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조용하던 법당에 사람들이 몰렸다. 엄마손을 잡은 아이에서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사찰의 여느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붐비는 대중사이에 유난히 한 쌍의 남녀가 눈에 띄었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함박웃음을 짓고 명절도 아닌데 한복을 곱게 차려입었다.

“지안 거사와 원각수 보살의 결혼식이 진행되니 모두 법당 안으로 들어오세요.”

국화빵 찍어내듯 찍어내는 웨딩홀의 결혼식은 많이 볼 수 있다. TV속의 결혼식 장면도 교회나 성당에서 진행되고 사찰에서의 결혼식 장면은 찾기 힘들다. 그런데 사찰에서 열리는 결혼식이라니.

2월 14일 사간동 법련사(주지 보경) 대웅전에서 지안 거사와 원각수 보살의 결혼식이 열렸다.

법당 밖에서 웅성거리던 하객들이 결혼식의 시작을 알리는 방송을 듣고 법당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깔려 있는 좌복 위에 앉아 신랑 신부의 입장을 기다렸다.

주례법사를 맡은 보경 스님이 먼저 들어와 법석에 섰다. 이어 사회자가 신랑의 입장을 알렸다. 여느 때 같으면 어간은 출입하지 않는 것이 예의이나 신랑에게는 특별히 어간출입이 허락됐다. 신부도 마찬가지로 신부입장을 알리는 말에 신부도 뒤이어 들어왔다.

신랑 신부가 입장하자 하객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절에서의 결혼이라 결혼법회라는 말이 어울릴 듯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자 스님이 목탁을 두르려 삼귀의례를 봉행했다.

삼귀의례에 이어 주례법사 보경 스님이 고불의식을 진행했다.

보경 스님 고유문을 낭독해 두 사람의 결혼을 부처님께 알렸다.

고유문 낭독이 끝나자 신랑 신부는 선혜행자와 구리선녀가 그랬던 것처럼 7송이의 꽃을 부처님께 올렸다. 꽃 공양은 불교혼례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의식이다.

꽃공양을 마치자 보경 스님 “신랑은 신부를 맞아 서로 사랑하고 참고 이해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갈 것을 맹세합니까”라고 물었다.

신부에게도 묻자 신부는 수줍은 듯 하지만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맹세를 서약했다.

보경 스님은 “모든 불보살님의 증명하에서 청신사 지안 진모영과 청신녀 원각수 김혜경의 화혼이 원만히 이루어졌음”을 선언했다. 이로써 두 사람은 진정한 부부가 되었다.

남남에서 부부가 된 두 사람은 만해 한용운 스님의 ‘인연설’을 함께 낭독하며 앞으로의 성실한 결혼 생활을 발원했다.

보경 스님이 “이 세상에는 버릴 것이 없는데 중생들은 너무 잘하려고만 해서 문제가 발생한다”며 “부처님이 우리와 다름은 차별 없이 세상을 보는 것”이라고 주례법문을 했다. 이어 “부처님처럼 차별 없이 세상을 보도록 노력한다면 오래도록 행복한 결혼 생활을 영원히 이뤄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주례 뒤에는 보통 축가가 이어지지만 축가대신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며 박노해 시인이 ‘오늘처럼만 사랑하자’라는 축시를 낭송했다. 박노해 시인은 신랑신부와 함께 사단법인 나눔문화 활동을 하면서 알게됐다고 한다. 축시 낭송에 앞서 박노해 시인은 “두 사람은 모두 싸움에는 7단이 되어야한다”면서 “그러나 화해에는 9단이 되어서 싸움보다 화해를 더 잘해 행복한 부부가 되라”고 말했다.

박노해 시인의 축시낭송으로 결혼식이 끝났다. 시작에서처럼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과 다르다면 이제는 사홍서원을 한다는 것.

사홍서원을 끝으로 결혼법회가 끝났다. 들어 올 때는 따로 들어왔지만 부부가 된 지금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행진하며 법당을 나섰다.

하객들은 일제히 박수로 그들의 결혼을 축하했다. 조용하던 법당이 활기에 가득찬 시간이었다.

신랑 진모영 씨는 “대학생불교연합회 활동을 하며 만난 사이”라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결혼식은 절에서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절에서 결혼하는 부부들이 많지 않아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준비하는 일들이 힘들었다”고 토로한 진모영 씨는 “결혼식 준비를 도와준 도반들이 있어 무사히 마쳤다”며 친구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신부 김혜경 씨는 “절에서 결혼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불교가 생활 속에 함께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며 절에서의 결혼을 적극 추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