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두 칼럼 ■ <종교평화연구원장, 종교 칼럼니스트>
전제 왕조가 무너진 지 한 세기가 지난 지도 한참 된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 무녀巫女가 국정을 제멋대로 주물러 온 상황이 드러나 집권 세력은 무기력증을 넘어 ‘정신이 붕괴된 상황’에 빠져 있다. 심지어는 대통령의 최측근이라고 여겼던 사람들까지도 상황이 이 정도일 줄은 모르고 있었던 것 같은 정황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근대 왕조 시대에는 국가 차원의 최고 종교 자문관 제도를 두었다. 아니 인류 역사에 전제 왕정이 성립되기 훨씬 이전 부족장이 작은 범위를 다스리던 시절에도 부족장은 종교 지도자 역할을 겸하던가[神政일치], ‘스승’으로 모시는 무당이나 복사卜師를 두어 통치 과정의 어려움을 상의하곤 하였다.
아시아의 불교 국가에는 국사國師 또는 왕사王師 제도가 있었고, 이슬람 국가에도 이와 비슷한 제도가 있었으며 유럽의 가톨릭과 정교회正敎會 국가에서는 수도에 위치한 대주교가 그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
전제 왕조가 무너진 지 한 세기가 지난 지도 한참 된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 무녀巫女가 국정을 제멋대로 주물러 온 상황이 드러나 집권 세력은 무기력증을 넘어 ‘정신이 붕괴된 상황’에 빠져 있다. 심지어는 대통령의 최측근이라고 여겼던 사람들까지도 상황이 이 정도일 줄은 모르고 있었던 것 같은 정황이다.
누가 알았겠는가? 박대통령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일지라도, 설사 무녀가 대통령의 모든 것을 조종하였으며, ‘남북한 비밀 군사 접촉’과 같은 극비極祕 국가 기밀까지 그에게 전달되었을 줄을 어찌 알았겠는가. 대통령이 참석해야 할 자리에 맞추어 ‘옷’의 색깔과 디자인까지 구체적으로 지시(이런 경우는 그냥 도움을 주는 정도의 조언助言이라고 하면 안 된다)하는 무녀가 있었으리라고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 무녀에게 줄을 댄 사람들이 장관도 되고 차관이 되며, 심지어 청와대 핵심 참모 인사에까지 그 힘을 미칠 수 있었으리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 임오군란壬午軍亂을 맞아 간신히 목숨을 건져 도망쳤던 민비閔妃(고종의 왕비. 침략국 일본의 공작으로 훗날 허울뿐인 명성황후라는 칭호를 받은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결코 동의할 수 없다.)와 관계를 맺어 진령군이라는 칭호를 받고 판서와 참판 임명에도 관여했었다는 무당 이씨가 활개치던 1890년대가 아니라, 세계 10위 권 경제대국에 들어간 지 오래 되었다고 자랑하고 “문화를 융성시키고 국민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대통령이 즉위한 지 4년이 즉위한 지 4년이 가까워지는 2016년 오늘 이 순간 벌어지는 일이다.
힘이 다 빠진 대통령은, 자신에게 아직도 힘이 남아 있는 줄로 착각하고 자신의 임기 중에 개헌을 마무리하겠다고, 그래서 자기 지분을 확보해놓겠다고 선언했는데 바로 그날 오랜 동안 “그랬다더라. ~카더라” 수준에 머물러 있던 소문이 사실임이 밝혀지고 무녀巫女의 실체가 환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지지해오던 사람들의 충격은 더욱 컸을 것이다. “설마 그럴 리가?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 하였지만, 드러나는 사실이 갈수록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확인되면서 이제 분노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걱정이다. 대학가에서부터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성명이 나오기 시작했고, 아마 보수적인 군軍에서도 우국충정憂國衷情에서 “이대로 보고 있어야 하느냐?”며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귀에서 귀로 전해지고 있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수많은 사람이 밥을 굶던 시절에도 우리 국민들은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이다”고 자부심을 가졌다. 서슬 퍼런 박정희 독재정권과 전두환 시절에도 그래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데에 대한 자부심은 여전히 간직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녀巫女가 국정을 제 마음대로 주무르고, 대통령이라는 인물은 그것에 마냥 끌려 다니며 헤매고 있는 이 꼴을 보면서도 자부심을 계속 가질 수 있을까?
이제 더 이상 다른 길이 없을 것이다. 정치인들 스스로 해결을 하리라고는 결코 기대할 수 없다. 무녀에게 휘둘려 온 나라를 망가뜨린 대통령에게, 이성적으로는 그러고 싶어도 더 이상 대통령이라고 부를 수가 없다. 이제 당분간은 창피해서 해외여행은 물론이고 외국 친구들과의 교류도 못할 것 같다.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꽃피기를 바라기보다는 차라리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이 쉽다”고 했던 윈스턴 처칠의 오만을 꺾어주었던 1960년 4월 19일의 혁명과 1987년의 시민혁명만을 내세우며 억지로 자부심을 드러낼 수도 없다. 이제 또 다시 혁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분은 “혁명革命이 성불成佛”이라고 한다. 맞는 말씀이다. 그와 똑같이 “혁명은 하느님나라 구현”이라는 말씀도 맞다. 이 땅의 불교인 ‧ 기독인들은 함께 진짜 혁명으로 ‘성불’과 ‘하느님나라 구현’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그 혁명의 첫 발걸음은 정의正義를 위해 ‘차분하게 분노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혁명이 절실하다는 돈오頓悟가 되었으면 이제 차근차근 착오 없이 혁명을 성취하는 점수漸修의 지혜와 전략을 세워나가야 한다. 이 흐름에 슬쩍 끼어들어 그 과실果實을 집어 먹으려는 엉터리들을 가려내는 방법도 잘 찾아야 한다.(4.19 혁명 후 이 점에 실패한 교훈이 있다.)
* 나는 솔직히 여기까지밖에 할 수 없다. 더 이상 대안을 제시하기에는 내 배움과 경륜이 부족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네이버 블로그 <香山의 세상이야기 - 葉落糞本>에 실린 글로 필자의 동의를 얻어 <미디어붓다>에도 게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