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제119조 제2항이다. 이 조항의 의미는 자본주의와 시장의 자동 조절기능은 유지하면서도 근로자나 저소득계층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해 갈 수 있도록 보장하고 정부가 소득의 재분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이며, 투자와 관련하여 개입하고, 실업자의 구제 및 완전 고용 등 국민의 삶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다. 즉, 사회국가(社會國家)라는 의미로써 정부는 헌법에 의거해서 국가정책으로 국민이 균등하게 교육을 받고 적정한 수입을 위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 제31조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하고 있다. 또 같은 법 제32조는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헌법 제34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라 규정하고 있다.

국가는 노력과 능력 여하에 따라 누구라도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도록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교육제도를 시행해야 하고,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침해해서 자영업 등 영세업자들이 생활의 기반을 잃거나 지역사회 공동체가 파괴는 일이 없도록 해줘야 하며, 어느 정도 능력이 구족돼 있으면 적절한 조건으로 취업이 가능하도록 경제고용정책을 사회에 정착해 나가야 한다. 우리 헌법은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를 잘 규정하고 있는 바, 정부는 이 헌법에 근거해서 정책을 펴야 한다.

근래 헬조선(hell 朝鮮)이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대한민국이 지옥이라는 의미다. 청년실업, 전세난, 감소할 줄 모르는 자살률, 노동문제, 족속살해 등 강력범죄의 발생, 외모지상주의, 차별과 불평등, 각종 성범죄의 만연, 지도층의 자녀취업 청탁 등 윤리와 상식의 지체현상이 두드러지는데 정치는 희망과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는 데서 오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 온갖 병리현상을 함축한 단어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사회가 오늘날 이 지경이 되어버린 데 대한 원인과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앞서 헌법의 조항을 언급하였듯이 그 일차적이고 궁극적인 책임은 국가와 정부에 있다. 정부가 국민에게 교육과 근로의 기회를 부여하고 그 권리를 보장하며 적정한 복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멍석을 깔아줘야 한다.

분명코 부처님의 가르침인 동체대비사상에 의거하여서도 타자의 괴로움을 외면해서는 안 되며, 불교는 지체가 높거나 부유층부터 지극한 마음으로 사회에 공헌하고 베풀도록 가르침을 펴야 한다. 출가 승려가 진리를 추구하며 존재하는 이유는 자신 혼자 마음 편안하게 잘 살기 위해서가 결코 아니다. 그 깨달음의 힘, 혹은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가짐으로 중생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그 고통을 없애고자 노력하며 고난으로 가득한 삶의 현장에 함께 하기 위해서다. 이 이치를 안다면 출가 승려는 국가를 경영하는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이 온전히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도록 끊임없이 경책해야 하고 부유층에 대해서는 늘 성찰하고 나누는 자세를 잃지 않도록 지도해야 한다. 사람과 더불어 사람 아닌 존재들까지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가도록 일깨우고 힘을 불어 넣어줘야 한다. 그것이 불교다.

국민의 기본권적인 문제에 대해 전적으로 나의 업이고 나만의 문제다,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헬조선이든 천국조선이든 일체유심조이기에 이를 참구나 하면 된다, 라는 식은 불교와 거리가 멀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생계가 어려워 절망과 고통의 임계점에서 가족을 살해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 달이 멀다하고 들려온다. 우리가 쉽게 ‘동반자살’이라고 부르는, 그 어미 아비의 마음 한 자락이라도 헤아린다면 결코 들이댈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물론 힘들고 지친 마음을 다스리고 여유를 찾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근본적인 해결의 추구가 아니다. 세상사는 매일 매일이 생존의 전선이다.

얼마전 <BTN>뉴스에 현각 스님이 조계사에서 ‘헬조선과 선’을 주제로 특별법문을 한 내용이 보도 되었다. <BTN>홈페이지에 현각 스님의 법문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서 그대로 옮긴다.

“('헬조선'은)특별한 한국문제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어떤 구조적인 문제이지만 기본적으로 젊은 사람들은 그 의심을 깊이 느껴야하는 의심뿐입니다. ‘대의심’.”

“'일체유심조'. 우리의 생각이 온 세상을 만든다. 우리가 온 만물이 생각을 통해서 만들어요. 그래서 '헬조선'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환경이 아닙니다.” 

“'돈오점수 돈오돈수' 그런 개념으로 불교 이해하고 논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직접 공부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오로지 우리 삶에서 정기적으로 할 수도 있고 가끔 어떤 지도자를 통해서 확인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정치인이나 부모님, 교수님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일체 당신의 노력에 따라서 '헬조선'을 만드는지 아니면 '천국조선'을 만드는지 잘 선택하시길 부탁하겠습니다.”

위 법문을 읽으며 착잡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 현각 스님은 일껏 ‘헬조선’이 구조적인 문제라 언급해 놓고 결국 ‘대의심’을 말하고 ‘일체유심조’를 말하고 있었다.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목하게 되는 것은 “당신의 노력에 따라서 '헬조선'을 만드는지 아니면 '천국조선'을 만드는지 잘 선택하시길 부탁하겠습니다.” 라는 대목이다. 당장 생계를 걱정하는 수많은 가장에게, 혹은 제대로 보살펴 줄 가족도 없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릴까 염려가 된다. 분명 법문은 국가나 정부의 존재 이유를 외면하고 서로 돕고 베푸는 보살행의 개념을 무력화 하고 있다.

아침과 저녁으로 예불하며 염하는 “자타일시성불도”의 진실한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는 곱씹어 보아야 한다. 모든 중생이 평화로운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고선 ‘자타일시성불도’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억울함과 고통으로 요동치는 한 명의 중생이 남아 있는데 아흔아홉 명의 보살이 어찌 부처의 지위를 성취하겠다고 돌아서겠는가. 마지막 한 중생이 남아 있는 한 성불하지 않겠다는 어마어마한 맹서를 하는 것이 대승의 보살이다. 그 한 명의 중생이 고통 받을 수밖에 없는 세계의 구조를 끊임없이 살피고 다시 구축해야 한다. 하물며 한 명의 부와 쾌락을 위해 아흔아홉이 고통을 겪는 이 신자유주의적 세계의 현실에서랴!

지난 2월 22일 교육원장 현응 스님은 조계사 동안거 해제 법문을 통해 “지혜가 탐욕으로부터의 자유라면, 자비는 현실 속에 자유가 가장 잘 구현된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우리는 물론 현 한국 사회가 새겨들어야 하는 내용이다. 불교는 세상 사회를 하나의 체(體)로 보며 공동의 책임(업)으로 본다. 헬조선에 대한 일차 책임과 해결의 길은 권력과 지도층, 가진 자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올바르고 지혜로운 정책과 보살심(행)을 심어주는 일이며, 사회적 흐름과 틀을 바꾸려는 실천에 달렸다.

조계종의 승려라면 헬조선의 사회적 원인, 사회를 주도하는 자들의 문제를 지적하고 만인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다 같이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자고 하는 것이 법문으로써 마땅할 것이다. 한국의 정치권과 재벌을 향해, 세계경제를 좌지우지 하는 강대국 지도자들을 향해 일대 할은 못하더라도 말이다.

法應(불교사회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