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결혼 실패 후 수행자가 된 ‘이씨다씨’②
부모님으로부터 ‘이유를 모르지만 아무튼 네가 싫어 못 살겠다.’라는 남편의 입장을 전해 들으며 이씨다씨는 피가 몸에서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듯한 현기증을 느꼈다. 그녀의 표정이 일순 허옇게 변해갔다. 창백한 얼굴 위로 가냘픈 눈물 자국이 길게 늘어졌다.
그 순간, 놀라운 현상이 나타났다. 그동안 자신을 괴롭혀 왔던 수치스러움과 분노가 모두 사라지는 것이었다. 분노와 수치심으로 가득했던 마음에, 모든 것이 허물어지고 흩어져 어느 것 하나 붙잡을 게 없다는 절망감 같은 것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세 번의 결혼 생활 동안 단 하나라도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것을 탓하며 그럭저럭 버틸 순 있겠는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보아도 자신이 행한 잘못은 없었다. 바로 이 점이 그를 더 견딜 수 없게 했다. 이씨다씨의 뇌리에 ‘이토록 모진 생을 살아가야 한다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막상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요동쳤고, 그녀의 일상은 뒤죽박죽이 되어가고 있었다. 세 번이나 소박을 맞은 신세가 처연하여 당장 목숨을 끊으려다가도 낳아 주고 길러 준 부모의 얼굴이 떠올라 그만두기를 수십여 차례나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이씨다씨의 육신은 하루가 다르게 메말라 갔다. 깡마른 몸을 흐느적거리며, 실성한 사람처럼 집안을 배회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의 수심도 하루가 다르게 깊어만 갔다.
그렇게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며 위태롭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삭발하고 가사를 걸친 한 여성 출가수행자가 탁발을 위해 집에 찾아왔다. 이씨다씨는 멀찍이서 그 비구니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그 순간 초점을 잃은 그녀의 표정이 별안간 바뀌었다. 그녀에게 한 의문이 일어난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여성은 출가수행자가 되지 못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여성 출가자가 내 눈앞에 서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 이씨다씨는 난생처음 보는 여성 수행자의 모습이 신기함을 느끼며, 의문을 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비구니에게 다가갔다.
“수행자여, 당신은 여성인데도 머리카락을 자르고 가사를 입었군요. 여인도 출가해 수행자가 될 수가 있나요? 그것이 가능합니까?”
비구니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비구니의 단아하고 당당한 표정이 드러났다. 이를 바라보는 이씨다씨의 마음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설레기 시작했다. 이씨다씨는 비구니의 잔잔한 미소 속에 어린 한량없는 자애를 보았다. 마치 암담한 어둠 속을 헤매다 한 줄기 빛과 마주한 기분이었다.
“나는 지나닷따(Jinadattā)라고 합니다. 나는 부처님과 그분의 가르침, 그리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상가에 귀의한 출가수행자입니다. 그런데 당신에게서 깊은 두려움이 느껴집니다. 지금 당신의 모습은 수많은 인연이 현현한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니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지난날을 되돌아보기 바랍니다.”
“지금 부처님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분은 어떤 분인가요?”
“네, 부처님은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출가하여 거룩한 깨달음을 이루신 위대한 스승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같은 여자도 출가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어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였다. 현재의 고통이 그간의 인연에서 비롯되었다면 어디쯤에 자신의 과오가 숨어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부처님의 상가는 여성의 출가도 허용하고 있다니! 자신을 괴롭히는 혼탁한 마음을 벗어젖히고, 꼭꼭 숨은 그 원인을 찾아보기에 부처님의 상가는 더없이 좋을 곳이라는 확신이 다가왔다. 지나닷따 비구니가 떠난 후 이씨다씨는 그길로 부모에게 달려갔다.
“아버님, 어머님. 저는 모진 삶에 억눌려 차라리 죽으려고 했으나, 이제 그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죽음 대신에 죽을힘을 다해 수행하고자 합니다. 저는 거룩한 부처님께 계를 받고 출가하겠습니다. 갑작스런 말이지만 부디 저의 심정을 헤아려 허락해 주세요.”
딸의 돌연한 제안에 부모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딸의 참담한 처지를 생각하면 어떤 것이든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아예 부모의 품을 떠나 출가수행자가 되겠다는 것은 말리고 싶었다.
“사랑하는 내 딸아. 꼭 출가를 해야 하겠느냐? 집에서도 얼마든지 수행할 수가 있고,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올릴 수 있지 않느냐. 네가 집을 나가기까지 한다면 이 부모의 마음이 어떠할지 생각해 보지는 않았니?”
울먹거리는 부모 앞에서 이씨다씨는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아버님, 어머님, 제가 이렇게 딱한 처지가 된 것은 필시 전생을 통해 수없이 많은 악행을 지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전생에 지은 업이 무엇인지 알아야 이 슬픔을 딛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신다고 해도 출가를 하겠다는 제 결심은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더 이상 만류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은 부모는, 출가를 허락하는 게 진정 딸을 위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사랑하는 딸아! 네 뜻이 정 그렇다면 출가하도록 해라. 부디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받들어 네가 원하는 행복에 이르렀으면 좋겠구나. 네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우리는 그 길을 기꺼이 축복할 것이다.”
엄격한 수행가풍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순수위빠사나 수행처 '빤띠따라마'에서 걷기 수행 중인 한 여성수행자.(사진=이학종)
부모의 허락을 받은 이씨다씨는 곧바로 상가에 들어가 출가 절차를 마쳤다. 비구니가 된 이씨다씨는 그곳에서 배운 수행절차에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치열하게 정진을 이어갔다. 전생에 쌓은 선근공덕의 힘이 바탕이 되었고, 그동안 겪어온 참담함을 극복하고 참다운 행복을 얻기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이씨다씨는 한 찰나도 흐트러짐이 없이 수행주제를 실행에 옮겼다. 무서운 정진력 덕에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 이씨다씨는 번뇌를 깨부수며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의 경지에 차례로 올랐다. 이렇게 성자의 흐름에 들어 경지를 높인 이씨다씨는 일곱 번째 날 아침, 마침내 삼명(三明), 즉 부처나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세 가지 자유 자재한 지혜를 성취했다. 나와 남의 전생을 훤히 아는 지혜(宿命智證明), 중생의 미래의 생사와 과보를 훤히 아는 지혜(生死智證明),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는 길을 아는 지혜(漏盡智證明)를 얻어 아라한이 된 것이다.
아라한이 된 이씨다씨는 자신의 전생을 헤아려 전생에 지은 과보를 낱낱이 보았다. 그토록 자신을 괴롭혔던 과보의 지중함을 확연히 알게 된 것이다. 드디어 이씨다씨의 얼굴에 찬란한 미소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부처님과 똑같은 평온한 미소였다. 이씨다씨는 아라한 경지를 얻은 즐거움과 열반의 즐거움을 한껏 누렸다. 새벽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고, 일거수일투족이 사리에 어긋남이 없었다. 그녀를 존경하고, 따르는 수행자들이 늘어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함께 정진하는 비구니들도 이씨다씨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지도 받기를 즐겨했다.
어느 날, 함께 수행하던 장로니 ‘보디’와 함께 빠딸리뿟따 시로 가 탁발을 한 후 공양을 마친 후에 발우를 씻고 강가 강의 모래톱 위에 앉아 자신의 전생과 출가를 하게 된 연유를 밝힌 것도 이런 흐름에서 일어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전생의 삶을 게송을 밝히며 출가하게 된 연유를 밝혔던 이씨다씨는 이어서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도 밝혔다. 도반을 위해 자신의 수행 과정을 게송으로써 친절하게 설명하는 그녀의 표정에 자애로움이 넘쳐흘렀다. 인적이 드문 곳에 편안히 앉아 귀를 기울이는 보디 장로니의 눈빛이 별처럼 반짝였다.
탁월한 도시 웃제니(아완띠 국의 수도)에서
아버지는 계행을 지키는 부호였고,
나는 그의 외동딸로 사랑스럽고
매력적이고 귀여움을 독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싸께따 시의
최상의 가문으로부터 중매인이 왔습니다.
많은 재보를 지닌 부호라고 했는데,
아버지는 그에게 나를 며느리로 주었습니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에게
아침, 저녁으로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은 대로
두 발에 머리를 조아려 인사했습니다.
나의 남편의 누이나 형제나
시종들이 있는데,
그 한 번이라도 마주치면,
두려워하며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과
단단한 음식과 그 밖에 갈무리한 것으로
그들을 기쁘게 하고, 가지고 와서,
각자에게 적당하도록 나누어주었습니다.
알맞은 시간에 일어나서
남편의 집으로 가서
문지방에 손발을 씻고
합장하여 남편에게 다가갔습니다.
빗과 화장품과 안약과
거울을 가지고
시중드는 하녀처럼 스스로
남편을 단장해 주었습니다.
스스로 밥을 짓고
스스로 그릇을 씻고
어머니가 외아들에게 하듯
남편을 보살폈습니다.
이처럼 정숙하고 헌신적이고
충실하고 겸손하고
일찍 일어나고 게으르지 않고
부덕을 갖춘 여인이었던 나를 남편이 싫어했습니다.
그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허락을 구하고 저는 나가겠습니다.
이씨다씨와 한 집에서
함께 살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아, 그렇게 말하지 말라.
이씨다씨는 현명하고 총명하고
일찍 일어나고 게으르지 않다.
아들아, 무엇이 너에게 흡족하지 않느냐?’
‘그녀가 나를 결코 해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씨다씨와 함께 살지 않겠습니다.
싫기만 한 여인이니 제게 그것으로 됐습니다.
허락을 구하고 저는 나가겠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나에게 물었다.
‘네가 무엇을 잘못했느냐?
있는 그대로 솔직히 말하거라.’
‘저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고,
해를 끼치지도 어떤 욕설도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나를 미워하는데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의기소침하고 고통에 압도되어
그들은 나를 친정집으로 돌려보내며
‘아들의 편을 들어주려니,
아름다운 행운의 여신을 잃는구나.’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통해 부호가 나를 향유한
지참금의 절반으로 나를,
부유한 집안의 두 번째 남편에게 시집보냈습니다.
그의 집에서도 겨우 한 달을 살았습니다.
하녀처럼 그를 섬기고
해를 끼치지 않고 계행을 갖추었지만,
그도 역시 나를 쫓아냈습니다.
그래 남을 길들이고 자신도 길들이는
탁발수행자에게 제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넝마옷과 바리때를 버리고
당신이 나의 사위가 되어주시오.’
그도 역시 반달쯤 살다가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넝마옷과 바리때와 물병을 돌려주시오.
다시 나는 탁발을 하겠소.’
그래서 아버지와 어머니뿐 아니라
모든 나의 친지들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여기 그대를 위하여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
그대를 위해 해야 할 일을 서둘러 말하라.’
이와 같이 말하자 그가 말했습니다.
‘내 스스로 살 수 있다면 족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씨다씨는 살지 않겠습니다.
한 집안에서 함께 살지 않겠습니다.’
그는 떠나서 가버렸고,
나는 홀로 생각했습니다.
‘허락을 구해 떠나서
죽거나 또는 출가하겠다.’
마침 계율에 밝고
많이 배웠고 계행을 지키는
존귀한 여인 지나닷따께서
탁발을 다니다 아버지의 집에 왔습니다.
그녀를 뵙고 나는 일어나
그녀를 위해 자리를 제공했습니다.
앉은 분의 두 발에
예배를 드리고 음식을 드렸습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과
단단한 음식과 그 밖에 갈무리한 것으로
대접한 뒤에 말했습니다.
‘존귀한 여인이여, 저는 출가하겠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아이야 여기서 그 가르침을 행하라.
먹을 것과 마실 것으로
수행자들과 재생족(바라문)들에게 대접하거라.’
그래서 나는 아버지께
울면서 합장하여 말했습니다.
‘악업은 참으로 제가 지은 것입니다.
그 업을 소멸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최상의 가르침과 깨달음을 얻어라.
인간 가운데 최상자께서
실현한 열반을 성취하라.’
부모와 모든 친지들의 무리에게
작별의 인사를 하고
출가하자 이레 만에
세 가지 명지를 성취했습니다.
- 전재성 옮김 <테리가타>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