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전 비상종단은 결코 성공작이 아니지만 개혁 정신이 조계종의 생기로서 흡수되어 있기 때문에 실패작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같은 주장은 2월 25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비상종단 개혁종책 연구모임'(회장 이희선) 주최 비상종단 개혁종책 재조명 세미나에서 제기됐다.

정승석 동국대 대학원장은(사진) 이날 '비상종단의 의미와 한계'란 주제 발표를 통해 "1962년 3월 25일 통합종단이 선포된 이래 대한불교조계종을 공식적으로 탄생시킨 것도 불교재건 비상 종회였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비상종단운영회의는 1983년 발생한 ‘신흥사 승려 살인사건’을 계기로 당시 황진경 총무원장과 서의현 종회의장 체제에 반대하며 불교 개혁을 추진하려는 스님들이 조계사 전국승려대회를 열면서 9월 공식 출범했다. 이후 약 1년 간 본사말사제 폐지와 사찰 재산관리기구 신설 등을 주창하며 운영됐다.

그는 이 같은 비상종단이 개혁의지의 조급성과 경험 미숙 등의 한계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불교계에 부여한 의미는 크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비상종단은 이내 해체됐지만 종단 내부의 개혁이란 과제를 출가와 재가의 연합으로 해결하고자 했을 뿐만 아니라 불교 개혁에 재가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고자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비상종단의 개혁안은 △정법종단의 구현 △불교자주화의 실현 △종단 운영의 민주화 △청정교단의 구현 △불교의 사회역할 확대 등을 담고 있다.

이 같은 개혁안은 종단의 분규를 해소하는 근본적 해결책으로 현 종단이 암묵적으로 계승하고 있고, 향후에도 상당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정 교수의 평가다.
 
그는 "당시의 개혁의 정신을 미래에 대한 기대로 일반화해 유지시킬 수 있기에 성공한 것으로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라면서 비상종단으로부터 비롯된 개혁정신으로 불교의 미래를 기대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 앞서 비상종단 당시 운영회의 사무국장이던 연구모임 고문 성문 스님(조계종 중앙종회의장)도 인사말을 통해 "비상종단은 해방 후 처음으로 승가와 재가가 함께 고민하고 뜻을 모아 불교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끄는 노력이 있었던, 한국불교현대사의 전무후무한 혁신적 조치"라고 소개했다. 이어 "오늘 세미나가 33년 전 사부대중의 고민 속에 마련된 개혁안을 되살펴 향후 한국불교의 미래를 바람직하게 정립할 수 있도록 고민하는 단초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도 교육원장 현응 스님이 대독한 격려사를 통해 "33년 전 비상종단의 각종 불교개혁방안들은 지금도 우리 종단의 미래 개혁을 위한 중요한 지표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이어 "세미나와 자료집 발간을 통해 재조명하는 노력들은 향후 종단의 백년대계를 이뤄가는 데 알찬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이날 비상종단종책연구회는 세미나 자료를 비롯해 비상종단 개혁안과 종헌안, 신문 스크랩 자료 등을 수록한 자료집 〈대한불교조계종 1983 비상종단 기억과 평가〉를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