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가 앞을 분간하지 못할 만큼 거셌다. 신미는 잠시 주석하고 있던 진관사 산문을 나섰다. 말이 눈보라 때문에 눈을 잘 뜨지 못했다. 긴 속눈썹에 눈송이들이 벌떼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말은 미끄러운 내리막산길에서는 아예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말구종이 고삐를 잡아당기지만 앞발을 들어 올리며 버티었다. 할 수 없이 신미는 말구종에게 말을 진관사로 데리고 가 묶어두라고 일렀다. 눈보라치는 눈길이지만 인왕산 내불당까지는 그리 먼 길은 아니었다. 신미는 희우가 있는 내불당에 들러 쉬었다가 세종이 부르면 내전으로 갈 요량이었다.
폭설이 내린 데다 눈보라가 치고 있었으므로 한길인데도 인적은 뚝 끊어져 있었다. 눈보라는 상수리나무 언 잎들을 눈 쌓인 길에 흩뿌리곤 했다. 고목 가지에서 배고픈 까마귀 한 마리가 먹이를 찾는지 두리번거리다 음산한 소리로 까악, 까악 소리쳤다.
‘광풍(狂風)이로구나.’
신미는 눈썹과 수염에 얼어붙은 눈송이들을 떼어내며 중얼거렸다. 울부짖는 미친바람이었다. 눈발도 미친바람에 휩쓸려 창궐하듯 날뛰었다. 신미가 인왕산 내불당으로 돌아왔을 때에야 눈보라의 기세가 잦아들었다. 신미는 짚신을 벗느라 애를 먹었다. 짚신과 젖은 버선이 통째로 얼어버렸기 때문이었다. 희우가 놀라 쫓아 나왔다.
“대사님, 눈길에 혼자 오신 것입니까?”
“오늘 밤 전하를 뵙기로 했소. 조금 휴식을 취하다 내전으로 갈 것이오.”
“대사님 방에 불을 들이겠습니다.”
신미는 요사로 가지 않고 내불당으로 들어가 불상 앞에서 참배했다. 내불당을 경복궁에서 인왕산으로 크게 신축하여 옮긴 것은 세종이 ‘궁 안에서 성현들의 명복을 비는 불당이 제대로 선용되지 않아 선왕의 발원이 실추될까 두렵다.’며 발원했던 까닭이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훈민정음 창제 공표 이후 다섯째 광평대군과 일곱째 평원대군에 이어 정비 소헌왕후를 1년 터울로 잃어 그들을 추복하고 싶은 마음이 날로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작년 7월 28일에 시공하여 11월 20일에 회향하고 11월 28일부터 재계(齋戒)를 베풀었으며 12월 3일에 불상을 봉안하고 6일에 낙성식을 하였던 것이다.
신미는 삼배를 한 뒤 차가운 마룻바닥에 그대로 앉아 잠깐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내불당을 떠나 진관사로 간 까닭은 유생들의 질시가 컸기 때문이었다. 이제 유생들은 신미를 일러 간사하다 하여 간승(姦僧) 신미, 세종의 총애를 받는다 하여 총승(寵僧) 신미로 비아냥댔다. 세종이 불교로 기울어진 까닭은 오직 신미 탓이라고 비난했다. 조그만 내불당을 인왕산 산자락에 26칸으로 그 규모를 키워 옮긴 것도 신미의 주청을 세종이 들어주었다고 비난했다. 신미는 시비의 중심에서 영원히 떠날 것을 스스로 맹세했다.
돌이켜보니 자신이 이룩한 것들이 결코 적지 않았다. 세종과의 깊은 인연으로 훈민정음을 창제하는데 조력하였고, 왜국으로 갈 뻔했던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지켰고, 태조가 발원했던 흥국사 사리전을 중수하는데 일조했고, 궁중의 내불당을 인왕산 산자락에 대규모로 신축하도록 세종에게 조언했고, 세종이 우리나라 최초의 찬불가인 〈월인천강지곡〉을 짓도록 주청한 것이 복을 짓는 분명한 일들이었다.
“대사님, 방에 군불을 들였습니다.”
“보살, 잠깐 불당 안으로 들어오시오.”
신미가 희우를 불러 세웠다. 희우가 불당 문을 열자 사나운 바람소리가 들렸다. 다시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는지 눈송이들이 법당 문을 두드렸다. 희우가 무릎을 꿇고 신미 앞에 앉았다.
“보살, 이제 다시는 내가 내불당으로 돌아올 일은 없을 것이오.”
“대사님, 진관사에서 또 떠나시렵니까?”
“그렇소. 함허스님을 모셨던 현등사로 갔다가 복천사로 돌아갈 것이오.”
“대사님, 저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어디로 가소 싶소?”
“모르겠습니다. 대사님께서 저를 부르셨으니 제가 갈 곳도 알려주십시오.”
“속가로 돌아가시오.”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제가 설 자리가 속가에는 없습니다.”
신미는 잠시 침묵했다. 그렇다고 희우를 현등사나 복천사로 데리고 다닐 수도 없었다. 그것은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었다. 만나서 좋은 인연을 맺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헤어지는 것이 순리였다. 절에서 이성이 헤어지지 못하는 것은 애욕일 뿐이었다. 부처님은, 애욕이란 수승한 법을 태워버리는 불꽃과 같아서 모든 공덕을 없애버린다고 하였던 것이다.
신미는 내불당으로 찾아온 신빈김씨의 고백을 떠올렸다. 신빈김씨는 세종이 승하하면 궁을 떠난 뒤 양주 묘적사로 출가하여 남은 생 내내 세종의 왕생극락을 빌면서 살겠다고 말했던 것이다. 후궁이 출가한다고 하면 유신들은 왕실의 수치라며 반대하겠지만, 그녀는 세종이 외롭고 고단할 때마다 마음으로 의지했던 불사(佛舍)에 들어 비구니가 되겠다고 고백했던 것이다.
실타래 같은 크고 작은 인연을 끊으면 그만큼 번뇌의 불길은 사그라질 터였다. 그러나 차마 신미는 희우에게 출가를 권하지는 못했다.
“대사님 옆에서 시봉하고 싶습니다.”
“내 손발이 나를 시봉하는데 누구의 시봉을 받는단 말이오?”
“대사님을 시봉하면서 꿈을 이뤘다고 행복해 했습니다. 헌데 이제 대사님은 제 꿈을 깨뜨리시고 있습니다.”
“보살....”
“네.”
“출가하시오. 그것도 나를 시봉하는 길이오.”
희우가 대답을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 신미는 내불당을 나와 요사 큰방으로 갔다. 눈보라 가 목덜미로 파고들었다. 눈송이들이 침인 듯 목덜미를 따끔거리게 했다. 신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희우가 측은했지만 그것이 희우에게는 가장 행복한 길인 것이었다. 부처님은 갖가지 은애와 애정과 탐심과 음욕이 있어 생사에 윤회한다고 했던 것이다.
신미는 요사 큰방에서 잠시 좌선에 든 뒤 단전까지 내려온 흰 수염을 가지런히 매만졌다. 초로에 접어든 48세의 나이였지만 하얗게 변해버린 수염은 모진 바람에 부대낀 억새꽃 같았다. 방을 나온 신미는 바로 동별궁으로 향했다. 엊그제 진관사로 내시가 올라와 세종이 부른다는 명을 전했던 것이다. 내시는 임금의 근황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한겨울인데도 소윤(少尹) 정효강을 용문산 상원사로 보내 쾌유를 빌기 위해 구병수륙재를 베풀게 하였고, 〈불정심타난리(佛頂心陀難哩)〉를 찍어 내서 그곳 승려들이 독송하게 하였다는 소식이었다. 또한 미타관음(彌陀觀音) 등의 경문을 강희안과 성임(成任)에게 쓰게 한 뒤 도승지 이사철에게 발문을 짓게 하여 7일 동안 궐내에서 열람토록 지시했다는 얘기까지 했다. 이는 병이 더욱 깊어졌다는 반증이었다.
세종은 위독해지자 아예 동별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동별궁은 소헌왕후가 낳은 여덟 번째 즉 막내아들인 영응대군의 집이었다. 세종이 가장 사랑하면서도 안쓰러워한 대군이 바로 영응대군이었다. 신미는 내시의 안내를 받아 동별궁 침전으로 갔다. 젊은 영응대군이 침전 밖에서 신미를 맞았다.
“전하의 옥체는 어떠하십니까?”
“다행히 오늘은 조금 호전되셨습니다.”
신미는 침전에 들자마자 누워 있는 세종을 향해 엎드려 절을 했다. 세종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신미를 맞았다.
“전하, 신은 오직 기도할 뿐이옵니다.”
“과인은 얼마 남지 않았소. 왕생극락을 위해 기도해주시오.”
“전하께서 계시는 곳이 바로 극락이옵니다.”
“왜 그렇소?”
“전하께서는 생불이시기 때문이옵니다.”
“대사, 과인을 일으켜주시오.”
영응이 다급하게 만류했다.
“아바마마, 심신을 고정하시옵소서.”
“아니다. 대사는 과인의 스승이시니라.”
그제야 영응이 세종에게 다가가 부축했다. 숭유억불의 나라에서 승려가 임금의 침전에 든 일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유생들이 알면 조정이 발칵 뒤집힐 사건이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 세종 32년(1450) 1월 26일의 기사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는 것이다.
‘임금의 병환이 호전되고 있음에도 정근(精勤)을 파하지 않고 그대로 크게 불사를 일으켰다. 승 신미를 부른 뒤 침전 안으로 맞아들여 법문하게 했는데 높은 예절로써 예우하였다.’
이 기사에서 ‘정근을 파하지 않고 불사를 일으켰다’고 한 것은 용문산 상원사의 구병수륙재와 미타관음 등의 경문을 궐내에서 신하들에게 7일 동안 열람토록 한 세종의 명을 뜻함이었다.
신미는 내불당으로 돌아오면서 무상감에 한없이 가슴이 먹먹했다.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는 인간사가 허망했다. 영응은 세종의 병세가 호전됐다고 안도하지만 신미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촛불이 바람에 꺼지기 바로 직전에 가장 밝아지는 이치였다. 병세가 호전되고 있는 양 보이는 것은 몸 안의 모든 기운을 모아 마지막으로 소진하고 있음이었다.
‘차라리 전하 소식이 들리지 않는 먼 곳으로 떠나자.’
신미는 내불당으로 돌아와 바로 요사 큰방으로 갔다. 눈보라가 몰아치자 마룻바닥까지 눈송이들이 뒹굴었다. 방안은 희우가 군불을 지펴 따뜻한 온기가 돌았다. 하루 종일 몸을 움직여 몹시 피곤했지만 정신은 또렷했고 의식은 팽팽했다. 그때였다. 희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사님.”
“무슨 일이오?”
“대사님 말씀대로 출가하겠습니다.”
신미가 뜻밖의 희우 말에 놀라 방문을 열었다. 희우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합장하고 있었다. 희우의 얼굴과 어깨는 비장했다. 차갑고 아름다운 결기가 있었다. 이마를 덮은 희우의 머리카락이 미친 눈보라에 날렸다. 신미를 향한 그녀의 시선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아, 희우 보살이 나를 또 깨닫게 하는구나! 신미는 자신도 모르게 목이 멨다. 모든 것을 결연히 내려놓은 희우 모습에서 신미는 늘 잊지 않으려고 했던 출가자로서의 초심(初心)을 보았던 것이다.
“보살, 신빈마마를 따라 묘적사로 가시오.”
“묘적사는 고향 땅에 있는 절이옵니다.”
“무슨 상관이 있겠소. 자애로운 신빈마마와 도반으로 사는 일도 복된 일이오.”
신미의 예감은 그대로 적중했다. 세종은 아들과 딸, 신빈김씨의 간병에도 불구하고 신미가 문병한 지 1달 20여 일 만에 세종은 54세의 나이로 승하했다. 그 사이에 세종은 신미를 다시 부르지 못했다. 신미에게 ‘선교종도총섭(禪敎宗都摠攝) 밀전정법(密傳正法) 비지쌍운(悲智雙運) 우국이세(祐國利世) 원융무애(圓融無碍) 혜각존자(慧覺尊者)’라는 왕사와 같은 승직(僧職)을 주고 싶었지만 병이 깊어져 부르지 못했던 것이다. 세종이 신미에게 하사하고 싶었던 심중의 말은 우국이세(祐國利世)였다. 우국이세란 ‘국왕을 도와 세상을 이롭게 했다’는 뜻이었다. 신미를 존경했던 세종의 마음을 아는 이는 소헌왕후와 신빈김씨, 세자와 수양, 안평, 정의공주, 김수온 등뿐이었다. 세종은 숨을 거두기 전에 숨겨진 진실을 고백하고 싶었던 것이다. 세종이 신미에게 주려 했던 우국이세의 실체는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것은 훈민정음 창제였다.
신빈김씨와 희우는 양주 묘적사로 출가했고, 신미는 가평 현등사로 가 머물다가 속리산 복천사로 내려가 은둔했다. 그리고 문종은 선왕인 세종의 유언을 따랐다. 마침내 신미에게 세종이 주려 했던 호(號)를 내렸다. 사호(賜號)를 준 이때의 일이 〈조선왕조실록〉 문종 즉위년(1451) 7월 6일의 기사에 나와 있는 것이다.
‘문종은 등극 이후 처음으로 인사를 단행했다. 승(僧) 신미를 선교종도총섭(禪敎宗都摠攝) 밀전정법(密傳正法) 비지쌍운(悲智雙運) 우국이세(祐國利世) 원융무애(圓融無碍) 혜각존자(慧覺尊者)로 삼고, 임금이 사용하는 종이에 교지를 써서 붉은 비단보에 담아 사람을 보내어 주었는데, 우리나라의 시조 이래로 일찍이 이러한 승직은 없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