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로 재가여성 장로가 된 ‘위사카’① 

위사카(Visākha)는 대부호의 딸로 고따마 부처님의 여성 재가신도 중 으뜸으로 평가되는 여인이다. 고따마 부처님은 위사카를 ‘상가(Sangha)를 섬긴 사람 가운데 으뜸’이라고 찬탄했다. 위사카는 부처님이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머무는 동안,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보시행을 실천에 옮겼다. 

 위사카는 앙가(Aṅga) 국의 밧다야 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가 멘다까(Meṇdaka) 장자였고, 아버지는 다난자야(Dhanañjaya) 장자였으며 그의 어머니는 수마나 데위(Devi)였다. 위사카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부처님께서 많은 비구들을 데리고 그 도시에 오셨다. 그때 그녀의 할아버지 멘다까 장자는 도시의 재정관을 맡고 있었으며 과거 생에 큰 바라밀 공덕을 지은 다섯 명 중 한 명이었다. 

큰 바라밀을 갖추고 있는 다섯 명은 멘다까 장자, 그의 아내 짠다빠두마, 장남 다난자야, 장남의 아내 수마나 데위, 멘다까 장자의 하인 뿐나였다. 멘다까는 천문학적인 재산을 가지고 있는 대장자였다. 앙가국이 마가다국에 의해 병합되자 멘다까는 빔비사라 왕이 통치하고 있는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가하로 옮겨 사업을 더욱 확장했다. 당시 라자가하에는 멘다까 장자를 포함해서 다섯 명의 억만장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조띠까, 자띨라, 멘다까, 뿐나까 그리고 까까왈리야 등이었다. 

멘다까 장자는 부처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손녀 위사카를 불러 마중을 보냈다. 

“위사카야, 오늘은 너에게는 물론 우리 모두에게도 축복이 될 것이다. 오백 명의 시녀들과 함께 오백 대의 마차를 타고 나가 고따마 부처님을 마중하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위사카는 할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마중 갈 준비를 했다. 그녀는 사리를 잘 구별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마차로 갈 수 있는 데까지 간 다음 마차에서 내려 걸었다. 부처님 일행과 만났을 때 그녀는 다가가서 삼배를 올리고 한쪽에 섰다. 과거에 쌓았던 선업이 무르익었기 때문에 부처님은 기쁜 마음으로 그녀와 마중 나온 시녀들에게 설법했다. 법문이 끝나자 그녀와 시녀 오백 명은 놀랍게도 그 자리에서 수다원과를 성취해 성자의 흐름에 들었다. 

이때 멘다까 장자도 부처님께 다가가 법문을 듣고 수다원과를 성취했다. 장자는 너무나 기뻐서 고따마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집으로 안내했다. 그는 부처님과 비구들에게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으로 보름 동안 공양 올렸다. 부처님께서는 오랫동안 그곳에 머무르고 나서 길을 떠나셨다. 

당시 잠부디빠의 두 강대국인 마가다국의 빔비사라 왕과 꼬살라 국의 빠세나디 왕은 서로 상대방의 누이와 결혼하여 친척관계를 맺고 있었다. 어느 날 꼬살라 국의 빠세나디 왕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빔비사라 왕의 영토에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재산을 지니고 큰 복덕을 가진 부자들이 다섯 명이나 살고 있는데 나의 영토에는 그런 부자가 한 명도 없다. 빔비사라 왕에게 가서 그렇게 커다란 복덕을 지닌 사람을 한 명만 달라고 부탁해볼까?’ 결심을 굳힌 그는 마가다국의 빔비사라 왕을 찾아갔다. 빔비사라 왕은 빠세나디 왕과 다정스럽게 인사하고 물었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대왕의 나라에는 다섯 명의 무한한 복덕을 지닌 억만장자들이 살고 있는데, 그중 한 명만 데리고 가면 안 될까 하는 생각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허, 그들은 유명한 가문이라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그중 한 명이라도 데려가지 못한다면 나는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빠세나디 왕의 의지가 예상보다 단단함을 확인한 빔비사라 왕은 신하들과 상의하고 나서 대답했다. 

“조띠까와 같은 유명한 가문을 옮기는 것은 땅덩어리를 옮기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멘다까의 아들 다난자야 장자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내가 그에게 가서 상의해보고 나중에 연락을 주겠습니다.”

빔비사라 왕은 서둘러 다난자야 장자를 궁으로 불러들여 물었다. 

“꼬살라 국의 왕이 나에게 ‘거부 장자 한 명을 데려가고 싶다’고 말하는데, 괜찮다면 그대가 같이 가시면 어떻겠소?”

“대왕께서 가라고 하시면 기꺼이 가겠습니다.”

“고맙소. 준비가 되는 대로 떠나도록 하시오.”

다난자야 장자는 이동할 준비를 마치고 왕에게 보고했다. 빔비사라 왕은 결단을 내려준 다난자야 장자에게 존경을 표하고 빠세나디 왕과 작별했다. 빠세나디 왕은 그를 데리고 사왓티로 향했다. 그들은 하루 종일 여행하여 저녁이 되자 막사를 치고 야영을 하였다. 그곳은 아주 쾌적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다난자야 장자가 왕에게 물었다. 

“대왕이시여, 이곳은 누구의 영토입니까?”

“장자여, 이곳은 나의 영토입니다.”

“여기서 사왓티 시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일곱 요자나 정도가 됩니다.”

“대왕이시여, 사왓티 시는 복잡하고 사람들로 꽉 들어 차 있습니다. 그곳에 정착하기에 제가 데리고 온 사람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대왕께서 허락하시면 저는 여기쯤에 거처를 정하겠습니다.”

“좋소. 그렇게 하시오.”

빠세나디 왕은 흔쾌히 승낙했다. 왕은 그곳에 도시를 만들어주고 사왓티로 돌아갔다. 이곳은 저녁(sayam)에 처음으로 거주했다고 해서 사께따(Sāketa) 시라고 불렸다. 그런데 사실 사께따는 빠세나디 왕이 의도적으로 무역도시로 계획하려던 장소였다. 빠세나디 왕은 이곳을 중심으로 상업과 무역을 발전 시켜 경제적 번영을 꾀하고자 했다. 과연 그의 의도대로 사께따는 훗날 사왓티, 라자가하 등과 함께 잠부디빠를 대표하는 6대 도시로 발돋움했다.  

한편 사왓티에는 미가라(Migrā) 장자와 아들 뿐나왓다나(Puṇṇavaḍḍhana)가 살고 있었다. 뿐나왓다나가 결혼할 나이가 되자 부모는 결혼을 재촉했다. 그러나 그는 결혼에 뜻이 없었다. 부모의 설득이 집요하게 계속되자 그는 다섯 가지의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는 여자라면 결혼하겠다고 조건을 걸었다. 다섯 가지 아름다움이란 머릿결의 아름다움, 살의 아름다움, 뼈의 아름다움, 피부의 아름다움, 젊음의 아름다움이었다. 

아들의 조건을 들은 뿐나왓다나의 부모는 백팔 명의 바라문을 동원하여 백방으로 이 조건에 맞는 여인을 찾도록 했다. 바라문들은 잠부디빠의 대도시들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다섯 가지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지닌 처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아무런 소득도 없이 사왓티 시로 돌아오다가 사께따에 들렀다. 사께따에서는 매년 위와따낙캇따(연간축제)라고 불리는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축제가 열리면 평소에 한 번도 외출을 하지 않던 규중처녀들도 시녀들을 데리고 강으로 목욕하러 갔고, 부잣집 자제들과 깟띠야 계급의 아들들이 길가에 서 있다가 마음에 드는 처녀가 지나가면 꽃다발을 그녀의 머리에 올리며 청혼하는 풍습이 있었다. 십육 세의 어여쁜 처녀가 된 위사카도 온갖 장신구로 치장하고 오백 명의 시녀들과 목욕하려고 강가로 걸어갔다. 그때 갑자기 폭풍이 불더니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오백 명의 시녀들은 비를 피하려고 온 힘을 다해 공회당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위사카는 비가 쏟아지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보통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서 회관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회관에 들어올 때는 옷과 보석이 흠뻑 젖어 있었다. 바라문들은 그녀가 다섯 가지의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녀를 칭찬하면서 정식으로 청혼하였다. 

위사카는 아버지가 보내준 마차를 타고 시녀들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바라문들은 그녀의 뒤를 따랐다. 다난자야는 딸 위사카의 결혼에 동의하고, 이틀 동안 바라문들을 후하게 대접한 뒤에 떠나보냈다. 

바라문들은 사왓티 시로 돌아가 미가라 장자에게 신부감을 찾았음을 보고하고, 그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내가 유명한 가문의 딸을 얻었구나. 가능한 빨리 그녀를 우리 집으로 데려오는 게 좋겠다.”

다음날 그는 빠세나디 왕에게 사께따로 며느리 될 처녀를 데리러 가야 한다고 알렸다. 그러자 왕은 크게 기뻐하며 자신도 함께 다난자야의 집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미가라 장자는 다난자야 장자에게 편지를 보내 혼인을 위한 여정에 빠세나디 왕도 동행할 것임을 알렸다. 통보를 받은 다난자야 장자는 여러 명의 금 세공사를 불러 금, 은, 루비, 진주, 산호, 다이아몬드를 충분히 건네며 위사카에게 줄 큰 넝쿨 장신구, 공작 모양을 한 각종 보석으로 장식된 망토를 만들 것을 부탁했다.     

마침 우기가 닥쳐 미가라 장자와 빠세나디 왕 일행은 4개월 동안 사께따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사께따의 시내에서는 길고 긴 축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왕부터 가장 천한 사람까지 모두가 값비싼 옷을 입고 향수를 바르고 꽃으로 장식하고서, 왕이 자기만을 바라본다고 생각하면서 돌아다녔다. 이렇게 삼 개월이 지나도 아직 장신구가 완성되지 않았다. 사 개월이 지나자 장신구가 완성되었다. 이 장신구를 만드는데 다이아몬드가 한 되, 진주가 세 되, 산호가 여섯 되, 루비가 여덟 되 정도, 그 외에도 일곱 종류의 보석이 사용되었다. 보석을 꿰매는 데는 평범한 실을 사용하지 않고 순전히 은실을 사용하였다. 장신구를 만드는 데 재료비가 구천만 냥, 세공비가 십만 냥이나 들었다. 

다난자야 장자는 사 개월 동안 딸의 혼숫감을 만들고 나서 딸의 결혼 지참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여러 수레의 금 은 구리 그릇, 여러 수레의 비단옷, 여러 수레의 버터기름, 여러 수레의 쌀, 여러 수레의 농기구를 실었다. 

딸이 출발하기 전날 밤 장자는 방에 딸을 불러 앉히고 말했다. 

“얘야, 네가 시댁에서 사는 동안 지켜야 할 행동 규범이 몇 가지 있다. 지금부터 알려줄 터이니 명심해야 한다.”

다난자야 장자는 딸에게 열 가지 훈계를 하였다. 마침 그때 미가라 장자가 옆방에 앉아 있다가 이 열 가지 훈계를 들었다.  

“네가 시댁에 사는 동안 집안의 불을 집 밖으로 옮기지 마라. 집 밖의 불을 집안으로 옮기지 마라. 돌려주는 자에게 주어라. 돌려주지 않는 자에게 주지 마라. 돌려주거나 주지 않은 자에게 주어라. 행복하게 앉아라. 행복하게 먹어라. 행복하게 잠자라. 불을 잘 돌보아라. 가정의 신들을 존중해라.”

다음 날 다난자야 장자는 모든 식솔들을 불러 모아놓고 그중 여덟 명에게 많은 재물을 주며, 딸의 보호자로 임명했다. 

“만일 시댁에서 내 딸에게 어떤 잘못을 뒤집어씌우려고 하면, 그대들이 나서서 해결해 주시오.”

장자는 딸에게 구천만 냥의 가치가 있는 큰 넝쿨 장신구를 입히고 목욕용 향수 가루를 살 돈을 건네준 후, 딸의 손을 잡고 마차에 태웠다. 그리고 그가 소유하고 있는 사께따 주위의 열네 마을을 지나가면서 이와 같이 선언했다. 

“내 딸과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은 따라가도 좋다.”

열네 마을의 사람들은 이 선언을 듣자마자 모두 환호했다. 그들은 모두 짐을 싸가지고 따라나섰다. 다난자야 장자는 왕과 미가라 장자에게 존경을 표하고 딸을 배웅하고 돌아갔다. 미가라 장자가 행렬의 제일 뒤에서 마차를 타고 가다가 많은 사람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고 물었다.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며느리가 일을 시킬 남자 하인과 여자 하인들이랍니다.”

“누가 이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단 말인가? 막대기로 때려서 어서 돌려보내라. 기어이 돌아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사람만 데리고 가거라.”

이 말을 들은 위사카가 항의하며 말했다. 

“멈추세요! 그들을 쫓지 말아요. 그들은 내가 먹여 살릴 거예요.”

미가라 장자가 그녀의 항의에 대답했다. 

“며늘아기야,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이 필요 없단다. 누가 이들을 먹여 살리지?”

그는 며느리의 항의를 무시하고 사람들을 시켜 흙덩이를 던지거나 막대기로 때려 그들을 쫓아버렸다. 끝까지 되돌아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사람만 데리고 갔다. 위사카가 사왓티 시의 성문에 도착하자 그녀는 덮개 있는 마차를 타고 성에 들어가는 게 좋을지 아니면 덮개 없는 마차로 옮겨 타고 들어가야 좋을지 잠시 고민했다. 

‘덮개 있는 마차에 앉아서 성안으로 들어간다면 큰덩쿨장신구와 화려하고 장엄한 모습을 사람들이 보지 못할 거야.’ 그녀는 덮개 없는 마차에 서서 자신의 화려함을 온 도시 사람들에게 보이면서 성으로 들어갔다. 사왓티 시의 주민들은 위사카의 화려한 자태를 보면서 말했다. 

“저 여인이 위사카로군. 그녀의 당당한 모습이 참으로 대단하구나.”

그런데 미가라 장자는 아들의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부처님께서 손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 번도 공양을 올리지 않는 등 고따마 부처님과 부처님 상가를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나체수행자들을 오랫동안 신봉해왔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성스러운 사문들(니간타)에게 공양 올려야겠다.”

장자는 수백 개의 새 그릇에 우유죽을 끓여 준비하고 오백 명의 나체수행자들을 초청했다. 장자는 나체수행자들이 도착하자 집안으로 맞이하여 자리를 제공하고 시종을 보내 위사카를 불렀다. 

“며늘아기야, 와서 아라한들에게 인사를 올려라.”

위사카는 수다원과를 성취했기 때문에 이미 성자의 흐름에 들어있었다. 그녀는 ‘아라한’이라는 소리에 너무 기뻐서 현관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그곳에는 나체수행자들이 벌거벗고 앉아서 식사하고 있었다. 그녀가 그들의 모습을 보고 말했다. 

“아버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부끄러움을 모르고 최소한의 도덕적 양심도 없는 파렴치한 인간들을 어떻게 아라한이라고 부를 수 있지요? 아버님, 왜 저를 이와 같은 수치스러운 장소에 부르셨습니까?”

그녀는 시아버지에게 강하게 항의하면서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이 장면을 지켜본 나체수행자들은 위사카를 보고 모두 한목소리로 맹렬히 비난했다. 그러자 미가라 장자는 가까스로 그들을 달래서 돌려보냈다. 그들이 돌아가자 장자는 비싼 의자에 앉아 황금 접시에 담긴 맛 좋은 우유죽에 꿀을 타서 먹기 시작했다. 

그때 한 비구가 탁발하려고 장자의 집으로 들어왔다. 위사카는 시아버지에게 부채질을 해드리고 있다가 비구를 보고 생각했다. ‘내가 시아버지에게 비구가 왔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녀는 직접 말하는 대신 옆으로 비켜서서 시아버지가 비구를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시아버지는 보고도 못 본 체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먹고만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위사카가 말했다. 

“그냥 가십시오. 제 시아버님께서는 지금 식은 음식을 드시고 계십니다.”

미가라 장자는 나체수행자들이 며느리를 쫓아버리라는 끈질긴 요구에는 견뎌냈지만, 그녀가 자신을 일러 ‘그는 식은 음식을 먹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자 참지 못하고 먹던 그릇을 내려놓고는 하인들에게 위사카를 내쫓으라고 지시했다. 

“이 우유죽을 내어가고 이 여인을 집에서 쫓아버려라. 이 여인은 내가 우유죽을 먹고 있는데 나를 ‘식은 음식을 먹는 남자’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 집의 하인들은 모두 위사카의 하인들이었다. 그러니 위사카의 손과 발을 붙잡아 내쫓을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감히 입을 열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위사카는 시아버지가 한 말을 듣고 따졌다. 

“아버님, 이런 구실로 제가 이 집에서 쫓겨 나가야 할 이유는 충분치 않습니다. 저는 강가에서 데려온 물 긷는 노예가 아니에요. 저의 부모님이 엄연히 살아계신 데 어떻게 이런 이유로 쫓겨나겠어요? 바로 이런 문제가 발생할까 봐 여기로 올 때 아버지께서 여덟 분의 보호자를 불러서 저를 맡기면서 ‘내 딸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밝히고 해결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분들을 불러서 저에게 잘못이 있는지 밝히도록 해주세요.”

“그래, 네 말이 옳다.”

장자가 이렇게 대답하고 여덟 명의 보호자를 불러 말했다. 

“내가 황금 접시로 우유죽을 먹고 있는데 이 젊은 여인이 내가 식은 음식을 먹고 있다고 말했소. 그녀에게 죄를 물어 이 집에서 쫓아버리시오.” 

“장자께서 하신 말씀이 사실인가요?”

“그것은 사실이라고 정확히 말할 수 없어요. 사실은 이렇습니다. 비구가 탁발을 오셔서 집 앞에 서 계셨어요. 시아버지께서 맛있는 우유죽에 꿀을 섞어 드시면서 비구를 못 본 채 하셨어요. 그래서 ‘시아버지는 금생에 새로운 공덕은 짓지 않으시고 과거 생에 지은 식어버린 복덕으로 살아가신다.’라고 생각하고 비구에게 ‘그냥 가십시오. 저의 시아버님은 식은 음식을 드시고 계십니다.’라고 말했어요. 저에게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전혀 잘못이 없습니다. 소저께선 맞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장자께서는 이 설명을 듣고도 화를 내야 할 이유가 또 있습니까?”

“좋소. 이 일에 대해서 여인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겠소. 그러나 이 집에 올 때 그녀의 아버지가 열 가지 비밀스런 훈계를 하였는데, 나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소. 나에게 그 의미를 말해보라고 하시오. 예를 들어, 그녀에게 ‘집 안의 불을 집 밖으로 옮기지 마라’라고 했는데 어떻게 이웃집에 불도 나누어 주지 않고 그렇게 인정머리도 없이 살 수 있단 말이오?”

“장자께서 하신 말씀이 사실인가요? 소저.”

“친정아버지가 하신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뜻은 ‘시아버지와 남편의 허물을 보아도 집 밖에 나가 흉보지 마라. 세상에 이보다 더한 불은 없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좋소. 그건 그렇다고 치고 ‘집 밖의 불을 집안으로 들이지 마라’라고 말했는데 집안에 불이 꺼지면 다른 집에서 불을 가져오지 않고 어디서 불을 가져오겠소?”

“장자께서 하신 말씀이 사실인가요? 소저.”

“그것 역시 아버지께서는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하신 말씀은 ‘이웃집 남자나 여인이 시아버지나 남편의 흉을 보거든 집에 들어와서 누구누구가 당신에 대해서 좋지 않은 말을 했다고 고자질을 하지 마라. 세상에 이보다 더한 불은 없다.’라는 의미였습니다.”

위사카에게 어떤 잘못도 찾을 수 없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문제에서도 전혀 허물이 없었다. 장자는 훈계의 진정한 의미를 듣고 나서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덟 명의 보호자들이 물었다. 

“장자님, 저 소저에게 또 다른 잘못이 있습니까?”

“음, 없소.”

“그녀에게 잘못이 없는데 까닭도 물어보지 않고 왜 집에서 쫓아내려고 하십니까?”

이때 위사카가 말했다. 

“처음에 시아버님의 명령대로 제가 이 집에서 쫓겨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로 올 때 아버지께서 여덟 분의 보호자에게 저를 맡기시고 어려운 일이 일어나면 저에게 잘못이 있는지 없는지 결정하라고 하여 여덟 분이 저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을 밝혀주셨습니다. 저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으니 이제는 이 집을 떠나는 것이 옳습니다.”

위사카는 이어 단호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하인과 하녀들은 떠날 준비를 하고 마차와 수레를 대기시켜라.”

며느리의 단호한 명령에 크게 당황한 시아버지는 여덟 명의 보호자들을 기다리게 하고 위사카에게 말했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고 그런 말을 했구나. 나를 용서해다오.”

위사카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애타게 용서를 비는 시아버지를 한동안 지켜본 후에 입을 열었다.

“아버님, 저의 힘닿는 한까지는 모두 용서해드릴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따마 부처님에 대한 확고한 신심을 가진 집안의 딸이에요. 저는 부처님과 그의 제자들이 오지 않는 집안에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제가 부처님의 상가에 봉사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면 남을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알겠다. 며늘아기야, 네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비구들에게 봉사하도록 해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