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2558년 4월 26일, 연등회가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의 실종자 무사귀환과 희생자 극락왕생을 바라는 기원의 장으로 펼쳐졌다. 애도기간 중에 축제를 벌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자칫 국민적 반감에 부딪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행렬은 엄숙했다. 회향한마당을 대신한 ‘국민기원의 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는, 진심으로 함께 마음 아파하는 민중의 뜻이 그러했다. 축제는 살아있는 민중들의 역동성으로 이뤄진다는 이윤수 박사(KBS라디오 ‘행복한 시니어’ 작가)의 지론이 이번 연등회 현장에서 생생하게 드러났다.

세월호 사고로 연등회 축소, 취소 등의 논의가 한창이었던 4월 21일 ‘연등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이 박사를 만났다. 이 박사는 2012년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연등축제의 역사를 시대별로 정리하고 연등축제의 문화콘텐츠적인 특성을 총괄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논문 ‘연등축제의 역사와 문화콘텐츠적 특성’으로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박사는 올해 연등회가 어떻게 진행돼야하는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다만 불교계 자체의 문제 때문이 아닌 국가적인 화두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말로 안타까움을 대신했다. 올해 다 보여주지 못한 것들은 내년 연등회에 또 다르게 뿜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잊지 않았다.

2013년 연등회, 참여자도 관찰자도 ‘신명’ 그 자체

작고 소박한 연등에 박수 보내는 문화 만들어져야

이 박사는 연등회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이후 처음으로 펼쳐진 2013년 연등회를 발로 뛰며 지켜봤다. 그가 관찰한 것은 ‘사람들’이었다.

“선두행렬이 동대문에서 상징 장엄등과 합류해서 종각까지 가는 구간동안 저는 계속 뛰어다니면서 사람들을 지켜봤어요. 지나가다가 서로 전화를 걸어 ‘여기 어마어마한 행렬이 시작됐다’, ‘연등축제다’, ‘어디쯤 왔냐’고 해요. 심지어 양 길가의 2층 카페는 사람들이 거의 유리창에 붙어서 사진을 찍어요. 사람들의 손이 다 이렇게 올라와 있어요. 핸드폰으로 찍느라고. 그런 것들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가 있었죠.”

행렬뿐만 아니라 어울림마당에서의 사람들도 이 박사에게는 ‘신명’ 그 자체였다. “어울림마당 예행연습을 앞두고 순서가 한참 남았는데도 빨리 가야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보면서 대중들의 힘이라는 게 저런 거구나 싶었어요. 정말 스스로가 즐긴다는 것, 우리가 신명나서 즐길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잖아요. 모두가 자신들의 축제로 즐기고 있는 역동성은 바라보면서도 즐거웠어요.”

다만 이 박사는 크고 화려한 것만을 지향하는 문화를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거대한 장엄등에는 절로 탄성을 지르지만 소규모 단체의 행렬등에는 비교적 관심이 덜하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작은 절이 들고 나오는 등보다는 크고 움직이는 등에만 박수를 보내는 문화여서 참 아쉬웠어요. 정말 어두운 등을 들고 있는 조무래기 군단에 박수가 더 많이 갈 수 있는, 그들이 기죽지 않게 큰 박수를 보내줄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연등회 사무국의 ‘빈자일등’ 정신 높이 사

전국민의 축제로 되살리는 것이 놓여진 과제

군소규모 단체의 참여를 독려한다는 점에서 이 박사는 연등회 보존위원회 사무국의 역량을 높이 평가했다. 대형화를 추구하는 축제 속에서 누구 하나 낙오되지 않고 빈자일등의 정신을 되살리려고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인 일이며, 그것은 기본적으로 축제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에는 연등회가 조금 더 규모 크게 가야하지 않나, 뭔가 보여줘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 지원도 제대로 받아야 하지 않냐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나 몇 년을 지켜보고 나니까 이렇게 두드러지지 않더라도 꾸준히 대중들이 갈 수 있는 힘을 믿고 더 잘 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그러면서도 새로운 문화를 끊임없이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손으로 등 만들기, 전통 등을 찾아내는 작업들, 등 강습 이런 것들은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어마어마하게 변한 일이죠.”

이 박사가 늘상 강조하는 바는 ‘축제는 이벤트가 아니다’라는 점이다. 축제는 기획자의 머리에 의해서 꾸며지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아이디어와 뜻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사무국의 인력보강이 중요하다고 이 박사는 말했다. “매너리즘에 빠져서 계속 이 틀로 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는 공감해요. 계속 변화를 추구하되 그것이 대형 이벤트나 볼거리만의 변화가 아니라, 끊임없이 대중들 사이에서 무엇이 변해가고 있는가를 지켜보는 노력들. 대중들을 격려하면서 축제를 만들어갈 수 있는 인력보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르바이트생 몇 명 붙여주는 정도가 아니라요.”

이 박사는 연등회 사무국에 놓인 당면과제로 ‘외연확대’를 꼽았다. 사찰과 불교단체, 혹은 종단의 문제가 아니라 바깥에 있는 일반인들을 어떻게 흡수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카메라를 들고 연등회를 지켜보는 관객들이 어떻게 등을 만들어볼까를 생각하게 만들고, 예쁜 등을 사고 싶다는 생각을 어떻게 실천에 옮길 것인지, 등을 들고 행렬 중간에라도 끼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 것인지를 말이다.

외연확대, 불교계만의 과제 아니라

역사성 기반으로 자방자치단체와 연계해야

해법은 비단 연등회 사무국이나 불교계만에 국한돼있지 않다. 이 박사는 연등회 콘텐츠의 재현은 문화재 관련 단체나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해서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월초파일에 즈음한 남산 효문화 축제, 자하문 언덕에서 관등놀이, 등 만들기 대회 등이 이 박사가 제안하는 ‘축제 거리’들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거리’가 없어서 고민을 합니다. 남산에 불을 밝혀 보자거나 자하문 언덕, 팔각정에서 보는 연등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려보자고 제안하는 거예요. 연등행렬과 관등문화는 가장 오랜 역사동안 이어져온 일들이고 지금도 초파일을 앞두고 가로연등이 밝혀진 거리를 걸으면 종교가 달라도 축제분위기를 느끼고 연등행렬을 보면 아름다워 탄성을 지르잖아요. 고궁에 사월 초파일 등 달기, 이런 것들은 연등회에서 돈을 들여서 하는 것도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에요. 역사를 바탕으로 자체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자는 겁니다. 지자체와 연계해서 해나갈 수 있는 것들 자꾸 찾아내서 풀어가는 것이 축제의 외연을 넓히는 일이라고 봅니다. 지자체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면 초파일 명절 분위기는 분위기대로 살리고 자자체는 지자체대로 뭔가를 벌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이 박사는 연등회가 불교만의 행사가 아니라 민족의 축제였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됐다고 거듭 강조했다.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당시 타종교인들의 반발이 거셌지만 그렇기 때문에라도 뿌리를 단단히 내려 흥겨운 세시풍속으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불자들의 축제가 아니라 민족의 축제이고 세시풍속으로 종교와 상관없이 모두가 하루 쉬고 노는 날, 그렇게 흥에 겨운 축제였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제 몫이라고 생각해요. 불교가 갖고 있는 정수는 뿜어져 나와야 하지만 본래 우리 모두의 것이었으니 함께 즐기자라는 것이 알려져야 하죠. 저는 가능하면 자자체와 연결해서 그런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풀어가려고 합니다.”

“연등축제 대중화에 목숨 걸었어요.”

이 박사는 부처님오신날에 즈음해 박사논문을 바탕으로 엮은 책 〈연등회의 역사와 문화콘텐츠〉(민속원)를 발간했다.

“조선시대 때도 초파일 행사가 맥이 끊이지 않고 궁궐은 궁궐대로 백성은 백성대로 유학자들은 유학자대로 어떻게 즐겼는가를 보여드립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조선민족임에 대한 자부심과 자주성으로 이 명절을 즐겼다는 측면을 고찰했다는 게 의미가 있습니다. 단오도 사라져버린 마당에, 80년대까지 온 국민이 즐기고 TV를 통해서 행렬을 지켜본 민족의 명절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고요. 인도나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를 조명한 것은 행렬의 역사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도 이래로 이어져왔다는 것을 반증하기 위해 실었습니다.”