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모혼의 고통 딛고 열반 성취한 ‘빠따짜라’②
부처님이 빠따짜라를 발견했을 때, 그녀는 다친 몸으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길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부처님은 그녀가 전생에 십만 겁 동안 바라밀을 닦았으며 서원을 세우고 수기를 받았음을 알아보고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겨우 맨몸을 가려주던 망토까지 흘러내린 채 망연자실 넋을 놓고 있는 그녀의 주위에서 조롱하던 사람들은 천천히 다가오는 부처님을 발견하고는 멈칫멈칫 물러섰다. 사태를 파악한 부처님은 나이든 여인네에게 벌거벗은 그녀가 입을 만한 옷가지를 가져오게 했다. 부처님은 그녀가 제대로 옷을 입은 것을 확인한 후 비로소 가까이 다가갔다.
부처님은 허리를 굽히고 잠시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녀는 그저 미친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얼굴은 온갖 비탄과 큰 슬픔에 젖어 있었다. 부처님이 나지막하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누이여, 누이여, 이제 부끄러움을 아시겠소?”
빠따짜라는 고향 사왓티 시에 돌아온 이래 그토록 자신에게 따뜻하게 말을 붙여온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을 멸시하고 조롱하거나 욕지거리를 퍼붓고 돌과 흙덩이를 던지기 일쑤였다. 그녀는 자신을 누이라고 불러주는 이 사람이야말로 자상하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고마운 마음에 그녀는 제 한 몸 가누지 못하는 경황 중에도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했다.
“누이여, 나랑 같이 갑시다.”
부처님이 다정한 목청으로 말했다. 나이 든 여인이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아나타삔디까(기원정사) 사원까지 여인을 부축해서 따라왔다. 부처님은 비구니들에게 그녀를 씻기고 상처를 돌봐줄 것을 부탁했다. 부처님이 이끄는 사원은 이처럼 남성 출가자뿐만 아니라 일상의 괴로움에 시달린 많은 여성 출가자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고, 마침내 해탈의 꽃을 피워내는 마지막 의지처였다.
쉐다공 대탑에서 기도 중인 미얀마의 여성출가수행자들(사진=이학종)
몇몇 비구니들이 빠따짜라를 보살펴주고, 자비로운 이야기와 함께 그녀의 슬픔을 나누어 주었다. 그날 해 질 무렵 빠따짜라는 정신을 차렸고, 비로소 몸과 마음이 온전해졌다. 그녀는 부처님을 찾아가 황금빛 발아래 엎드려 삼배를 올리고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저의 의지처가 되어주소서. 저의 보호처가 되어주소서.”
빠따짜라는 그동안 자신이 겪어온 파란만장한 일들을 털어놓으며 부처님의 교단 밖에는 자신이 의지할 곳이 없음을 호소했다. 고개를 숙이고 부처님의 허락을 기다리던 그녀의 귓가에 이 세상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자비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빠따짜라여, 더 이상 괴로워하지 말라. 그대는 이제 안전한 피난처, 보호처, 의지처에 왔다. 그대가 들려준 끔찍한 일들이 다 사실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대가 수없이 많은 전생 동안 끝없이 윤회하면서 아들과 사랑하는 이를 잃고서 흘린 눈물의 양은 저 4대양의 물보다 더 많다.”
빠따짜라를 안심시킨 부처님이 이어 연민 가득한 음성으로 게송을 읊었다.
슬픔이 몰려오고 비탄에 잠겨
흘린 눈물에 비하면
저 사대양의 물은 오히려 적다.
그런데도 여인이여,
왜 부주의하게 살아가는가?
부처님은 빠따짜라에게 ‘윤회의 시작은 알 수 없음(아나마딱가숫따, 쌍윳따)’이라는 주제로 법문을 들려주셨다.
“빠따짜라여, 잘 들으라. 윤회의 시작은 알 수가 없다.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속박된 중생들은 끝없이 윤회하므로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가 오랜 세월을 윤회하면서 목이 잘려 흘린 피와 사대양의 물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많겠는가? 그대가 오랜 세월 윤회하면서 목이 잘려 흘린 피가 사대양의 물보다 훨씬 많다. 그대가 오랜 세월 소로 태어나, 물소로 태어나, 그리고 양, 염소, 사슴, 닭, 돼지 등으로 태어나 죽임을 당하면서 흘린 피가 사대양의 물보다 훨씬 많다. 또한 도둑으로 살면서 마을을 약탈하다 사로잡혀서, 강도로 살면서 길가에서 약탈하거나 부녀자를 약탈하다가 사로잡혀서 목이 잘려 흘린 피가 사대양의 물보다 훨씬 많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윤회는 시작을 알 수 없다.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속박된 중생들은 끝없이 윤회하므로 그 최초의 시작을 알 수 없다. 빠따짜라여, 이와 같이 오랜 세월을 그대는 괴로움을 겪었고 고통을 겪었고 참화를 겪었고 무덤의 숫자를 늘렸다. 이제 그대는 모든 조건 지어진 것에서 혐오하여 떠나기에 충분하고 초연하기에 충분하며 해탈하기에 충분하다.”
부처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빠따짜라는 조금씩 슬픔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부처님 첫 법문을 듣고 그녀에게 큰 진전이 일어난 데에는 오랜 전생부터 쌓아온 공덕의 힘이 있었다. 그녀는 빠두뭇따라 부처님 당시 한 씨족의 집안에서 태어나, 부처님으로부터 비구니 가운데 규율을 제일 잘 지키는 이에 대한 법문을 듣고 자신도 그런 수행자가 되기를 발원했다. 또한 깟사빠 부처님이 출현했을 때에는 베나레스(Benares) 국 끼끼(Kiki) 왕의 일곱 딸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는데, 스스로 수행을 위한 독방을 만들어 2만 년 동안이나 독신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그녀의 전생 공덕을 살펴본 부처님께서는 그녀가 슬픔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법문을 이어갔다.
“빠따짜라여, 저세상으로 갈 때에는 부모도, 자식도, 형제도 어느 누구도 피난처, 의지처, 보호처가 되지 못한다. 하물며 금생에서 어떻게 그들이 그대에게 피난처, 의지처가 되겠는가? 그러니 현명한 사람이라면 스스로 행위를 청정하게 하고, 영원한 의지처인 열반으로 가는 길을 닦아 스스로 의지처를 구해야 한다.”
부처님의 이 따뜻한 법문을 듣고 빠따짜라는 곧바로 수다원과를 성취해 성자의 흐름에 들었다. 그녀에게 남은 이 땅의 먼지만큼이나 많은 번뇌를 모두 태워버렸다. 수다원이 된 빠따짜라에게 더 이상 세속적 욕망이나 행복 추구 따위는 말끔하게 사라졌다. 그녀는 결심을 단단히 한 뒤 부처님께 출가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흔쾌하게 빠따짜라의 출가 요청을 받아들인 부처님은 그녀를 비구니 사원에 보내 출가수행자로서의 계를 받도록 했다.
부처님의 따뜻한 위로에 더욱 결심을 굳힌 빠따짜라는 마음 깊숙한 곳에 쌓인 미세한 집착과 미움, 욕망마저도 완전하게 제거하기 위해 더욱더 열심히 정진의 고삐를 죄었다. 어느 날 밤, 그녀는 생각했다.
‘어떤 사내는 호미로 밭을 파 씨를 묻고 곡식을 가꾸어 아내와 자식을 먹이고 재산을 늘린다. 여기 나는 애써 정진하고, 계를 지키며, 끊임없이 스승의 가르침을 따른다. 그러나 아직도 마지막 목표는 아득하기만 하다.’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던 어느 날 그녀는 물 항아리에 물을 채워 가져와서 조금씩 부으면서 발을 닦고 있었다. 그녀가 첫 번째로 물을 부었을 때 물은 조금 흘러가더니 이내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두 번째로 물을 부었을 때 조금 더 흘러가더니 사라져버렸다. 세 번째는 거기에서 좀 더 멀리 가더니 사라져버렸다. 빠따짜라는 이런 광경을 관찰의 대상으로 삼아 세 가지의 현상에 마음을 집중하면서 이렇게 숙고했다.
‘첫 번째 부은 물은 약간 흘러가더니 사라져버렸다. 이와 같이 이 세상의 중생들은 어린 나이에 죽는다. 내가 두 번째로 부은 물은 좀 더 가더니 사라져버렸다. 이와 같이 중생들은 꽃다운 나이에 죽는다. 내가 세 번째로 부은 물은 좀 더 멀리 가더니 사라져버렸다. 이와 같이 중생들은 나이가 들면 죽는다.’
이때 부처님은 간다꾸띠에 앉아 계시면서 빠따짜라가 완전한 열반에 도달하기 위한 마지막 과정에 있음을 간파하고는, 광명의 모습을 나타내어 마치 그녀와 마주 보고 있는 것처럼 서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빠따짜라여, 다섯 가지 모임[五蘊]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지 않고 100년을 사는 것보다 단 하루, 아니 한순간이라도 오온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며 사는 것이 훨씬 더 낫다.”
이어 부처님은 그녀가 슬픔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을 주시하면서 게송을 읊으셨다.
아들도 지켜줄 수 없고
부모나 친척도 지켜줄 수 없다.
죽음이 닥친 이를
어느 누구도 지켜줄 수 없다.
이 같은 사실을 잘 알아
지혜로운 이는
계율을 잘 지키고
열반으로 가는 길을 빨리 닦아야 한다.
부처님의 이 게송이 끝나는 순간 빠따짜라는 사무애해(四無碍解)를 완전하게 갖춘 아라한이 되었다. 장로니 빠따짜라는 이때의 감흥을 이렇게 읊었다.
쟁기로 밭을 갈고
땅 위에 씨앗을 뿌리며,
처자식을 부양하면서,
젊은이들은 부를 얻는다.
그런데 계행을 갖추고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자로서
게으르지 않고 들뜨지도 않았는데,
어찌 나는 열반을 얻지 못하는가?
두 발을 씻고
발 씻은 물을 주시하는데,
발 씻은 물이 바닥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고,
현선(賢善)한 준마를 조련하듯
나는 마음을 정립시켰다.
그 후 등불을 들고
나는 정사로 돌아갔다.
침상을 살펴본 후에
침대 위에 들어가 앉았다.
그리고 핀을 잡고
등불의 심지를 나는 꺼냈다.
등불이 소멸된 것처럼,
나의 마음은 완전히 해탈되었다.
-전재성 옮김 <테리가타>에서 인용
이때 주위에 있던 서른 명의 비구니들이 빠따짜라의 이 게송을 듣고는 궁극적인 앎이 성숙해졌다. 이 비구니들은 장로니 빠따짜라로부터 가르침을 듣고 확신을 얻어 출가한 후 청정한 계행을 지키고 정진하면서 수행해온 여성 수행자들이었다. 빠따짜라 장로니의 게송을 경청한 소른 명의 비구니들은 모두 분석적인 앎과 더불어 거룩한 경지를 얻고 자신의 실천을 성찰하면서 세 편의 시를 읊었다.
절굿공이를 들고
젊은이들은 곡식을 빻는다.
처자식을 부양하며
젊은이들은 부를 얻는다.
행하고 후회하지 않는
깨달은 님의 교법을 실천하라.
서둘러 발을 씻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아라.
마음의 멈춤을 닦아
깨달은 님의 교법을 실천하라.
빠따짜라 님의 가르침,
그녀의 훈계를 듣고
서둘러 발을 씻고
한쪽으로 들어가 앉아,
마음의 멈춤을 닦아
깨달은 님의 교법을 실현했다.
밤의 초야에
전생을 기억했고
밤의 중야에
하늘눈을 청정히 했고
밥의 후야에
어둠의 다발이 부서졌다.
게송을 읊은 후 비구니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빠따짜라의 두발에 예경했다. 그 예경은 자신들을 이끌어준 빠따짜라의 가르침을 실천해 할 일을 다 마칠 수 있었던 데 대한 고마움의 오체투지였다. 이어 서른 명의 비구니들은 한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스승 빠따짜라 장로니여, 당신의 교법은 실현되었습니다. 저희는 세 가지 명지를 얻고 번뇌를 여의었습니다. 서른셋 하늘나라의 천신들이 전쟁에서 불패의 제석천을 섬기듯, 저희는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부처님은 숱한 역경을 딛고 마침내 아라한이 된 장로니 빠따짜라를 일러 ‘(부처님의) 교법을 실천하는 여성 출가수행자 가운데 계율을 지키는 데 제일’이라고 칭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