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예산실을 제대로 조사하면 이번 국정 농단 사태의 70~80%는 밝혀지리라고 본다. 특검이 이 점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믿고 있으면서도 노파심에서 당부한다. (...) 기재부가 면책 특권을 가진 곳은 아니지 않은가."

필자

■ 이병두 칼럼 ■ <종교평화연구원장, 종교 칼럼니스트>     

지난 몇 달 동안 ‘박근혜-김기춘-최순실-차은택’의 국정 농단 사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국회에서 탄핵된 박근혜는 이제 와서 “나는 아무 잘못도 없다”고 우기며 지지자들에게 “나를 도와 달라. 분연히 일어나 내 반대파들과 맞서 싸워 달라! ……”고 부추기고 있다. 김기춘도 “모릅니다”는 말 한 마디로 모든 것을 감추고 있고, 최순실은 특검의 출석 요구까지 거부하면서 심지어 ‘강압 수사’라며 억지를 부리고 있다. 여기까지는 온 국민이 알고 있는 대로이다.
  
정부의 여러 부처 가운데 이번 사태로 가장 자주 언론에 등장하고 가장 크게 상처를 입은 곳이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일 것이다. 전‧현직 장관 두 사람과 전직 차관 둘이 이미 구속되었고, 숱한 직원들이 검찰 특별수사본부와 특검의 조사를 받았을 뿐 아니라 본부와 서울 사무소에 대한 압수 수색까지 당했다. 앞으로 또 언제 누가 특검에 소환되고 구속될지 예측할 수 없어서 그야말로 백리무중(百里霧中)에 갇혀 있다. 중앙정부 부처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그래서 능욕(凌辱)에 가까운 오욕(汚辱)을 뒤집어쓴 것이다.
  
문체부 구성원들이라고 해서 할 말이 없을까? ‘최순실-차은택’에 놀아난 장차관과 그들에게 적극 부역한 일부 간부들 때문에 한꺼번에 욕을 얻어먹고 있는 하급 직원들의 억울한 심정은 얼마나 클까? 그러나 지금은 아무리 입이 열 개, 아니 백 개라도 뭐라 변명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게 관운(官運)인가보다. ……”하면서 삼삼오오 모여 소주잔을 기울이는 일만 많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최순실-차은택’이가 농단을 하면서 끼워 넣은 사업 예산이 주로 문체부였고 그 다음으로 미래창조과학부(미창과부)였지만, 특검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들은 이 두 부처뿐 아니라 외교부 등 곳곳에 그야말로 마수(魔手)를 뻗쳤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구조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문체부 ‧ 미창과부 장차관의 힘만으로 천억 원이 넘는 예산을 책정하여 기획재정부(기재부) 심사를 거쳐 국회 예결위와 본회의 의결을 통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검찰과 특검이 기재부 쪽을 조사 ‧ 수사하고 있다는 소식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단 몇 억 원의 예산을 증액시키려고 해도 각 부처 공무원들이 기재부 예산실에 가서 몇 차례 설명을 하고 심지어 아부까지 하는 것이 우리나라 예산 구조였는데, ‘최-차’를 위해 천억 원이 넘는 예산을 배정하면서 그냥 통과시켜 주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기재부 장차관부터 예산실장, 그리고 담당 과장에 이르기까지 ‘최-차’ 예산 책정 라인에 있던 사람들의 무책임과 직무유기를 꼼꼼하게 따져봐야 하지 않는가. 나라의 곳간인 국고(國庫)를 책임지고 있는 기재부에서는 문체부와 미창과부에서 막지 못한 ‘최-차’의 예산을 막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검찰과 특검이 왜 이들의 직무유기를 모른 체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흔히 정부든 기업이든 “돈의 흐름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한다. 그러므로 기재부 예산실을 제대로 조사하면 이번 국정 농단 사태의 70~80%는 밝혀지리라고 본다. 특검이 이 점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믿고 있으면서도 노파심에서 당부한다. 문체부를 조사했듯이 기재부 예산실을 꼼꼼하게 조사하라! 기재부가 면책 특권을 가진 곳은 아니지 않은가.

* 네이버 블로그 <香山의 세상이야기 - 葉落糞本>에 실린 글로 필자의 동의를 얻어 <미디어붓다>에도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