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세시풍속
오인 스님, 운주사
446쪽, 23,000원

중국 당나라 838년 음력 12월 그믐, 사찰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12월 29일 해가 지니 승속들은 함께 지전을 태웠다. (…) 절에서는 자정이 지나면 종을 치고 승려들이 식당에 모여 예불을 드리는데, 그때 대중들은 모두 상에서 일어나 땅바닥에 좌구를 깔고 앉았다가 예불을 마치고서야 다시 상에 앉는다. 이때 고사와 전좌가 대중들 앞에 나와 한 해 동안에 있었던 살림살이의 갖가지 씀씀이와 비용을 적은 장부를 읽어서 대중들에게 알려준다. (…) 아침나절 늦게 저마다 자기 방에서 나와 예불을 참석하고 승려들도 서로 인사를 나눈다. 절에서는 공양을 차리고 3일 동안 쉰다.”(256쪽)

 
일본 승려 엔닌이 당나라의 불교 성지를 돌아보고 기록한 여행기인 『입당구법순례행기』에 실린 내용이다. 사찰에서 일 년 동안 공양물이나 금전이나 곡식의 수입과 지출을 정리해 대중에게 보고했음을 알게 한다. 이런 전통은 우리나라의 수덕사 견성암 등에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번엔 중국 송나라 시절 음력 12월 24일로 넘어가보자. 송나라는 이날을 교년(交年)이라고 해서 새해와 묵은 해가 바뀌는 날로 여겼다. 이날 사찰이나 도가에서는 신도나 일반인들에게 부적을 보냈는데, 이를 교년소(交年疏)라고 불렀다. 중국 정통 세시풍속 문헌 『희조락사』에 나오는 기록이다.

사찰의 일년은 새해 첫날부터 섣달 그믐날까지 다양한 법회와 행사, 기념일 등으로 분주하다. 사찰에도 ‘불교세시풍속’이라고 할 수 있는 수많은 행사와 풍속들이 존재한다. 저자는 여기저기 조각조각 흩어져 있는 불교풍속 관련 기록들을 모아 월별 일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또한 각각의 세시풍속들이 발생한 유래와 의미를 밝히고, 그 변화를 추적해 한국과 중국의 오랜 불교문화와 생활상, 수행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동원된 기록들도 다양하다. 『형초세시기』와 『연경세시기』 등 중국의 세시풍속 관련 문헌, 『동국세시기』와 『열양세시기』 등 한국의 세시풍속 관련 문헌, 『대반열반경』과 『백장청규』 등 불교 경전 및 선문헌, 『대당서역기』와 『입당구법순례행기』 등의 순례기, 『삼국유사』와 『조선왕조실록』 등의 역사서가 등장한다. 2차 자료로는 『한국민족대백과사전』 등의 사전류를 참조했다.

불교문헌 중에 불교세시만을 기록한 사료는 없다. 따라서 불교세시풍속을 연구하려면 중국과 한국의 『세시기』들을 참고해 그중에서 불교와 관련된 내용을 도출해 정리하는 연구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불교세시와 관련된 원전자료가 모아져 있어 관련 연구의 기초 자료집으로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책의 저자는?

2000년에 일본 불교대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2005년에는 동 대학원에서 ‘동아시아에 있어서 오대산 문수신앙’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앙승가대 승가학연구원 전임연구원 및 강사, 동국대(경주) 강사 및 겸임교수, 조계종 승가고시 실무위원 등을 역임했고, 현재 중앙승가대 수행학과 조교수, 조계종 교수아사리의 소임을 맡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불교문화 삼원론’, ‘한국 비구니선원의 수행과 생활문화’, 불교문화와 수행, 미륵사를 중심으로 본 백제의 불교의례‘ 등이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첫 번째 단행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