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장에서 

어느새 여름이 가고 있었습니다.

두 노스님은 항상 산을 올라가서는 저녁이나 되어서 내려오고,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학교에 다녀오면 금강경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정안 스님도 능금이도 그 뜻을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수보리야.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한 부처님이나 두 부처님이나 셋 넷 다섯 부처님께만 착한 마음의 바탕을 튼튼히 심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한량없는 천만 부처님의 처소에서 거룩한 마음의 바탕을 튼튼히 한 사람이니, 이 글귀를 듣고  한 생각에 거룩한 믿음을 내느니라. 

수보리야, 여래는 이 모든 중생들이 이와 같이 한량없는 복덕을 얻는 것을 다 알고 다 보느니라.

왜 그러냐 하면 중생들은 다시는 나라는 생각, 남이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오래 산다는 생각이 없으며, 진리라는 생각도 없고, 그릇된 법이라는 생각도 없기 때문이니라.

 “노스님들은 왜 이걸 외우라고 할까?”

능금이가 정안 스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글쎄.”

그렇지만 정안 스님은 신바람이 났습니다. 소리 내어 경을 읽을 때가 가장 좋았습니다. 벌써 몇 번인가를 읽어서 입에 붙었던 것입니다. 두 노스님은 가을이 오기 전까지 그 많은 금강경을 몽땅 외우라고 엄명을 내린 것입니다.

“난 몇 줄도 외우지 못하겠어.”

능금이가 그렇게 말했을 때 정안 스님은 빙긋 웃었습니다. 정안 스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 없이 자꾸만 읽다 보니 저절로 외우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염불이나 목탁을 치듯이 말입니다.

 능금이는 경을 읽기 위해 자리에만 앉으면 자꾸 하품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정신이 들면 멍청하게 앞개울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도무지 경에는 흥미가 없었습니다.

 “우리도 컴퓨터 있으면 좋겠다.”

그것은 능금이뿐만 아니라 정안 스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컴퓨터로 숙제도 하고 게임도 하는데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반 아이들 중에 컴퓨터가 없는 아이는 정안 스님과 능금이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안 스님은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노스님께서 텔레비전과 컴퓨터는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스님이란 오로지 밥 짓고 빨래하고, 경을 외우는 일만 하여야 한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난 절이 싫어.”

능금이는 울상이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난 집에 가고 싶어.”

정안 스님은 능금이가 그렇게 울상이 된 것은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산도 잘 타고, 부엌일도 잘하는 능금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집이 어딘데?”

정안 스님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그러나 능금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큰 눈에 가득 눈물을 달고 말입니다. 정안 스님은 얼른 책을 덮었습니다. 

 “우리 시내에 갔다 올까?”

능금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정선장.”

 “정말?”

정선장은 전국적으로도 유명해서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래서 옛날의 풍각쟁이도 오고, 마술사도 오고, 가끔은 서커스 공연도 있었습니다. 물론 알록달록 피에로도 있었습니다.

 “혼나지 않을까?”

그렇지만 능금이의 눈은 아까와는 다르게 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서랍 속에 모아둔 돈을 생각했습니다. 3만 원이 넘는 큰돈이 있었던 것입니다. 정안 스님은 그 돈으로 능금이에게 호떡도 사주고, 풀빵도 사주고, 무엇보다도 길거리에서 파는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싶었습니다.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부리나케 산을 넘고 물을 건넜습니다. 

 정선장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많은 돈을 주머니에 갖고 있는 정안 스님은 마음이 아주 든든했습니다. 생각했던 대로 처음 보는 신기한 구경들이 많았습니다. 원숭이를 데리고 트럼펫을 부는 사람들도 있었고, 시퍼런 칼날 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걷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모두 이상한 약을 파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렸습니다. 어떤 특별한 볼거리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배가 고팠습니다. 장터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는 먹거리 길로 나오자 정말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먹을 것들이 있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대며, 금방 빛은 찹쌀떡, 커다란 가마솥에서 푹푹 담아주는 국밥 등.

  정안 스님은 능금이의 어깨를 자신의 어깨로 툭 쳤습니다. 마음대로 고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능금이의 인상이 좀 어정쩡했습니다.

“왜 그래?”

“그게.”

능금이는 더듬거렸습니다. 그러는 순간 정안 스님은 능금이의 눈길을 확실하게 보았습니다. 능금이의 크고 맑은 눈은 역시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순대에 가 있었던 것입니다. 정안 스님은 빙긋 웃었습니다.

 “우리 순대 먹자!”

“안되잖아.”

“그래서 사복 입고 왔잖아.”

오히려 당당한 것은 정안 스님이었습니다. 그제야 능금이가 배시시 웃으며 따라왔습니다. 정안 스님은 씩씩하게 앞장섰습니다. 그리고 순대를 파는 좌판 앞에 털썩 앉았습니다.

 “순대 2인분 주세요.”

뭉텅뭉텅 썰은 순대는 금방 나왔습니다. 그런데 사실 정안 스님이 순대를 먹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순대는커녕 노스님은 고기 한 점도 정안 스님에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주는 급식도 먹지 않고 정안 스님은 꼬박꼬박 도시락을 들고 다닌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정안 스님도 고기를 먹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습니다. 노스님의 말씀이 아니라도 살아 있는 소와 돼지를 생각하면 진짜로 고기는 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능금이는 순대가 나오자마자 이쑤시개로 콕콕 찍어서 잘도 먹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정안 스님은 순대를 입에 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생각은 그렇지 않은데 행동이 따라주지 못했습니다.

 “왜 안 먹어?”

“능금이가 힐끗 바라보았습니다.

 “응.”

아뿔싸, 그러다가 순대 한 점을 입에 넣은 정안 스님은 우우욱! 그만 토하고 말았습니다. 창피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얼른 돈을 지불하고 도망치듯 장터를 빠져나왔습니다. 봄날의 짧은 햇님은 벌써 뉘엿뉘엿 지고 있었습니다.

 “왜 그랬어?”

능금이가 원망스럽게 물었습니다.

 “나도 몰라. 그냥 먹으려고 했는데 그만.”

정안 스님은 능금이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다른 거 맛있는 거 사줄게.”

그러나 능금이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습니다.

 “우리가 먹을 것은 없어. 저 것밖에.”

능금이는 손가락으로 장터 한쪽을 가리켰습니다. 

<아우라지 산나물 비빔밥>.

정안 스님이 능금이를 보고 웃었습니다.

 능금이도 정안 스님을 보고 웃었습니다. 

 어둑어둑한 산길, 물길.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천천히 걷고 있었습니다. 

 “오늘 좋았지?”

“아주 좋았어.”

능금이가 환하게 웃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능금이의 웃는 모습을 보자 괜스레 장난이 치고 싶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과 장난을 칠 수가 없었습니다. 장난을 치면 친다고 놀리고, 안 치면 안친다고 놀리고, 그래서 정안 스님은 항상 가만히 앉아 있는 도리밖에 없었습니다.  

 “까까머리는 짐승들도 싫어한대.”

“왜?”

“항상 가난하니까.”

능금이가 또 웃었습니다.

 “그렇지. 노스님들도 가난하고, 우리들도 가난하고.”

정안 스님이 모자를 벗어 능금이에게 씌워주었습니다.  

 어디선가 소쩍새가 울었습니다.

“소쩍새 뒤에는 호랑이가 있대.”

정안 스님이 일부러 겁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능금이는 씨익 웃었습니다.

 “우리 노스님이 그러는데 호랑이는 수행자를 가장 무서워한대.”

 “그럼, 능금이 네가 수행자란 말이야?”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난 산짐승은 조금도 무섭지 않아.”

“그럼, 뭐가 제일 무서워?”

그러자 능금이가 시무룩해졌습니다.

 “뭐가 무섭냐니까?”

 정안 스님은 능금이의 마음도 모르고 자꾸 물었습니다. 능금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정안 스님도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하늘에는 달도 뜨고 별도 떴습니다. 

“여기에 언제까지 살 거야?” 

능금이는 정안 스님이 잊어버릴만하면 그렇게 물었습니다.

 “모르지. 나야...... 노스님이......”

타박타박.

타박타박.

정안 스님과 능금이가 가는 길 위에 엷은 달님에 비친 긴 그림자가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여기가 좋니?”

또 능금이가 물었습니다.

 “몰라.”

정안 스님이 발길에 채이는 돌멩이를 차려다가 멈췄습니다.

 “너는 아는 게 없지?”

“노스님과 함께 있으면 어디든 똑같애. 매일 매일......”

그 순간 정안 스님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고, 10시에 잠자고, 빨래하고, 밥하고...... 그건 정말 지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난 정말 집에 가고 싶어.”

“또 그 얘기?”

능금이는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사실 정안 스님도 못 견디게 엄마 아버지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도 정안 스님은 희미하게 남아있는 할머니의 얼굴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적멸암 스님인 아버지의 얼굴은 아무리 생각하려고 해도 잘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할머니는 어디에 계실까?  

고개 넘어 또 고개, 물 건너 또 물,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 때야 드디어 집이 보였습니다.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집에는 불빛이 없었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축 늘어져 있던 정안 스님과 능금이는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두 분 노스님은 어디에 계실까? 

또 오늘 종아리가 불이 나게 맞겠구나. 

정안 스님과 능금이의 머릿속엔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습니다. 

까치구멍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집 앞에 차바퀴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습니다. 문득 짚이는 게 있었습니다. 

 "노스님이 병원에 가신 거야."

"...?"

"아니면 이곳에 차가 들어올 리가 없지." 

정안 스님이 능금이를 쳐다보았습니다. 

 "혼자 있을 수 있지?" 

"어디 계신 줄도 모르는데, 꼭 가야 되겠어?"

능금이가 걱정스럽게 물었습니다.

 "시내 병원이라야 두 군데 밖에 없잖아?"

능금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갔다 올게."

능금이가 작은 손전등을 주었습니다.

 "조심해."

정안 스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급하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능금이는 정안 스님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