉혀 줄 수 있을 것인가?’

한참을 울부짖던 그는 부처님에게 달려가 눈물을 흘리며 자신에게 일어난 비참한 사건을 소상히 말씀드렸다. 

“부처님이시여, 저의 슬픔을 가라앉혀주소서. 부처님이시여, 저의 슬픔을 가라앉혀주소서.”

그러자 부처님이 그를 위로하면서 말했다. 

“슬퍼하지 말라. 한량없는 옛적부터 윤회하면서 딸이 죽어 흘린 눈물의 양이 저 사대양의 물보다 더 많다.”

이어 부처님이 시작을 알 수 없는 윤회에 대해 설법하자 그의 슬픔도 어느덧 진정되고 있었다. 법문을 듣고 세상에 대한 염오의 마음을 일으킨 소녀의 아버지는 부처님에게 출가를 허락해달라고 요청했다. 부처님의 허락으로 비구가 된 그는 열심히 정진했고,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아서 궁극의 경지, 아라한과를 성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