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말 6‧25전쟁이 끝난 뒤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자유당의 독재와 불교적으로는 비구 대처간 대립이 일어났으며 경제적으로는 보릿고개에 국민들은 하루하루 목숨을 연명하기도 힘든 시기였다.

이렇게 힘든 시기에 한손엔 감로수병을 한손엔 호미를 들고 중생의 고통과 허기짐을 달래기 위해 관세음보살이 홀연히 나타났다.

정토원 선진규 원장을 비롯해 당시 학생이었던 청년 불자들이 1959년 관세음보살상을 직접 등에 짊어지고 봉화산 정상에 봉안한 것이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2009년 호미든 관음성상 봉안 5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호미든 관음성상의 현대적 의의와 불교적 노동의 가치관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호미 든 관음성상 봉안 50주년 기념세미나 준비위원회(위원장 손안식, 권오현)가 3월 20일 불교방송 대법당에서 기념세미나를 개최했다.

원각불교사상연구원장 권기종 교수는 ‘노동과 생산에 대한 불교적 관점’에 대해 발표했다.

권기종 교수는 “근본불교의 노동관은 출가와 재가를 엄격히 구분했다”며 “출가자는 어떠한 생산적 노동도 허락되지 않았으나 재가자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생산적 노동을 권장했다”고 밝혔다. 이어 권기종 교수는 “승단에서는 생산적 노동이 금지됐지만 대승불교가 일어나면서 보살들이 대승불교의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부각됨에 따라 대승보살의 삶에 노동이 수용됐다”고 설명했다.

권기종 교수는 또 “보살은 출가와 재가의 구별도 없고 남자, 여자의 구분도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대승불교에서 출재가의 구분이 없어졌기 때문에 중국이나 한국불교에서 난처한 일이 발생했다”고 지적한 권기종 교수는 “교의는 대승불교를 수용했지만 규범은 소승의 계본인 사분율이나 오분율 등을 채용해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6바라밀 중 보시는 보살의 수행덕목이지만 출가자는 보시를 받는 사람이며 보시는 오직 재가자의 수행덕목이 되는 경우 등이다.

권기종 교수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선가禪家에서는 청규 등 새로운 규율을 만들어 생산과 노동이 가능하도록 했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호미든 관음상 봉안은 노동과 생산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 대승보살의 삶을 실천하자는 20세기의 새로운 불교운동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권기종 교수는 또 “문수보살이나 보현보살,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등 대승보살들이 중생구제의 서원으로 이타의 보살행을 실천하지만 노동과 생산을 통한 중생구제는 착안되지 않았다”며 “20세기 중반 사원의 경제적 자립과 국민들의 빈곤탈피가 최우선 과제로 떠오른 한국불교에서 호미든 관음상을 봉안하고 노동과 생산을 통한 불교발전과 민중개도에 앞장선 것은 크게 주목해야할 일”이라고 밝혔다.

동국대 불교학과 이봉춘 교수는 ‘봉화산 오미 든 관음상의 불교사적 의의’에 대해 발표했다.

이봉춘 교수는 “불교의 다양한 신앙 중 관음신앙은 대중적이고 보편화된 신앙형태로 자리 잡았다”며 “관음보살의 원력에 의지하는 의존적 형태와 관음의 자비행을 본받아 실천하는 능동적인 노력도 함께 이어졌다”고 말했다.

“지혜와 자비의 길을 추구하고 완성하는 것이 불교의 본질이라고 할 때 능동적인 관음신앙이 본질에 부합하지만 그러한 예는 찾기 힘들었다”고 지적한 이봉춘 교수는 “호미든 관음성상에서 능동적인 관음신앙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봉춘 교수는 “호미든 관음성상을 봉안한 청년불교학생들은 불교정신에 기반을 두어 농민운동의 목표와 과제로 심신‧사회‧경제‧사상 네 분야의 개발을 설정했다”며 “이 같은 모습은 불교정신과 농민운동의 결합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년불교학생들이 새불교‧새농민 운동의 상징을 관음상으로 정한 것은 무엇보다도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보살의 대비교화와 친근한 대중성에 있었다”고 한 이봉춘 교수는 “능동적인 관음신앙의 표상으로 호미를 들고 있는 관세음보살을 형상화 했다”고 말했다.

이봉춘 교수는 “호미든 관음상이 봉안 당시 가졌던 불교‧농민 운동의 의미는 계속 되고 있다”며 “농촌사회에서 도시사회로, 농업사화에서 정보화산업사회로 변모한 현대 모습에 맞는 불교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밖에도 동국대학교 윤리문화학과 정병조 교수가 ‘실천불교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발표했으며 권오현 전 불교방송 전무, 동국대 불교학과 고영섭 교수, 불교문학 장봉호 편집장, 동국대부속여중 김형중 교법사가 참여하는 토론이 진행됐다.

이날 기념 세미나에는 조계종 포교원장 혜총 스님, 민주당 최문순 의원, 정토원 선진규 원장, 임장수 교정인불자연합회장 및 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했다.

한편 준비위원회는 4월 5일 봉화산 정토원에서 ‘호미 든 관음성상’ 봉안 기념법회를 봉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