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노스님을 살려주세요 

어둑어둑한 계곡.

정안 스님은 물과 자갈을 가리지 않고 걸었습니다. 어느새 다리는 무릎 위까지 몽땅 젖었습니다. 그러나 무서운 줄도 몰랐고,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무조건 걸었습니다. 정안 스님의 머릿속엔 오로지 노스님의 얼굴만이 가득했습니다.

나는 언제나 저 졸참나무를 바라보며 살았다. 내가 어려울 때보다 다른 사람들이 어려울 때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가뭄으로 마을에 흉년이 들면 제 스스로 열매를 많이 맺는 저 졸참나무처럼 자라야 한다. 나중에 내가 죽으면 너도 꼭 저 졸참나무를 부처님처럼 모시고 살아라. 

정안 스님은 하도 들어서 귀속에 박혀있는 노스님의 말을 생각하면서 걸었습니다. 어느새 도랑의 폭이 넓어지고 있었습니다. 시내가 가까워진 것입니다. 멀리 시내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안 스님은 또다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뿌우뿌, 기적소리가 들렸습니다. 정선역 옆에 있던 작은 병원. 정선 자애병원이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병원 응급실의 문을 밀었습니다. 그러나 노스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얀 옷을 입고 있는 의사한테로 다가갔습니다.

"노스님 한 분 안 오셨어요?"

"우리 병원에 그런 분은 안 오셨다."

"그럼, 여기 말고 다른 병원은 어디 있나요?"

"여기서 쭈욱 200미터만 아래로 내려가면 강원 제일병원이 있다."

 정안 스님은 의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응급실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또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자신도 몰랐습니다. 정안 스님의 옷은 물과 땀으로 온통 젖어 있었습니다.

강원 제일병원은 아주 큰 병원이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정문 옆의 응급실 문을 밀었습니다. 그러나 노스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안 스님은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간호사 한 분이 다가왔습니다.

"우리 노스님 여기 안 오셨나요?"

간호사가 정안스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늙으신 스님 한 분이 병원에 오셨지. 그런데......"

"지금 어디계신가요?"

"2층 중환자실에..."

 정안 스님은 간호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2층 계단을 뛰고 있었습니다. 2층의 계단을 다 오르기도 전에 정안 스님은 중환자실 밖 의자에 앉아 있는 별안 노스님을 보았습니다. 간신히 계단에 다 올라온 정안 스님은 그만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노스님!"

"아니, 네가 어떻게?"

별안 노스님이 정안스님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노스님은요?"

 "중환자실에 있다. 아직 더 두고 봐야 한다."

 별안 노스님은 얼굴에 잔잔한 미소까지 띠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안 스님은 자기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중환자실>이라고 쓰인 문 앞에서 정안 스님은 울었습니다. 그냥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 생각도 없었습니다. 

 “울지 마라.”

별안 노스님이 정안 스님의 등을 쓸어주었습니다.

 “우리 노스님, 돌아가시지 않는 거죠?”

정안 스님은 별안 노스님의 품을 파고들며 물었습니다.

 “그건 나도 모른다. 그렇지만 준비는 해야겠지.”

“예?” 

정안 스님은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로 물었습니다.

“이제 우린 갈 때가 되었다. 어린 너희들 생각하면 백 살 이 백 살 살고 싶지만 그게 어디 우리 마음대로 되는 일이더냐. 정안아, 너희 노스님 싱긋 웃으면서 중환자실로 가셨다. 말은 하지 못했지만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안돼요!”

정안 스님은 가슴이 떨렸습니다. 노스님이 안 계시면......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매일 노스님과 함께 살지 않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기도했는데...... 도무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중환자실 복도 의자에 앉아 두 손을 앞으로 모았습니다.

 별안 노스님은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밤은 점점 깊어갔습니다.

‘부처님, 제발 우리 노스님 좀 살려주세요. 우리 노스님을 살려주시기만 하면 밤이고 낮이고, 항상 부처님 곁에서 부처님만 위해서 살아갈게요. 앞으로는 예불도 잘하고, 청소도 잘하고, 노스님 심부름도 잘하고......’ 

정안 스님은 그렇게 기도하다가 주르륵 눈물을 흘렸습니다.

 “흐흐흐! 정안이가 이제 정말 스님이 되었구나.”

 별안 노스님이 정안 스님의 마음을 다 알고 있는 듯 혼잣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안 스님은 별안 노스님의 말을 듣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부처님이 노스님을 살려주시기만 하면 무슨 일이든지 다하겠다고 다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사방은 너무 조용했습니다. 

정안 스님은 노스님이 너무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굳게 닫힌 중환자실의 문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정안 스님은 꼬박 밤을 새웠습니다. 이런 일은 정말 처음이었습니다. 일부러 밤을 새운 것이 아니라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정안 스님은 처음으로 온 마음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이윽고 환하게 날이 새고 있었습니다.

“기특하구나.”

별안 노스님이 울어서 붉게 물든 정안 스님의 눈을 쳐다보았습니다.

 “아직도 수술해요?”

“수술은 하지 않을 게야. 그냥 주사 맞고 안정만 취하는 게지. 너희 노스님 태어나서 처음으로 병원에 왔으니 병원 구경 한참 하고 갈 모양이다.” 

정안 스님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별안 노스님은 노스님을 걱정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그런 별안 노스님이 미웠습니다. 정안 스님은 노스님이 병원에서 나오면 얼른 포리암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어쩐지 이곳이, 또 별안 노스님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아늑한 포리암 앞마당, 잔잔한 바다, 졸참나무숲, 그리고 공양주 할머니...... 그곳에 있었다면 노스님이 이렇게 쓰러지지는 않았을 텐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중환자실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간호사와 의사 한 사람이 별안 노스님과 정안 스님에게 다가왔습니다. 

 정안 스님의 가슴은 마구 뛰기 시작했습니다. 숨을 쉬기도 어려웠습니다.  

“스님을 모시고 가셔야겠습니다.” 

의사의 말에 별안 노스님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나 정안 스님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왜요?” 

그러나 의사는 그저 정안 스님을 보고 쓸쓸히 웃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별안 노스님이 담담히 말했습니다.

 “노스님은 시흥으로 가신다고 하는데......”

별안 노스님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일단 정안 스님은 기뻤습니다.

“병원에서 앰블란스로 시흥까지 갈 수 있지요?”

 “저희들이 그곳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별안 노스님이 의사에게 합장을 하였습니다.

 정안스님도 합장을 하였습니다.

“곧바로 앰뷸런스를 대기시키겠습니다.” 

 “우리 노스님 만나볼 수 있나요?”

“아직은 안 되는데...... 조용히 만나셔야 합니다.”

별안 노스님과 정안 스님이 중환자실의 문을 밀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노스님이 빙긋 웃고 있었습니다. 노스님은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평소보다 더 좋은 얼굴이었습니다.

“노스님!”

정안 스님은 자신도 모르게 노스님의 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허허, 녀석.”

노스님이 누운 채로 정안 스님을 한 아름 안았습니다. 

정안 스님의 눈에서는 눈물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습니다. 

“뚝! 언젠가 내가 얘기했지? 남자는 태어날 때 하고,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딱 두 번만 울어야 한다고.”

그러나 정안 스님의 눈물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 포리암으로 갈 겐가?”

 별안 노스님의 물음에 노스님이 빙그시 웃었습니다.

 “하기야 나도 여기 너무 오래 있었어.” 

노스님의 눈가에 비로소 눈물이 고였습니다.

“자네도 가겠나?"

"자네 끝은 내가 봐야지."

별안 노스님의 목소리도 젖어있었습니다.

 “아예 능금이를 데리고 갔으면 하는데.”

 별안 노스님이 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쨌거나 뒷일은 모두 자네한테 맡겨야겠네. 죽을 때까지 자네 신세는 지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것 참!”

“흐흐흐, 나중에 갚아.”

그때 간호사가 들어왔습니다.

“이제 준비하시죠.”

“아이들 데리고 나는 나중에 가겠네. 먼저 가서 기다려.”

정안 스님은 기뻤습니다. 능금이와 같이 포리암에서 산다는 생각만으로도 뛸 듯이 기뻤습니다. 정안 스님의 머릿속엔 벌써 졸참나무숲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자신과 능금이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조금이라도 빨리 포리암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노스님은 병원 마당에 서 있는 앰블런스로 옮겨졌습니다.

 “정안아 포리암에서 보자.”

 노스님이 정안 스님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아까와는 다르게 별안 노스님의 얼굴은 굳어 있었습니다.

 “우린 내일 도착할 걸세.”

별안 노스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차에 시동이 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