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원하지도 섭섭하지도 않습니다. 구름이 갈 때 어디로 간다고 얘기하지 않고, 물이 정해진 곳에 흐르지 않듯 부처님 인연이 돼 봉은사에 왔고 인연이 다해 가는 것뿐입니다."
오는 10월 16일 서울 봉은사 주지직 임기가 마무리되는 원학 스님은 10월 12일 낮 12시 봉은사 다래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소임을 다하게 된 데에 토를 다는 모습은 수행자와 맞지 않는다"며 이 같이 밝혔다.
지난 10월 7일 갑자기 봉은사 주지로 조계사 주지였던 원명 스님이 임명된 데 대해 원학 스님은 "총무원장 스님에게 사퇴 의사를 밝힌 것은 소납이 먼저였다"고 설명했다.
원학 스님은 "해인사 정상화 문제로 제 의도와 상관없이 문제가 비화된 뒤 가슴이 아팠다"면서 "이후 사과문을 교계 언론을 통해 낸 뒤, 총무원장 스님에게 편지를 써 수행자 본분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며 사퇴 의사를 밝힌 것"이라고 부연했다.
스님은 "이에 총무원장 스님이 전화를 걸어와 추석까지 기다리라고 했고, 이후 이 같은 인사가 단행된 것"이라면서 "현재 소납이 진행하고 있는 금강경 야부송 공개강좌의 법문을 계속해달라는 뜻으로 예의상 회주를 제안했고, 이에 앞으로 주지직을 내려놓더라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금강경 야부송 강의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원학 스님은 2013년 12월 6일부터 재임 기간 중 역사공원 조성 중창불사를 비롯해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 이름 제정, 가람정비 불사, 대웅전 삼존불 보물 지정 등 굵직한 성과를 거둬냈다. 이에 대해 "봉은사 중창불사의 법적 근거를 만들고 국고 지원 등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던 점이 기억난다"고 회고했다. 또 9호선 봉은사역 개통에 대해서도 "강남 중심의 신도에서 강동과 강북의 불자들까지 봉은사를 찾는 등 신도들이 많아지고 다양해졌다"고 말했다.
원학 스님은 최근 '봉은사 신도회 바로세우기 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와의 갈등에 대해서는 "실제 운동본부라고 불리는 단체의 해당자는 3~4명이고, 어제 집회에 모인 인원도 20명 정도로 신도회에서 집단 반발하는 것으로 볼 수도 없으며, 이들이 불자로서 기본자세가 갖춰지지 않았기에 받아들일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면서 "법치주의 사회에서 법의 논리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또 운동본부가 지적한 원학 스님의 일부 언행에 대해 "삼족을 멸한다는 내용은 범망경과 은중경에 있는 내용이다"면서 "주지가 할 얘기가 없어서 법상에서 막말을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아울러 교계 시민단체들에 대해서도 "소수의 이야기만 듣고 이를 두둔해서는 안 된다"면서 "교단자정센터의 김형남 변호사가 이들의 변론을 맡고 있는데 이는 자기 사업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 순수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자신의 이익이 우선이 되기보다는 순수성과 객관성을 갖추고, 교계의 건강한 견제세력으로 성장해 달라"고 당부했다.
또 지난해 현대자동차가 사들인 강남 한국전력 부지와 관련해 피해보상금을 받기 위해 봉은사와 종단이 TF팀을 구성했다는 내용의 <뉴스타파> 보도 내용에 대해서는 "공식 출범식을 안 했기에 후임 주지가 공식 출범 등을 맡아서 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님은 "제 마음 속에는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바쁜 일상에서도 원고를 쓰던 모습이 항상 기억에 남고, 그 모습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면서 "소납이 그런 모습을 원해 이 자리를 떠나는 것 뿐인데 무엇이 아쉽겠느냐"고 말했다.
원학 스님은 신도들에게 "수장이 잘 할 수도 잘 못할 수도 있다"면서 "업무 집행을 원만하게 마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원학 스님은 봉은사 개산대재를 마무리하고 16일 인수인계를 마치면 앞으로 경산 삼화사에서 주석하며 수행과 작품활동에 매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