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린 청호 스님과 숱한 사람이 죽어가는 데에도 모른 척하고 있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 180도 다른 인간의 모습이다. 현실의 죄인이고 앞으로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될 박근혜와 함께 그분의 법호를 거론하는 자체가 고인에게 누(累)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사실(事實 ‧ 史實)이 이러한데도, 박근혜를 탄핵하면 안 된다고 우기는 이들이 있으니, 이러다가 ‘박근혜송덕비’를 세우자는 사람까지 나오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 이병두 칼럼 ■ <종교평화연구원장, 종교 칼럼니스트>  

이야기 하나: ‘을축년 대홍수와 청호 스님’

서울 강남구 봉은사 부도 밭에는 ‘나청호 대선사 수해구제 공덕비(羅晴湖大禪師 水害救濟功德碑)’라는 작은 비석이 하나 있는데, 다른 부도비들에 비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하고 있다.

이 비석의 건립 경위는 다음과 같다.

1925년 을축년 7월 8일부터 장마가 시작되어 19일에 그쳤는데, 특히 16일과 17일에 집중호우가 내렸다. 따라서 한강의 수위가 12.72m를 돌파하여 용산제방이 모두 붕괴되고 강남 지역이 침수되었다. 현재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 약 1,000호 4,000명의 주민이 모두 지붕위에 올라 대피하였으나 급기야 집까지 물에 잠겼다. 이때 현재 잠실 5단지 가장 높은 대지에 있던 큰 느티나무 두 그루에 700여 명이 올라가 대피하여 구조해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봉은사 주지 청호 스님이 뱃사람을 수소문하여 구조에 나서자고 독려하였지만, 누구도 나서는 사람이 없자 “사람을 구조해 오는 사람은 후한 상금을 주겠다”고 선언하고 뱃사람을 움직여 같이 배를 타고 신천리(현 송파구 신천동)까지 가서 노약자와 어린이부터 차례로 배로 옮겨 봉은사로 돌아왔다.

그때 구제된 사람들 중에 선리[지금 하남시 선동]에 거주하던 이준식(李俊植)이란 인물이 훗날 수해구제공덕비를 세우는 지역대표의 한 사람이 되었다. 일단 708명을 무사히 구조하여 배가 떠나자 얼마 후에 느티나무 한 그루가 뿌리 채 뽑혀 거친 물살에 떠내려갔다. 한 그루는 남아 있다가 1970년대 잠실개발로 없어졌다.

이러한 청호 스님의 공덕을 기록한 『불괴비첩(不壞碑帖)』이 1926년에 편찬되고 1929년 7월에 광주 수해 이재민 대표 이준식 ‧ 허훈 · 이주원 ‧ 김성득 ‧ 김순기 등이 발기하여 ‘나청호 대선사 수해구제 공덕비’가 건립되었다. 비문은 퇴경(退耕) 권상로(權相老)가 짓고, 성당(惺堂) 김돈희(金敦熙)가 글씨를 썼다. 이재민 구제공로자로 봉은사 스님들 법명이 새겨져 있고, 청호 스님의 수해구제 송덕 요지가 새겨져 있는데, “을축년 7월 홍수로 선리 · 부리 · 잠실의 뽕나무밭이 큰물에 잠기고, 708인이 다급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목숨을 구해 달라 외쳤다. 나청호 대선사가 자비로움으로 이를 구제하니, 그 덕을 잊을 수가 없구나(乙丑七月 洪水懷襄 船浮蠶室 變桑而滄 七百八人 呼號蒼黃 我師慈濟 德不可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청호(晴湖, 1875~1934; 입적 연도가 1936으로 나온 자료도 있으나 《봉은사지》에 표기한 대로 따른다)스님은 서울 강남 봉은사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분이다. 열두 살에 강원도 양양 명주사로 출가하기 전 속가의 성은 나(羅)씨이고, 출가 뒤 법명은 학밀(學密)이며 청호는 법호이다.

스물세 살에 구족계를 받고, 스물네 살(1898)부터 학승으로 명성이 널리 퍼져서 전국에서 학인들이 몰려들었다고 전한다. 그 뒤 10년 동안 오대산에서 후학 교육에 온 힘을 쏟다가 서울로 와서 ‘조선불교원종 총무원’의 감사부장을 맡고 새로 창건된 각황사에서 도심 포교에 적극 나서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스님의 능력과 인품을 알아본 봉은사 판사 이보인(李普仁)의 초빙으로 1912년 가을에 봉은사 주지 소임을 맡은 이래 입적에 이를 때까지 23년을 봉은사에 주석하면서 을축년 대홍수 때의 공덕뿐 아니라 봉은사를 중흥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당시 봉은사는 행정구역 상 경기도 광주군에 속하였고 30본산 중에서 경기 동남부 지역을 통할하는 ‘갑찰(甲刹) 대본사’라는 평가를 받는 절이었지만, 전각도 부실하고 사찰 재정도 힘들었다. 이에 스님은 절 부근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20만 평에 이르는 전답을 만들었고 경내의 전각을 중수하여 오늘날 봉은사의 사격을 갖추는 단단한 주춧돌을 놓았던 것이다.

이야기 둘: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

3년 전인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학생 수백 명을 비롯한 수많은 승객과 화물을 싣고 가던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였다.

이 엄청난 참사(慘事)를 당한 대한민국의 정부는 당시 대통령 박근혜부터 현장에 출동한 해양경찰청 구조함에 이르기까지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일곱(7) 시간 동안 참사 상황을 제대로 파악도 하지 못하고 있었고, 현장에 출동한 해경대원 중에 단 한 명도 기울어져 가는 배 안으로 들어가 “밖으로 나가야 한다”며 구조에 나선 사람이 없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주변에서 어로 작업 중이던 어선이 펼치는 구조 작업을 방해하였다는 증언까지 나오고 있으니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이게 나라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게 정부가 앞장선 것이다. (화재로 붕괴 위험에 놓인 빌딩 안으로 소방관이 들어가 인명을 구조해내는 외국 영화의 한 장면에서처럼, 어떻게 해경대원 중 단 한 명도 그런 의인義人이 없었단 말인가?)

게다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대통령은 머리 손질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고,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 중에서 단 한 인물도 대통령에게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보고한 이가 없었다고 하니 이러다가 휴전선에서 돌발 상황이 생길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할지 눈앞이 캄캄하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 놓고서도, 대통령이란 사람과 그 주변 인물들은 ‘여성의 사생활’ 운운하며 책임 회피에만 나섰고,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요구하거나 ‘세월호 추모’를 거론하는 이들은 블랙리스트에 포함시키고 심지어 ‘종북 용공(從北容共)’으로 몰아가기까지 했다.

이야기 셋: ‘청호 스님과 박근혜’

1925년 여름 청호 스님은 홍수를 당한 지역 주민들을 살리려고 어려운 형편이었던 사찰 재정을 털어 뱃사공들을 설득하고 자신이 직접 배를 타고 가서 700명이 넘는 사람들을 구해냈다. 이 공덕을 잊지 못한 지역 주민들과 당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스님을 잊지 못하고, 그분의 의로운 행동[善業]을 기리는 시화(詩畫)를 보내오고 공덕비를 세우는 일이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2014년 4월 당시 대통령 박근혜는 수백 명의 인명이 물에 잠기는 순간에 머리 손질을 하느라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엄두도 내지 않았고, 국무총리와 장관 ‧ 비서실장 ‧ 해경청장 등도 아무 역할 하지 않고 대통령 눈치만 보고 있었으니, 수많은 이들이 박근혜 표현법대로 “이런 정부를 믿고 살아온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에 자괴감(自愧感)이 든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을 살린 청호 스님과 숱한 사람이 죽어가는 데에도 모른 척하고 있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 180도 다른 인간의 모습이다. 현실의 죄인이고 앞으로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될 박근혜와 함께 그분의 법호를 거론하는 자체가 고인에게 누(累)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사실(事實 ‧ 史實)이 이러한데도, 박근혜를 탄핵하면 안 된다고 우기는 이들이 있으니, 이러다가 ‘박근혜송덕비’를 세우자는 사람까지 나오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 네이버 블로그 <香山의 세상이야기 - 葉落糞本>에 실린 글로 필자의 동의를 얻어 <미디어붓다>에도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